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칼럼] 주변의 연구자와 같이 달리는 ‘사고의 혁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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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칼럼] 주변의 연구자와 같이 달리는 ‘사고의 혁신’ 필요
  • 승인 2015.11.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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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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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칼럼

고 흥
세명대 한의대 교수
필자는 KCD를 기준으로 한의학의 진단체계를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전편에서 환자 증례에서 한약사용을 위한 예를 언급하였는데, 증례 환자의 진단명은 A형 간염이었다. 그런데 검사를 통하여 A형 간염을 알지 못했다면, 환자의 현 병력을 통하여 타미플루에 의한 약인성 간손상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환자가 타미플루를 복용하였고, 타미플루의 부작용에 오심, 구역과 간손상이 나타나나는 것으로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가 A형 간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1% 미만이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될 수 있고, 환자의 임상증상에 근거하여 예후를 판단하면서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증례는 양약으로 오미자 추출물, 제산제 그리고 위장운동개선제를 사용되면서, 黃疸에 근거하여 生肝健脾湯이 사용된 것인데, 여기서 한약 사용은 辨證 없이 양약처럼 간세포보호, 제산제, 위장운동 개선으로 五味子 單方, 烏貝散, 平胃散을 사용할 수도 있다.

위 예의 경우처럼, KCD를 수용하여 각자의 치료를 하면서 진단명의 추적검사를 하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물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면서 관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우리가 KCD를 통한 한의학의 진단체계를 재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고 생각된다.

한의대의 한약이나 처방의 실험논문은 먼저 문헌에서 어디에 사용되었는지를 통하여 질병을 선택하고, 이에 해당되는 병리 병태모델과 약리작용을 규명해왔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신바로는 관절염에 유용하게 사용된 한약의 미래지향적인 약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양방의 의료보험약물이 되었다는 것은 한의대 50년의 실험논문은 양의학을 위한 한의학을 한 것이고 우리는 고립된 섬으로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의사는 우리만의 논리라는 테두리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개방적인 사고로 시대를 따라 가려했는데, 우리는 천천히 가고 주변은 빠르게 지나가면서 시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어느 날 주변을 보니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90년대 이후로 분자생물학, 뇌과학으로 신경과학과 심리학이 급진적으로 발전 확대되면서, 기존에 실험이나 재현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마음’, ‘정신’이 분석 재현되고, 인위적인 생명창조, 인공지능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1970년대 애드워드 윌슨이 언급한 ‘신인류’가 멀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관습과 죽음을 넘어서고 감정이라는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제거한 지능을 추구하는 것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불안정한 인간을 인공지능이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걱정해야하는 시대이다. 한의학의 원론은 이런 걱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우스갯소리로 산에 살던 산신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포크레인이라고 한다. 최근 철학과 과학에서 이용되고 있는 환원주의(논리실증주의, 기본적인 과학으로 설명하는)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를 환원주의적 입장에서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陰陽, 五行, 六氣를 일반인이 한의사에게 물어보기보다, 네이버 사전을 보는 것이 더 잘 이해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의학의 사고이론에서 陰陽, 五行, 六氣는 항상 언급된다. 전체를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서 ‘一以貫之’의 정신으로 통합하고 ‘溫故而知新’의 정신을 가지고 생각하다보면 항상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비유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인 지식을 듣다보면 “아! 이게 이런 의미구나”할 때가 있다. 그래서 뭔가를 깨달은 심정으로 한의학 이론의 나머지를 맞추려 하다보면,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고 어딘가 이빨 빠진 것처럼 보이거나 앞뒤가 엉클어진 것 같은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게 아닌가” 하게 되거나 “아 다시 원점에서 글자 그대로 보는 것이 도리어 이해하기 쉬운 것 같다”, “역시 어설픈 해석은 의미를 퇴색시키는 구나” 하게 된다.

한의학에서 한 한의사가 훌륭한 방법론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좀 더 완벽한 정리를 하게 되어 학회 같은 동조자들이 생기게 되면, 그 창시자는 그 정의를 벗어나기 어려워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한의사 또는 타 전공자의 시각과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을 느끼게 된다. “교수가 되어서 50년을 연구하여 드디어 완벽한 이론을 만들어 세상 사람에게 알리기 시작하는데, 세상 사람이 이해하지 못 하고 외면하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주변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만의 고립된 섬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를 고집하고, 앞만 보고 옆을 보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위해서 같이 달려주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며, 이런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새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초의학자, 식품학자, 약학자, 공학자를 만들어왔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우리끼리만 이라는 고립을 좌초 했는가?

필자는 한의학에서 KCD 수용은 우리의 한계점을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알게 되었고, 우리가 고립의 섬을 벗어나야 하고, 우리의 우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는 ‘혁명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환원주의적 사고를 새롭게 인식하여 우리를 점검하고 주변학문과 소통할 수 있는 공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사고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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