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塊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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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塊案
  • 승인 2017.03.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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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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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86) - 兪震의 醫案(1)

내용) 修弓杜匠의 子婦가 나이가 30세였는데, 임신한지 반년이 되었다. 매번 통증이 일어날 때마다 산파를 불러서 아기가 태어날 것처럼 하였다. 하루 이틀씩 반복하면서 무릇 여러차례 그렇게 하였다. 이에 戴人에게 물어보았다. 戴人이 그 맥을 잡아보니 澁하면서 小하였다. 이에 진단하여 “塊病이오, 임신이 아닙니다. 脈訣의 이른바 澁脈은 마치 칼로 대나무를 긁는 것같이 흘러가니, 丈夫의 傷精과 女人의 敗血을 主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治法은 아래에 병이 있으면 마땅히 瀉해야 하는 것이니, 舟車丸 百餘粒을 사용하고, 이후에 調胃承氣湯加當歸、桃仁을 투여하였다. 이삼일 후에 또 舟車丸、桃仁承氣湯을 투여하니, 靑黃色의 膿血이 섞여서 나왔다. 다시 화장실에 가서 손으로 아래를 향해서 밀어서 문질러주게 하니 대변이 나왔다. 이삼일 후 또 舟車丸、豬腎散、通經散 등을 사용해서 몇일간 계속 瀉下시키고 맑은 날을 기다려 식전에 三陰交에 침을 놓아 瀉하였다. 열흘이 지나지 않아 병이 이미 없어졌다. 震震의 按語: 子和의 이러한 종류의 治驗은 대락 10여條가 있다. 脈象을 기재할 때 沈細하다고 하지 않으면 沈遲하다고 하는데, 이 條에서는 小而澁하다고 하였고, 用藥에 있어서 積이 위에 있을 때는 茶調散、三聖散、瓜蒂散을 爲主로 하고, 積이 아래에 있을 때는 舟車丸、神佑丸、承氣湯、通經散을 爲主하고, 積이 가운데 있을 때는 이 두가지를 겸해서 사용하였다. 무릇 토하고 설사시키기를 대략 수십차례하여 5∼6 장군(缶)을 가득 채우니, 이러한 종류의 병 치료하는 것이 어찌 項籍이나 樊噲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樊噲將軍은 鴻門의 연회에서 생돼지의 어깨를 잘라서 먹고 또 분노했을 때에도 積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壯盛한 사람은 積이 없고 虛한 사람은 있다고 할 수 있으니, 張潔古의 養正積自除의 論이 가장 見識이 있다고 할 것이다. 어찌 麻知幾의 무리들이 그 설을 거만하게 베풀어서 惑世誣民할 것인가? (兪震, 『古今醫案按』)

按語) 위의 醫案은 醫案 자체는 張從正(호가 戴人)의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兪震의 『古今醫案按』의 按語에 중점을 두어 소개한다. 兪震은 청나라의 의학자로 의안 전문가로서 『古今醫案按』에서 자신의 按語를 통해서 역대 의가들의 치료법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 兪震은 위의 張從正의 치료법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張從正의 “積이 위에 있을 때는 茶調散、三聖散、瓜蒂散을 爲主로 하고, 積이 아래에 있을 때는 舟車丸、神佑丸、承氣湯、通經散을 爲主하고, 積이 가운데 있을 때는 이 두가지를 겸해서 사용하였다.”는 것은 기가 실한 사람들에게는 통용될 수 있지만 기가 허한 사람들에게 잘못 썼다가는 목숨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인체의 虛實을 판별하여 치료의 大綱을 정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辨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張從正이 활동했던 시기와 지역에 실한 환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張從正이 활동한 지역이 河北省이고 원나라 시대로 북방계 환자들이 위주였고, 兪震이 활동한 지역이 浙江省이고 청나라 시대로 남방계 환자들이 위주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兪震의 주장도 감안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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