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75>『李石澗集』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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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75>『李石澗集』①
  • 승인 2017.04.29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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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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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說의 고향, 영주 명의 李碩幹
◇『이석간집』

대학원 전공생들이 춘계 사적답사로 영주 일대를 선택했다고 안내를 청해왔다. 이곳은 조선 전통 서원교육의 효시를 이루는 소수서원이 있어 유서 깊은 지역이다. 또 인삼재배로 이름난 지방이라 풍기인삼박물관이 자리 잡아 있을 뿐만 아니라 명의 이석간의 후손들이 오래 전부터 전해 오던 집안의 유물을 기증하고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렸던 적도 있어 평소 관심이 많았던 터이다.

필자는 당시 일괄 기증된 유물 가운데서 ‘大藥賦’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친필로 작성한 科紙를 발견하고 흥분해 마지않았던 적이 있었다. 이후 관련 자료를 실사하여 논고를 발표한 바 있거니와 산청한의학박물관 소장유물 가운데서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험의학 내용이 담겨 있는『이석간경험방』사본을 발굴하였다. 당시 이런 일들이 그저 우연으로만 여겨지지 않았는데, 조선시대 명의 家系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개최되어 더욱 더 뜻 깊은 행사로 이어졌으며, 아마도 이러한 일들은 이전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간 이석간에 대해서는 이 자리를 빌려 몇 차례 그 개략을 소개한 바 있다.(『李石澗經驗方』, 286회 세월의 돌 틈을 흘러온 경험의술, 2006년4월3일자,  『石澗集&』 431회 탕액편의 源流가 된 鄕藥單方, 2009년9월21일자, 432회 전설이 되어 버린, 天下名醫 李碩幹, 9월28일자) 또 이와 함께 이석간을 비롯하여 채득기, 박렴, 허임 이들 4분 명의들의 경험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만든 조선 후기 민간전승 경험방인 『사의경험방』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루어진 바 있다.(125회, 2002년9월16일자, 126회 9월30일자.)

오늘은 단지 책 얘기보다는 그의 행적이 스며있는 설화를 살펴보려 한다. 그는 영주시내 ‘뒤세’ 마을에 살았는데, 천품이 어질고 의술을 널리 베풀어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는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신혼인 젊은 부인이 찾아와 혼인하고 나서 신랑이 날마다 조금씩 작아지더니 마침내 1년 만에 어린애처럼 바뀌었다는 것이다. 품안에서 젖먹이 같이 변해버린 남편을 내놓았는데, 체구는 작지만 까만 수염이 나있어 어른임에 틀림없었다.

이석간은 몇 년간 읽어온 여러 의서를 죄다 짚어 보았지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별수 없이 1~2달 말미를 얻어 고쳐볼 방도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젊은 부인은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서, 인형만한 남편을 가슴에 품고 돌아갔다. 하지만 언약은 했으나 밤낮없이 고심해 봐도 마땅한 치료법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마침내 그는 식음을 끊고 고민하다가 멀리 도망칠 요량으로 죽령고개를 넘었다. 고갯마루에서 너럭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등이 한데 붙은 장정 2사람이 영차, 영차 소리를 맞춰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의 앞에 다가와서 “영천의 천하명의 이석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석간은 아주 이상한 병자를 만나 무슨 병인지 고치질 못해 줄행랑을 치고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하명의도 헛수고라, 우리 병을 고치고자 하여도 소용없겠군.”하고 돌아가려는 것을 이석간이 붙들고서, “그 병은 듣도 보도 못한 희귀병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젊은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 병은 어릴 때 어미젖이 모자라서 굶주렸기 때문이며, 장가들어 오그라든 것이니, 1000군데 初産婦 모유를 모아다가 함지에 부어두고 병자를 목욕시키면 완쾌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석간이 반신반의하면서도 젊은 부인을 맞아 등 붙은 장정에게 들은 처방을 부인에게 일러주었다. 부인이 그대로 따랐더니 남편이 점차 부풀어 오르듯 커져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훗날 이것은 산신령이 인도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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