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4>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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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4>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 승인 2016.06.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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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강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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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고통이 오면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만다. 고통에는 바깥의 존재가 없다. 고통은 공유할 수 없어서 가장 외롭고 가장 개인적인 감각이며 모든 우선권을 무시한다’

강 형 원
원광대 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세계적인 외과의사 폴 브랜드의 고통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고통의 경험을 세 단계로 나누는데 1단계는 고통의 신호이다. 이는 말초신경이 위험을 느낄 때 내보내는 경보로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다. 2단계는 척수와 기저부가 수 백 만개의 신호들 중에서 어떤 것이 뇌까지 전달 될 가치 있는 메시지인가를 가려내는 척수의 관문 역할을 한다. 척수가 절단되면 아무리 말초신경이 신호를 보내도 뇌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마지막 3단계는 뇌의 상단부(특히 대뇌피질)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메시지를 취사선택해서 반응을 결정한다. 이러한 고통체계가 완성되기 전까지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3단계 이후 고통을 의식적으로 뇌가 책임을 맡는데 이때 놀라운 사실은 마음이 고통을 이런 저런 방향으로 바꾸며 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상태로 빠뜨릴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음속의 방대한 자원을 이용해서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심리적 고통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통해 아픔을 느끼게 된다. 고통이 시작되고 개인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고통이 멈추거나 더 심각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는 개의 일정한 부위에 전기 충격을 주며 음식으로 보상하는 방법을 되풀이 하였더니 충격을 피하거나 도망하는 대신 꼬리를 흔들며 침을 흘리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기 자극이라는 부정적인 아픔을 재해석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인간의 심리상태는 매우 우월하다. 고통을 해석하는데 있어 부여하는 정신력이 그 이유이다. 심리적 고아상태와 심각한 매몰상태에 있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에 부여한 부정적 의미를 새로운 감각을 통해 전환시키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최근 트라우마 심리치료에 자주 언급되는 정위 반응(orienting response)이 한의학의 ‘이정변기(移精變氣)’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精)을 움직여서(移) 기분(氣)을 바꾼다(變)’는 기본 원리를 따른다.

이정변기의 주요기법은 시대별, 사회적 상황, 생활환경, 의학 이론 및 배경 등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 왔다. 상고시대에는 축유(祝由)가 성행했는데, 이는 주로 무의(巫醫)에 의해 축문(呪文)이나 독경(讀經), 기도(祈禱), 부적(符籍), 설유(說諭) 등의 방법인 종교적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일정부분은 현대에까지 그 잔재가 남아있다. 내경시대에서는 침, 약물 등의 치료법이 등장하게 되고, 후대에 경락이론의 확립으로 도인법, 오행이론에 따른 오지상승법 등이 이정변기의 방법으로 등장하게 된다.

환자들은 그들만큼 특별한 고통과 아픔을 호소한다. 우울, 분노, 적대, 원망 이러한 심리적 고통에서 한치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갇혀있게 된다. 고통이 주인이 되어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때 환자의 감정이나 생각 혹은 기억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해 준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새로운 자극이 주어지면 그 쪽을 바라보거나 몸을 틀게 된다.

나의 진료실에는 여러 종류의 화분, 인형, 음악, 그림, 시 등 이정변기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몇 개의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들은 그저 평범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 순간 환자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치료 도구로 변신하기도 한다.

50대 부인이 진료실을 찾았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과 절망감은 삶의 의욕을 앗아가버렸고 우울과 분노, 허망함으로 몸이 극도로 상해있었다. 화로 인한 불면을 호소하는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방을 만들어 그 방의 이름을 지어보자고 했다. 부인의 방은 한마디로 분노덩어리였다. ‘살인’, ‘방화’, ‘회칼’, ‘남편폭행’ 이렇게 그려가는 부인의 눈에 충혈과 살기가 그녀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나는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면서 상담내용을 진행해갔다.

“진료실 안을 가만히 둘러보시겠어요? 그리고 마음이 가는 물건이 있으면 그곳에 한번 머물러 보시겠어요?”

가만히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리더니 창틈에 올려져있는 ‘사랑초’ 화분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여기 사랑초인가요?”

“네”

“사랑초 어디에 눈이 가나요?”

“줄기요”

“가만히 사랑초 줄기를 보고 있으니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불쌍해 보여요. 줄기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너무 연약해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부인의 두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랑초 줄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가여워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게 꼭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흐르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21살에 결혼해 30년을 아들 둘과 남편을 위해서만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것이 남편의 외도라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한지를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약해 보이는 사랑초 줄기를 보고서 자신을 얼마나 가엽게 느끼는지 알겠습니다.

“여기 연약해 보이는 줄기를 한번 만져보시겠어요?”

의외로 줄기는 단단했고. 이를 만지는 환자분은 의아해 했다.

“줄기가 의외로 꼿꼿하고 힘이 느껴지지요?”

“네”

이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 마무리한 마음의 방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 로 변해있었다. 방금 전까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마음이 어느새 변화된 것이다.

무엇이 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분노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는 상태에서 진료실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이 가는 사랑초 줄기로 시선을 돌리게 한 것, 그 곳에 머물러 가여운 자신의 모습에 눈물 흘리게 한 것, 이것이 이정변기요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슬픈 마음으로 눈물이 흐르는 것은 비승노(悲勝怒)의 원리에 따른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이다. 즉, 금(金)에 해당하는 슬픔(悲)이 목(木)의 분노(怒)를 극복한 것으로 금극목(金克木)의 오행상극이론이 화병치료 임상에 그대로 적용된 사례이다. 분노에서 슬픔으로 그리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평온의 다짐까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녀가 고통으로 보낸 시간에 비해 매우 짧은 순간이었다.

매몰되어 있는 마음의 고통에서 자세만 바꿔줘도, 고개만 돌려줘도 기분은 변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한의학 이정변기요법(移精變氣療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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