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시평] 생약제제라는 허구
상태바
[김윤경 시평] 생약제제라는 허구
  • 승인 2015.08.27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경

김윤경

mjmedi@http://


김윤경 시평

지난 20일 천연물신약 2심 결과가 나왔다. 2심은 1심과는 달리 한의사들이 낸 고시무효확인 소송이 각하되었다.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판결의 내용을 살펴보면 생약제제의 내용이 가장 중점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재판부는 약사법에서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을 한약제제로 정의하고 있을 뿐, 이를 제외한 나머지, 즉 같은 생약을 서양의학적 치료목적으로 제조한 의약품에 해당하는 생약제제에 대한 정의가 없는데 이를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 신고에 관한 규정>(이하 품목허가규정)에서 정의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약사법에서 한약제제만 정의하고 생약제제가 정의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생약을 서양의학적 치료목적으로 제조한 이런 의약품이 실제 존재하는데 단지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의학적인 생약제제라는 개념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생약제제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한약재를 지칭하는 용어인 생약에 의해서 만들어져 널러 퍼졌으며 한약제제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사회적으로 생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래 한약제제, 한방제제, 생약제제, 한방생약제제 등의 용어는 그동안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어 왔다. 지금도 사람들이 혼용하고 있으며 아직도 한방생약제제로 광고하고 있는 의약품들을 볼 수 있다.

생약제제는 현재 상위법인 약사법에 정의되어 있지 않고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인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 신고에 관한 규정>에서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라고 정의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시이름을 한약(생약)제제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부터 한약제제와 생약제제를 구별할 수 없다는 반증이 아닌가?

법과 규제의 측면에서 한약제제와 생약제제의 역사를 검토해 보면, 사회적으로 혼용되는 것과는 달리 1992년 ‘의약품 등 제조업 및 제조품목 허가 등 지침’에서부터 처음으로 한방제제와 생약제제를 구별하여 기술하였다.
그러나 1994년 상위법인 약사법 개정 시에는 여러 용어 중 한약제제만 명시되었을 뿐, 생약제제는 약사법에 정의되지 않는다. 그러다 복지부에서 식약청으로 분리된 후 1999년 12월 22일자로 개정된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심사에 관한 규정’에서 생약제제와 한약제제의 허가사항을 분리해서 규정하며 허가 상 차이를 두게 되었다.
한약제제는 여기서 ‘기성한약서 혹은 그 외의 의서’에서의 처방, 처방에 근거한 새로운 처방으로 의미부여를 하여 상위법인 약사법의 정의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인 범위로 축소되게 되고 그 외의 생약을 이용한 의약품은 생약제제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약처는 외국에서 들어온 천연물제제들이 있어서 생약제제라는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생약제제가 이후 2000년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 제정 이후 점차 발전하여 천연물신약으로도 인정받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과연 재판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약을 서양의학적 치료목적으로 제조한 의약품은 한약제제와 별도로 존재하는가?

어떤 것들이 생약제제인지 예를 들어보자.
Echinacea, European mistletoe, Agnus-castus, Black cohosh, Milk thistle, St. John’s wort 등은 국내에서 생약제제로 허가받고 판매되고 있는 약재들이다. 이 제제들이 이름이 영어이고 서양에서 왔다고 해서 서양의학적인 생약제제인가? 한방원리인 음양오행과는 멀어보이므로 한약제제일 리가 없는가?

이 약재들은 서양의 전통의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재들이며 이를 현대적으로 제제화한 의약품이다. 서양에도 전통의학이 있다.
서양에서 서양의학이 발전하기 이전, 이미 천연물을 이용한 의약품과 의사들이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서양의 전통의학으로는 서양의 약초를 사용하는 Herbal medicine, 영국의 찰스 왕세자도 후원하고 있는 동종요법(homeopathy), 자연의학으로 불리는 Naturopathic medicine과 의사(N.D)가 있으며 추나요법에 해당하는 카이로프락틱과 의사(D.C) 등이 있다.

이 제제들이 한의학적 치료목적이 아니라 서양의학적 치료목적으로 제조된 의약품인가? 만약 벨라돈나(Belladonna) 추출물로 만들어진 의약품이 있다면 이것이 서양의학적인 생약제제인가? 서양의학적이려면 벨라돈나에서 alkaloid 성분을 추출하여 atropine 제제를 만든 것이 서양의학적이다. 이 벨라돈나를 추출하여 제제를 만든 것은 서양의 전통의학 의약품인 것이다. 다만, 서양의 현대 전통의학에서는 한의학의 기미론처럼 별도의 약효를 설명하는 이론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서양의학의 약리학을 빌어 효능을 설명하고 있는 것 뿐이다.

만약 한국의 의사에게 벨라돈나 추출물과 atropine제제를 주고 어느 것을 사용하겠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될까? 서양에서 왔으니까 서양의학적인 제제라며 벨라돈나 추출물을 의약품으로 인정할까? 의사들은 천연물의 효능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명한 은행잎 추출물이나 인사돌과 같은 옥수수불검화추출물의 효능도 의사들이 지금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스틸렌도 쑥 추출물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 쓰지 않는 의사들이 부지기수다. 약물을 백만배 천만배 희석하여 사용하는 동종요법 제제들은 의사들이 코웃음치는 대상이며 한의사들도 의사들로부터 ‘풀뿌리 다려먹이는 무당’이라는 폄하를 들어온 세월이 수십년이다.
이 제제들이 서양의학적 원리로 만들어졌거나 서양의학적 치료목적의 생약제제라는 논리는 아마 의사들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의약품들은 한방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의 전통의학도 같은 전통의학이므로 비슷한 이론들을 공유하고 있다. 한방원리에는 음양오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체관(Holism)이나 같은 기운을 가진 것을 사용하는 동기상구(同氣相求)이론, 약재들을 배합하여 사용하는 이론 등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한의학 이론에 더 가깝다. 서양의 약재로 만든 의약품일지라도 천연물추출물은 서양의학적 원리라기보다는 한방원리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꼭 나누어야 한다면 성분위주의 서양의학 의약품과 추출물 위주의 전통의학(한의학포함) 의약품으로 나누어야 한다.
한약제제와 비한약제제(일컬어 생약제제)로 나누고 비한약제제는 전부 서양의학적인 것이라는 논리는 불합리하다. 한국에서 쓰이지 않던 약재로 만들어진 의약품일지라도 천연물추출물은 한약제제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생약제제는 한약제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