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776>『李石澗集』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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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776>『李石澗集』②
  • 승인 2017.05.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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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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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떨친 명성, 전설로 남아

지난주에 이어 명의 이석간의 설화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의술이 고명해져 명성이 점차 조선 팔도에 퍼져 나가서 병자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으며, 마침내 소문이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때마침 명나라 천자의 모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던 차인지라 급히 사신을 조선에 보내왔다. 황명을 받들고 조선에 찾아온 사신은 영천(영주) 땅에 산다는 조선 의원을 속히 중국에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이석간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어명으로 길을 나섰는데, 압록강을 건너 여러 날 동안 중국으로 가면서, 가는 곳마다 접대가 융숭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천자 앞에 대령하였더니, 말인즉 소문에 듣자하니 그대가 세상에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다하기에 멀리서 불렀다고 하면서, 황궁의 太醫들과 천하의 유명한 의사들이 모두 나서 진맥을 하고 약을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부득이 머나먼 조선의 의원을 부르게 되었으니, 그대가 지닌 의술을 다하여 고쳐주면 어떤 소원이라도 모두 다 들어줄 것이나 만약 고치지 못할 경우에는 모후의 병과 황실의 기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윽고 구중궁궐 황궁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되어 병자를 만나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대략 예순 살쯤 된 여인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하고 두 손은 섬섬옥수로 희어 가히 천하일색이었으니, 겉으로 보기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사연을 듣자하니 6년 전부터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되어 이렇게 누워서 시름시름 앓고만 지내고 있으니 살펴보라고 했다. 

이석간이 명주로 된 얇은 수건을 황태후의 팔뚝 위에 얹고 손목을 잡아 진찰해보니 육맥이 고르게 뛰어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병이 없다고 하자 천자가 노기를 띠며 이불을 걷어 내었다. 그러자 병자의 하반신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다리가 뱀처럼 비늘이 돋아 흉측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놀란 이석간이 말문을 열지 못한 채 앉아만 있다가 불려나왔는데, 천자의 다그침에 다만 6개월의 말미를 얻어 고쳐보겠노라고 마지못해 약조하게 되었다.

엉겁결에 대답은 하였으나 으리으리한 처소에 호화롭기 짝이 없는 접대를 받아도 좌불안석일 뿐이었다. 그저 이제는 영락없이 이국땅에서 죽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문을 닫아걸고 무릎을 꿇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었다. 예전에 죽령고개에서 만난 등 붙은 장정이 떠올라 그저 일심으로 축원해 보기로 하였다.

1달 넘게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어느 날 밤, 예의 그 등 붙은 장정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소백산 산신령인데 어찌하여 날 그렇게 애타게 찾느냐?”고 물었다. 사연을 아뢰니 “황태후는 원래 음탕한 여자로 선왕이 죽은 후 오랫동안 독수공방하면서 억지로 음욕을 참은 것이 병이 되어 뱀처럼 변했으니, 금침을 배꼽에 꽂아두면 음기가 소변으로 흘러나와 1달 뒤에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날부터 치료하기 시작하여 1달 만에 완쾌되었다. 

이석간은 천하의 명산대천을 두루 구경하고 천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금은보화와 재물을 듬뿍 선사받았다. 이때 송별연에 올라온 천도복숭아를 먹고 나서 그 씨를 도포자락에 넣어 귀국했는데, 이것으로 술잔을 만들었다. 공주이씨 후손들이 혼례에 합환주잔으로 사용해 왔다고 하는 이 잔이 지금도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때의 공으로 조정으로부터 99칸 기와집을 하사받았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은 채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보기 드문 의약사적지로써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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