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296) - 姜丁熙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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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96) - 姜丁熙의 醫案(1)
  • 승인 2017.07.2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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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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腰痛案

                           

宮井洞 居住人으로서 60세 女老婆. 평소에 건전한 老婆로써 無病하였다. 어느날 물을 길은 바께스를 덜다가 허리가 꿈틀하더니 그 후로 허리를 前後左右로 搖動할 수 없게 되었다. 病院에서 가서 주사를 맞는다 해도 效力이 없을 뿐 아니라 더욱 심해질 정도로 起動이 不利하였다. 최후로 本院에 엎여서 내원하였다. 腰椎運動을 施行하고 腎兪, 京門(澤田派)을 刺鍼하고, 야고비線上 大腸兪 外 腰眼穴에 刺鍼, 承扶, 殷門, 次髎, 陽陵泉, 趺陽, 崑崙 등에 刺鍼하고, 澤田派式으로 中脘, 陽池를 通氣하여 보았다. 그리하여 試運動을 하여 본 바 약간 差效는 있으나 別로 差度는 없다.

그리하여 다시 伏臥시켜 그 疼痛部位를 探索하여 본 바 腰仙部에 電氣도란지스타로 探索하여 본 바 이 點(腰仙部)에 100% 指鍼부라쓰로 上昇하였다. 卽時打點後 皮內鍼(五分鍼)을 腰仙部 皮下에 置鍼 반찬고를 부치고서 일어서보라고 하였더니 무심코 기립하는 자세가 平素와 同一하다. 前後左右로 搖動하여 보았으나 異常이 없다하여 皮內鍼에 대한 效力을 筆者 자신도 驚愕하였다. (「腰痛症과 治療」, 『醫林』제68호, 1968)

按語) 姜丁熙先生(생몰년대 미상)은 경상남도 출신으로서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에서 安保한의원을 운영한 한의사이다. 그는 일찍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가서 한의학 관련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전비방을 이론과 합치시키기 위한 연구를 우리기간 하여 한의학계에서 이름있는 한의학자였다. 특히 그의 鍼術을 ‘神鍼’이라는 別號를 받을만큼 鍼灸學에 있어서 명성이 높았다. 특히 神經痛과 胃腸病 등의 치료에서 그의 鍼術은 유명하였다.

이 醫案은 1968년 『醫林』제68호에 나온 「腰痛症과 治療」라는 제목의 논문에 들어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요통에 대한 침구법으로 다음과 같은 穴名을 제시하고 있다. 中脘, 大巨, 脾兪, 腎兪, 京門, 大腸兪, 陽關, 次髎, 小野寺臀點, 寒付, 陽陵泉, 中封. 이외에도 肝兪가 필요한 경우가 많고, 또한 腰腹神經痛이 있을 때에는 側腹部의 帶脈과 維道穴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壓痛이 많고 硬結點이 현저히 出現할 경우에는 穴外의 阿是穴을 선택하여 刺絡 또는 刺鍼(强鍼)으로 施行하면 즉석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꿈틀거리는 腰痛에는 제4, 제5 腰椎橫突起間(關元兪) 脊柱에 접근한 부위에 鍼灸하면 특히 효력이 현저히 나타난다.

또한 夜間疼痛은 全屬血이라고 古典에 明記하여 있음과 같이 夜間腰痛은 血液循環에 留意하여야 하며, 기타 痛症에도 血液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의사협보(후의 한의신문) 1969년 9월 30일자에는 “鍼道源流, 日式鍼術制壓”, “한국한의학의 우수성 과시, 29일 이병행씨와 강정희씨 임상 비교 실험”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姜丁熙先生은 일본식 침법에 조예가 깊었던 한의사였으며 위에서 사용하고 있는 鍼灸法은 일본식 침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교류와 협력이 논의되고 있는 현시점에 姜丁熙先生의 醫案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본다.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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