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298) - 張順孫(1453-1534)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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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98) - 張順孫(1453-1534)의 醫案(1)
  • 승인 2017.08.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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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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瘡口未合案

                          

내의원 도제조 張順孫, 제조 金安老, 부제조 南世雄 등이 藥房에 가서 문안하고는 인하여 아뢰기를, “어제 朴世擧가 전교를 듣고 전해주었기 때문에 신들은 전하의 종기가 난곳에서 누런 물이 계속 나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瘡口가 거의 아문 것인데 창구가 아물려면 반드시 먼저 새살이 나오는 법이니 새살이 나왔는지 여부를 모르겠습니다. 만약 새살이 나오지 않았다면 마땅히 太一膏를 붙여야만 새살이 속히 나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은 별다른 증세가 없고 단지 진한 고름은 나오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창구가 아물지도 않고 누런 물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미리 박세거에게 말한 것이다. 창구가 아물지 않고 누런 물이 계속 나오는데, 고약을 부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장순손 등이 回啓하기를, “엷게 누런 물이 나오더라도 고약을 붙여야 합니다. 그 물은 고약으로는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물이 나오면 고약이 저절로 떨어지는데 그때마다 물을 닦아내고 다시 붙여서 새살이 옷에 스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창구가 아물더라도 마땅히 조심하여 조리해야 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壬子/內醫院都提調張順孫、提調金安老、副提調南世雄等, 請藥房問安, 仍啓曰: "昨日朴世擧, 聞傳敎而傳言, 故臣等聞之, 腫處淡黃水連出云。 然則瘡口幾合矣, 瘡口將合, 則必先生肌, 生肌與否, 未知何如? 若不生肌, 則當傳大一膏, 然後乃速生肌矣。" 傳曰: "今無他證, 但濃汁之絶已久, 而瘡口未合, 淡黃水連出, 故頃言于朴世擧耳。 瘡口未合, 而淡黃水連出, 傳膏何如?" 順孫等回啓曰: "淡黃水雖出, 而可以傳膏。 水不以膏而絶, 水出則膏必自落, 當拭水而還傳, 不使新生軟肌見磨也。 且瘡口雖合, 尤當調愼也。" 傳曰: "知道。")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의 『중종실록』의 번역을 따옴. 1533년. ‘중종 74권 28년 3월 9일 (임자) 001 / 종기에 대해 의논하다’) 

按語) 張順孫(1453-1534)은 중종반정에 영의정까지 오른 문관 출신 학자이다. 그는 이 시기에 藥房提調를 겸임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중신들 가운데 의학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위의 醫案은 중종의 피부병을 치료한 기록으로서 瘡口가 거의 아물게 되었지만 아직 淡黃水가 나오는 상황에서 太一膏를 붙여서 새살이 돋아나도록 하는 과정이다. 太一膏는 『太平惠民和劑局方』에 나오는 神仙太一膏를 말한다. 神仙太一膏는 神仙太乙膏의 異名이다. 神仙太乙膏를 『東醫寶鑑』癰疽門에서는 “治五發癰疽, 一切惡瘡及蛇虎犬蝎幷湯火刀斧打撲損傷. 可內服外貼○若作丸服之則蛤粉爲衣○一名神仙太乙膏(方見雜方)”이라고 主治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방 조성과 제조법에 대해서는 “玄參, 白芷, 當歸, 肉桂, 赤芍藥, 大黃, 生地黃 各一兩, 剉浸麻油二斤. 春五夏三秋七冬十日, 慢火煎, 令白芷焦黃色去滓, 下黃丹一斤, 極攪勻, 滴水中成珠. 乃候凝作片聽用<局方>”이라고 하였다. 『朝鮮王朝實錄』전체에서 太一膏를 사용한 기록은 모두 4회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3회가 중종 시기에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 시기 太一膏의 사용 용례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本名인 神仙太一膏가 『醫方類聚』173권 癰疽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처방을 『醫方類聚』를 참조해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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