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비상사태 긴급 점검(3) 침탈되는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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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비상사태 긴급 점검(3) 침탈되는 침
  • 승인 2003.03.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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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사에 이어 양의게 너도나도 침 시술

말로는 경피자극 실제는 경혈시술, 불법 자행
한의계, 유권해석 한 장에 위안... 근본대책 아쉬워

“의사들 대체의학에 눈돌린다.”
“양의사가 침 프로그램 개발”

한방에 무지하고 적대적이라고 생각되던 양의사들이 한의학 분야
로 몰려오고 있는 모습들이다.

양의사의 침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연세대 재활의학과 전모 교수(현 포천중문의대)가 의료일원화를 주장하는 한편으로 침 등 한의학의 원리를 연구하는 동서의학비교연구회를 운영해오고 있다. 오모 원장은 아로마세라피를 연구, 저서까지 내고 이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

최근에는 양의사 어모씨가 침 프로그램를 개발하여 ‘단 4시간의 강의로 600개의 증상을 분석하여 400개의 경혈을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는 경혈프로그램 Easy Five를 이용하여 증상, 병리 등을 터치스크린에서 입력하는 것만으로 내과, 근골격계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며, 체침, 동씨침, 오수혈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제품설명회에 참석을 권유하는 안내장을 한의사에게 보내기도 했다.

대체의학전문의 겨냥 인정의 배출

대한복원의학회(회장 윤방부)는 오는 8월 31일부터 12월 15일까지 근육학, 증식치료, 임상테이핑학, 임상운동학, 수기치료, 영양요법 등 소위 대체의학이 다수 포함된 복원의학 임상9기 강좌를 개최하기로 했다. 복원의학회는 보완 및 대체의학의 학문적 통합을 목적으로 일선진료현장에서 환자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치료법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300시간 이상의 연수교육 이수자를 대상으로 ‘복원의학 전문 인정의제도’를 도입, 현재 2회에 걸쳐 177명의 인정의를 배출하고 있다. 이 학회의 회원은 11개 임상과(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정신과, 재활의학과, 마취과, 비뇨기과) 개원의 1천5백명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한의사와 침구사, 혹은 무면허침구사로 대치하던 침구전선이 이제는 양의사 집단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대치전선이 기존의 마이너집단이 제압되지 않은 채 메이저집단이 한의학 침탈에 가세한 형국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비합법 단체에서 합법적 의료인단체로 바뀜을 의미한다. 대응방법도 이전에는 법 하나만 들이대면 되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死文化 되는 이원적 의료체계

의료법상으로 침은 한의사의 고유업무로 인정되고 있다. 복지부 유권해석(한방 65507-112)은 침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의사의 침 사용과 관련 전통적인 침에 의한 단순한 침술행위는 한의사의 고유업무이며, 의사가 경락이나 경혈에 대해 침을 사용하는 것은 한의학적 침술행위로서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가 된다. 다만, 국소마취 및 경피자극을 위한 도구로서 침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현대의학적으로 인정된 치료방법으로 종기나 염증치료 또는 경피자극 등에 침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할 것임.”

그러나 양의사가 침을 경피자극이나 국소마취에 사용하는 경우는 적어지는 대신 한의학의 경혈자리에 침을 놓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침을 가르치는 양의사와 배우는 양의사의 행태를 보면 한의학적 침 시술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러나 양의사가 침을 경혈자리에 놓았다고 고발되거나 입건된 경우가 거의 없어 이 유권해석은 유명무실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더욱이 단속은 커녕 복원의학전문의라는 대체의학전문가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어서 한의사의 침권이 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양의사의 침시술이 미국과 유럽의 침연구의 성과에 따라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 의대 교수는 몇 년 전 의협신문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침의 효능효과를 확인한 1994년경부터 침은 양의학의 일부로 흡수되었으므로 한국의 양의사가 침을 쓰는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의 기고를 한 바 있다.

대한가정의학회가 1998년 우리나라 양의사 2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의 66%가 한의학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으나 침에 대해서는 79%가 그 효과를 인정하였다고 확인하여 침을 쓰는 양의사도 그만큼 많아졌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효과적인 대책은 없나?

심지어 경남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의사는 “경남지역에서 적지 않은 물리치료사가 침으로 시술하는 등 침권의 위기를 많이 느낀다”면서 적법성 여부를 묻기도 했다. 한의협의 한 관계자는 “양의사의 침 사용은 어쩔 수 없지만 물리치료사의 침 사용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점은 보건복지부도 인정하고 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물리치료사의 침 시술은 업무범위에 벗어나며 설사 양의사의 지시에 의해 시술했다 하더라도 안 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물리치료사는 간호사처럼 포괄적인 진료보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업무범위에 들어간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의사의 지시가 있다하더라도 침 시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심지어 안마사의 업무인 안마·자극요법에도 침이 포함되지 않는 마당에 물리치료사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렇듯 침은 양의사에 한해서 국소마취나 경피자극술 정도만 허용되므로 그 범위를 벗어나거나 물리치료사가 시술하는 경우에는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에서 분명히 확인되는데도 실제적인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라 한의계는 유권해석 한장만으로 침 시술의 고유성을 주장할 게 아니라 불법시술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건소의 단속과 한의사의 고발을 병행하여 초기에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하나의 의견일 뿐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해 한의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시술자체가 불법임에 틀림없지만 관계당국에서 팔짱만 끼고 있고, 겨우 사고라도 나야 불법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양방 의학은 법적으로 서로 구분되면서도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진료기술과 방법이 점차 접근되어 가는 추세에 있어 업무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어 구태의연한 방식만으로는 한의계 고유성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침 시술의 절대우위와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한 학술·연구 ▲법적 근거 확보 ▲대국민 홍보 등이 제안되고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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