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님을 애도하며 의사의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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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님을 애도하며 의사의 길을 묻는다.
  • 승인 2016.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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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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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이 부른 한 농민의 죽음

9월 25일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317일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던 농민 백남기씨가 숨을 거두었다. 지난해 11월14일 시위도중 경찰이 지근거리에서 직사한 물대포에 맞고 한 시민이 쓰러졌고,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응급실로 옮겨졌다.

고 백남기씨가 당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1시간 후에 찍은 뇌CT영상판독 결과는 오른쪽 뇌 경막 밑으로 큰 출혈이 생겨 왼쪽 뇌를 압박하고 있으며, 작지만 외부 공기가 두개골 안쪽으로 들어 와 있고 두개골과 안와 뼈에 골절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의료진 소견은 ‘외부 충격에 의한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로 수술을 해도 회복이 힘들다.’였다. 의무기록에는 ‘이미 심각한 뇌손상으로 경막하 출혈과 지주막하 출혈이 심한 상황’이라 쓰여 있고, 당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신경학적 검사와 뇌CT검사 결과 수술을 해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진단하고 이 사실을 가족에게 설명하였다.’고 기록했다. 당시 진단은 ‘외상성 두부외상에 의한 경막하출혈과 지주막하 출혈, 그리고 두개골 및 안와부 골절’이다.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지난 9월30일 서울의대 재학생 102명이 실명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물대포라는 유발 요인이 없었다면 고 백남기씨는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외인사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 주시기를 청한다.’고 했다.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된다는 것은 국가고시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라면서 이는 명백한 오류가 단순한 실수이기를 바라면서 왜 시정할 수 없는 것 인지를 물었다. 다음날인 10월1일에는 서울의대 동문 365명이 역시 실명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들이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고인의 사망진단서

그런데 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모교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망진단서 작성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했을까? 진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병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직접사인을 ‘심폐정지’라고 쓴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사망의 종류를 ‘병사’라고 쓴 것도 잘못이다. 더군다나 의도하지 않게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검경의 의심을 일으켜 유족들이 원하지도 않는 부검을 통해 국가권력에 의해 두 번 죽이는 잘못을 유발할 처지에 놓여 있다. 유족들은 사고 발생 나흘 후 당시 경찰지휘부를 살인미수혐의로 고발했었다. 이미 10개월 전의 일이다. 정말 천만분의 하나, 만일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다.

 

조건부 부검영장

한차례 기각 후 법원은 결국 백씨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하였다.

참으로 이례적인 형식의 영장이다. 부검을 하되 유가족의 의사를 확인하라고 하면서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법원도 참으로 딱하다.

검경은 왜 이토록 부검에 집착하는 것일까? 사건을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권 차원에서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일까?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사람들에게 다시 주검을 맡길 수 없다.’며 부검을 거부하는 유족들에게 종로경찰서는 ‘부검관련 협의를 진행하려고 한다.’며 등기우편을 보냈다고 한다.

법원의 부검 영장에는 6가지 조건이 달려있다. 부검장소는 유가족의 의사를 확인해 유가족이 원하면 서울대병원에서 해야 한다. 유가족이 희망할 경우 유가족이 지명하는 의사2인, 변호사1인을 부검에 참여시켜야 한다. 신체훼손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부검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야 한다. 유가족에게 부검 절차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영장은 야간에도 집행할 수 있다. 유효기간은 10월25일까지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망진단서

명백한 오류와 상식에 어긋나는 판단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10월 3일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기자회견을 보면, 진단서는 실수가 아니었다. 은폐를 위해 그런 것은 아니며, 외부의 개입은 없었고, 수술을 집도했던 주치의 신경외과 백교수의 판단이 그러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만약 최선의 치료를 하고도 사망에 이르렀다면 사망종류를 외인사로 썼을 것’이라고 했다.

뇌출혈은 크게 질병으로 발생하는 자발성 두개내 출혈과 외상으로 발생하는 외상성 출혈로 나뉜다. 외상성인 경우에는 I60이 아니라 S06코드를 써야한다. 사망의 종류를 기록할 때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하였다면 ‘외인사’로 써야 한다. ‘병사’는 질병 외에 다른 외부요인이 없다고 의학적으로 판단이 되는 경우만 선택하여야 한다. 이 사실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와 전공의가 몰랐다는 말인가?

 

사망진단서 작성원칙

2011년 4월 7일 개정된 의료법 시행규칙 별지 제6호 서식인 사망진단서는 사망의 원인으로 직접사인과 이의 원인을 기재하게 되어있으며, 사망의 종류로 병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의 세가지중 한 가지를 체크하도록 되어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망진단은 2015년 7월1일자 통계청 고시 제 2015-159호로 공표되고, 2016년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7차 개정에 따라 작성되고 있다.

사망에 대한 진단서 작성 지침 및 분류부호부여 방법은 제2권 지침서 37쪽에서 161쪽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제 37쪽에서 기술되어 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사인(causes of death)은 ‘사망을 초래하거나 원인이 되는 모든 질병, 병태 또는 손상과 이러한 손상을 유발시킨 사고나 폭력상황’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의 목적은 모든 관련 정보를 기록하도록 하고 진단서 작성자가 임의적으로 일부병태를 선택하거나 제외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있다. 이 정의는 심장기능 상실이나 호흡기능상실과 같은 증상이나 사망유형은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행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딩지침서에 의하면, 외부원인으로 인한 두부손상인 경우 S 코드를 사용해야한다. 의무기록상 인식(state of awareness), 인지(cognition), 정신(mentation), 의식(state of consciousness)의 변화와 글래스고 혼수척도 3점-12점으로 기록되어 있다면 두개내 손상(intracranial injury)으로 S06 코드를 사용해야한다. 외인코드는 외상의 의도를 표시할 수 있도록 구분되어 있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자해인지,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한 살인이나 상해인지를 표시할 수 있도록 코드가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직접사인과 원사인

사망원인에 둘이상의 사인이 기록되었다면 원사인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원사인(Underlying cause of death)은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일련의 사건들을 야기한 질병 또는 손상, 치명상을 일으킨 사고나 폭력상황’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모든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병적 상태를 명시하고 그러한 원인을 야기 시킨 모든 선행병태를 기재하고 서명하여야할 책임이 있다.’고 적시하였다.

사망진단서 서식에 있는 사망의 원인에는 직접사인은 (가)에 기록하며, 사인으로 (나), (다), (라)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는데, ‘직접사인(가)’는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질병 또는 병태’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심장기능상실, 호흡기능상실과 같은 사망유형을 기재하면 안된다. 사인이 된 질병, 손상 또는 합병증을 기재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근원적인 선행사인(originating antecedent cause)’은 ‘근원사인(originating cause)’이라고도 하며, 가장 하단(라)에 기재하며, (나) 혹은 (다)는 중간에 개입된 원인을 기재한다.

저라면 외인사라고 썼을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5시30분 서울대병원과 서울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위원장인 이 윤성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서울의대의 법의학교수이며, 국가생명윤리위원장이고, 현 대한의학회장이다.

그러나 백씨의 주치의였던 신경외과 백선하교수는 ‘환자분께서 최선의 진료를 받지 않고 사망에 이르러 병사로 기재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외상성 경막하출혈이 원사인이 아니라는 것인가?

한 신문의 그림판에는 ‘외인사 아닌 병사’.. ‘의사 아닌 병사’..라고 그렸다.

안철수의원은 ‘사망원인은 병사가 아닌 외인사이며, 의학에는 정치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개입해서도 안된다.’고 비판하였다. 한 의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사망진단서의 철학이 언급되는 시대는 퇴행의 시대’라고 하면서 ‘고 백남기씨가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고 썼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리 국민 누구도 다시는 이런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 앞에서 진실을 감추려는 자가 없길 바란다. 그리고 존엄한 인간에 대해 정의로운 의사의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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