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칼럼] 대한한의학회 표준한의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 - 기대와 우려, 그리고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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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칼럼] 대한한의학회 표준한의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 - 기대와 우려, 그리고 제안
  • 승인 2015.09.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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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한창호

mjmedi@http://


한창호 칼럼

우선 정부와 대한한의학회가 임상진료지침개발을 위한 연구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는데 감사하며, 전적으로 찬동함을 밝힌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하여야 한다. 잘한 일이다.

한 창 호
동국대 한의대 교수
이미 의학계에서는 2007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고, 직접적으로 대한의학회가 대한의사회 산하에서 독립적인 법인화로 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대한의학회는 2008년 1월부터 임상진료지침정보센터(http://www.guideline.or.kr)를 운영하고 있다. 재정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맡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내외 근거기반의료와 임상진료지침의 개발을 위하여 지침개발 방법론과 지침의 평가방법에 대한 정보제공과 보급 및 확산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한의학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것이다. 아마도 대한한의학회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개발특별위원회는 이러한 조직을 모델로 삼고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RND 예산으로 지원되는 근거창출임상연구국가사업단(NSCR)에서는 국가임상진료지침정보센터(Korean Guideline Clearinghouse, http://www.cpg.or.kr)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내에서 개발된 임상진료지침 및 관련정보를 제공하고, 보급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미 임상진료지침 개발 매뉴얼이나 임상진료지침 수용개작 매뉴얼, 수용개작 진료지침 평가도구 등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한의학회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잘못하면 그저 RND 과제로 어떤 질환을 선정하면 좋겠다는 내용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한의학회 설명회
지난달 28일에 ‘표준한의임상진료지침 개발 연구주제 및 연구자 선정을 위한 설명회’가 있었다. 설명회 제목이 좀 이상하다. 발제문을 보았다. ‘정부가 요구한 것은…’, ‘이번 저의 과제는…’ 등으로 보아 조심스럽고 아슬아슬한 표현이 있었다.

지금 진행 중인 과제에 대해 ‘이미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단(가칭)이 준비되고 있다’고 하며, ‘이 사업단이 진료지침 개발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한의학을 비롯한 동양전통의학은 이미 많은 임상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임상적 근거라는 뉘앙스가 좀 오묘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확보되어 있는 근거를 통해 근거기반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여 적용할 것이며’라는 말을 하였는데 우리는 누구이고, 만일 우리가 대한민국의 한의사일 경우 지침이 적용되는 범주 내에 근거 있는 치료만을 수행할 경우 진료와 치료 수단과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라고 하고 싶다. 현재 한의사의 진료형태보다 상당히 제한적이고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나의 느낌은 나만 가지는 기우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근거중심 한의약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무적이고 바라는 바이다.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런데 선언했다고 하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의 추진’은 수정하기를 바란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으로 한의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지침개발을 위한 방법을 표준화하겠다’는 정도 이상을 선언하는 것은 곤란하다.

임상진료지침이면 족하다, 표준이라는 말은 개념의 중복이다. 만일 강조의 의미라면 더욱 빼기를 권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서 강조라 하면 강제적 적용 아니겠는가?

근거중심 한의약 추진위원회와 근거중심 한의약사업단의 구성은 고무적이다. 당장 시작하고 포괄적이고 튼튼하게 건설하라. 그리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라. 한의약의 유효성이나 유용성 그리고 비용 효과성이나 비용 편익성을 근거기반으로 증명하는 작업은 한 두 해 만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적어도 한 두 세대를 지속해야할 일임을 명심하라.

도출 가능한 표준치료 권고 흐름도 알고리즘을 제시?
좀 이상하다. 진료지침은 임상경로(Critical pathway)가 아니다. 표준 치료의 알고리즘을 제시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각각의 근거 있는 표준 치료를 권고할 수는 있다. 그러나 표준 치료로만 만들어진 표준 경로를 제시하기란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 밖이다. 만일 근거기반이 약한 치료들을 조합하여 표준 경로를 만든다면 동의받기 어려울 것이다.

강제적으로 권위 있는 기관이나 모임을 형성하여 권고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가하거나 의료행위를 제한한다면 이는 오히려 한의 임상을 결박하게 될 것이다. 임상진료지침은 흔히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고 한다. 적극적으로 방울을 목에 매달고자 하는 고양이가 있겠는가?

임상진료지침을 만드는 과정은 임상의들의 주도만이 아니고 지역사회진료지침을 개발하는 전략도 있고, 지침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을 포함하여 지침을 개발하기도 하며, 많은 나라의 경우 국가 주도보다는 지역사회나 질병 위주 혹은 학회 위주로 개발한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성과중심이 아니라 질적인 고려를 철저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한번 만들어 놓은 담벼락은 잘못 세워두면 허물기도 어렵고 흉물스럽게 남아있기 쉽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요구?
발제문에서는 또한 ‘보건복지부에서 한의약의 국민 신뢰확보와 진료의 공공의료성 강화 및 제도권 내에서의 이용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임상진료지침 개발에 대한 제안이 왔다’고 쓰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진료의 공공의료성이 무엇인가? 진료의 공공의료성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제도권 내에서의 이용이란 무엇인가? 의료의 보장성 강화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보험적용 범위의 확대를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결론이 임상진료지침이란다. 그렇다면 이는 사이비 의료를 배제하고, 효과 있고 비용-효과 측면에서 편익이 큰 진료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지침이 있어야 진료에 대한 표준화가 가능하고, 표준화를 통해 보험 등 국가의료체계에서의 활용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건강보험의 보장성강화가 마치 진료지침이 있어야 가능한 것처럼 오해를 일으킨다.

‘진료지침이 궁극적으로 한의학이 국민들에게 의료적 도움을 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작업’이라고 하였다. 동의하기 곤란하다. 진료지침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과장이다. 더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표준과 정부정책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개발했다고 하는 몇 개의 임상진료지침이 표준으로 발전하는 게 가능할까?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발 당시에 가진 한계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의사 사회의 수용성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개발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지침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지침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궁금하다. 개발에 참여한 학회나 개인이 진짜 그대로 표준 진료를 하고 있는지, 그런 한의사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표준이다. 표준이라면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누가 지켜야만 하는 표준을 만든 것인가? 수행해야할 대상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대상자들 중에 지키지 않는 자가 있는가?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점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권고라고 했지만 표준인데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군다나 보건복지부가 국민세금으로 만든 연구예산으로 만든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부는 어떤 정책수단을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 사회보험의 급여정책과 연결할 것임을 내비치고 있다.

어떻게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피해를 줄 것이다. 아마도 급여의 제한이 될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들이 알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료하는 경우 돈을 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단시간에 눈이 띄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조가 이와 같이 디자인된다면 서서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더 필요 한가?
여기에서 이것이 옳은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새로운 치료법이나 의학상의 진보를 기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물론 기존에 근거를 확보한 한의 임상치료는 좀 더 안정적으로 보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단이나 치료 방법들이 발굴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한의계는 ‘확보된 근거가 더 많은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과 개발해야할 근거들이 필요한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미 확보된 근거 있는 한의계의 치료수단만으로 한의계가 먹고 살아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보장성 강화와 임상진료지침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의 근거를 요구하는 의미로 진료지침을 거론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근거기반의 진료지침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진료지침이 있는 것과 보장성 강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전략에 있어서 진료지침이 선행한다면 오히려 공급자인 한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위험만을 가득 안게 되는 일이다.

정부는 일을 쉽게 하는 것이고, 국민은 손해 볼 게 없겠지만, 한의사들은 확실하게 근거 있고 표준 치료를 수행하는 범주 내에서 사회보험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속된 말로 ‘그 만큼 근거가 있고 표준적인 치료로 인정받으며 사회적으로 비용을 더 받을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낮은 급여비용으로 보험에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표준이 확보된 치료수단은 저수가의 보험에 묶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의사들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익적 입장에서 보면 난 정부의 이러한 논리를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3명의 플레이어 입장에서 공급자 측에 선 한의사들은 더 모든 위험을 혼자 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한한의학회와 정부가 포괄적이고 적극적으로 한의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지침개발을 위한 방법을 표준화하기를 기대한다. 이 일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의 임상진료가 근거를 확고하게 가지며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한방 의료의 제공이 정부입장에서 자랑스럽게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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