[역대명의의안 248] 腰痛案- 矢數道明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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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명의의안 248] 腰痛案- 矢數道明의 醫案(1)
  • 승인 2015.08.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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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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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48)

 
내용: 田○○. 34세의 남자, 직업은 목수. 初診은 1966년 8월 17일. 이 환자는 3년 전부터 허리통을 말해와 잇달아 脊椎에 아픔이 시작되었다. 坐骨神經이라 말하기도 하며, 椎骨間의 사이가 벌어졌다고 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病名으로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조금도 效驗이 없이 모든 일에 손을 떼고 기브스를 걸도록 권고를 받았다고 한다. 기부스를 걸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一家의 생활에 곤란을 받게 되는 형편이라 한다.

환자의 영양과 얼굴빛도 보통이고 一見 보면은 元氣좋게 보인다. 진찰하여보니까 배의 힘은 충분하지만 배꼽 양측의 天樞의 곳에 심한 壓痛이 있다. 이것을 斜面으로 壓迫하면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프다는 것이다.

背中에는 志室의 곳과 第6胸椎 神道穴의 근방에 壓痛이 심하고 形容이 허무러져 있었다. 이 6개소의 혈에 牛黃丸을 貼布하고 잘 만져주었다. 그런즉 환자는 일어서면서 기쁜 듯이 웃음을 지었다. 대단히 편해졌다면서 마음속 깊이 기뻐하였다.

10일간 芍藥甘附湯을 복용하여 再來할 때는 아픈 것은 半減하고 일을 계속하여도 고통은 별로 없다고 몹시 기뻐하였다. 그 후 계속 무리를 좀 하였더니 若干逆轉하였지만 앞서와 같은 치료로는 경쾌하였다. (「醫林」제60호 1967년 ‘日本臨床’)

按語: 矢數道明 先生(1905∼2002)은 日本의 의사이면서 한방의학자이다. 그는 1930년 東京醫科大學을 졸업한 후로 森道伯의 문하로 들어가서 한방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1934년 大塚敬節, 淸水藤太郞과 함께 日本漢方醫學會를 창립하여 한방의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醫案은 1967년 「醫林」제60호의 ‘日本臨床’이라는 코너에서 소개되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裵元植 先生의 노력에 힘입어 한국동양의학회를 통해 학술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일본의 임상의학의 대표자인 矢數道明 先生이 한국 한의계의 대표 잡지인 「醫林」에 일본의 한방의학의 임상례를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서 牛黃丸이라는 약물을 국소 부위에 붙여서 치료하는 外用治療法을 소개한다.

이 방법을 요통 뿐 아니라 노이로제, 하지동통권태불쾌감, 잔허리통 등 각종 질환에 사용하고 있는 용례를 이 글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처방은 그가 개발한 약물로서 상품화되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요통의 증상에 天樞穴, 志室穴 등의 부위에 통증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혈자리의 통증은 자각적 증상으로서 나타나기도 하고 의사의 按壓으로도 감지되는 부위로 본 것이다.

그는 이 혈자리에 牛黃丸을 貼布 즉 塗抹하는 식으로 발라주어 약물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어 치료가 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芍藥甘附湯을 사용하였다. 이 처방은 「傷寒論」의 芍藥甘草附子湯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주치는 “發汗, 病不解, 反惡寒者” 즉 “땀을 내었는데도 병이 풀어지지 않고 도리어 오한의 증상이 나타남”을 치료해주는 처방이다.

이 처방이 芍藥甘草湯에 附子가 덧붙여진 처방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矢數道明 先生은 筋肉系統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로 變用한 것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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