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 키워드로 승정원일기에서 찾은 ‘조선 왕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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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움’ 키워드로 승정원일기에서 찾은 ‘조선 왕들의 비밀’
  • 승인 2016.01.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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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연 기자

전재연 기자

jyjeon@http://


새책 |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조선왕조실록’이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을 기록한 잘 알려진 대기록이라면 ‘승정원일기’는 이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기록된 전 세계에서 단일 기록으로는 최대의 역사 기록물이다. ‘승정원일기’란 임금의 직속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기록한 일기를 말한다. 실록과 달리 승정원일기는 안타깝게도 광해군 이전의 기록이 불타버려 인조 이후의 기록만 남아 있다.

방성혜 著
시대의창 刊
저자는 이들 고문서를 통해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병을 앓았으며 이를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이 가운데 조선 왕들이 빈번하게 앓았던 ‘가려움증’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었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들려주면서도 우리가 몰랐던, 혹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려준다.

‘한낱’ 가려움증으로 고통받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왕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선 왕들의 성정은 어떠했으며 왕들의 질병이 조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른 시각에서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저자는 ‘승정원일기’에서만 ‘가려움’에 대한 기록을 2000여 건 넘게 찾아냈으며, 그 밖에 1만여 건이 넘는 여러 1차 사료 원문을 직접 해석하여 연구했다.

가려움증에 대한 기록이 없는 헌종, 철종을 제외한 조선 16대 왕 인조부터 26대 왕 고종까지 9명의 왕, 2명의 왕비, 2명의 세자, 2명의 세자빈 그리고 1명의 세손까지 총 16명의 왕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또한 내의원에서 쓰였던 여러 처방과 약에 대해 서술했다.

조선 왕들이 가장 흔하게 앓았던 병, 가려움증

이 책에 따르면, 조선의 왕들은 여러 피부병을 앓았는데 그 과정에서 가려움증이 나타났다.
영조는 가려움으로 몸서리치면서 “가려운 것이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가려울 때에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된다”라고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는 것이 바로 이 가려움이라는 증상이다.

왕들이 가려움증을 앓았던 이유는 다양했다.

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뒤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떨어야 했다. 게다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사신에게 항복 의식을 치르며 삼킨 분노가 인조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급기야 간에 문제를 일으켜 몸이 가렵고 초록색 땀이 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의 아들 소현세자는 추운 겨울날 귀국길에 오르다 병을 얻었고, 흔히 알 듯 독살된 것이 아니라 인조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폐가 병들어 죽었다.

현종은 푹 쉬고 잘 먹으며 요양에 전념해야만 하는 결핵 환자였고, 경종은 스트레스성 땀띠 환자였다.
숙종은 세자 시절부터 성질이 사납기로 유명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다혈질 군주였다. 수십 년의 재위 기간 동안 그렇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할 때마다 숙종의 간은 서서히 기능이 멈췄고, 결국 말년에는 간경화로 밤마다 가려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영조는 회충증 환자였으며 오래 살았던 만큼 병도 많았다. 한번은 복통으로 뜸 치료를 하다가 낙형을 없애는 등 국법을 바꾸기도 했다.
정조는 더위를 많이 타고 울화가 쌓인 체질이었고 인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이처럼 왕들은 단순한 피부병에서 가려움증이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내장 기관의 악화가 가려움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혹독했던 왕의 하루 일과…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은 극심한 스트레스

조선 시대 왕의 하루 일과는 혹독했다. 해가 뜨기 전 기상해야 했고 밤 10시는 돼야 모든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지금으로 치자면 새벽 4, 5시에 기상해서 출근하고 밤 10시까지 격무에 시달리다가 겨우 퇴근하는 셈이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죽을 때까지 나랏일만 하는 것이 임금의 일과였다. 선위하거나 쫓겨나기 전까지는 절대 그만둘 수 없었다. 이러니 왕들에게는 스트레스도 많고, 그만큼 온갖 병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조선 왕들의 삶이 21세기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왕들의 삶과 닮은 21세기의 인조가, 21세기의 현종이, 혹은 21세기의 정조가 지금도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승정원일기’ 속 의관들이 내린 처방과 현재 저자가 진료하고 있는 환자들의 처방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좋은 옷을 입고 온갖 진귀한 음식을 먹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임금’이 사실은 바쁘고 여유 없는 삶을 사는 평범한 현대인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병을 얻은 이유 또한 스트레스 혹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장 존엄하고 위대한 왕 또한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 방성혜 원장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 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다시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사랑한의원 원장으로 있으며 경희대 한의과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1,2’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동의보감 디톡스’ 등이 있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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