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학의 한의학, 그리고 뇌인지과학
상태바
심신의학의 한의학, 그리고 뇌인지과학
  • 승인 2017.11.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인선

이인선

mjmedi@http://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

 

한의학을 전공한 뇌신경과학자, 심신의학 및 인지과학적 관점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한의사라고 소개를 할 때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연구를 하면 할수록, 한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뇌신경과학자들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과연 한의학이 뇌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첫 번째 글에서는 한의학과 심신의학, 인지과학의 관계를 소개하고, 두 번째 글에서는 박사 학위 과정 중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들을 대상으로 뇌인지과학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학은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쪽의 병리적인 변화가 다른 쪽에 영향을 준다는 심신의학 (psychosomatic medicine)의 관점으로 인체의 생리·병리적 현상을 해석하고 치료하는 의학이다. 한의학자들이 수천년간 연구와 임상에서 이용해 온 심신의학이 서양 의학자들에게는 최근에 들어서야 주목을 받고 있으니, 인체를 탐구하면 할수록 전신적인 관점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 의학에서는 주로 특발성 통증 질환, 기능성 위장관 장애 (기능성 소화불량 및 과민성 대장 증후군), 심혈관질환, 식이 장애 (거식증, 폭식증) 및 암환자들의 우울 및 불안 증상을 심신의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림 1. Cognition in traditional Korean medicine; 침이라는 외부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치료의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http://cmslab.khu.ac.kr)

마음이 몸에 일으키는 신체 변화를 탐구하는 것이 심신의학이라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뇌가 몸 (internal)과 주위 환경 (external)에서 제시되는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뇌)인지과학이다. 예를 들어, 착시는 뇌가 시각적 정보를 (external visual stimuli) 실제와 다르게 처리하는 현상으로 뇌가 외부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지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지과학과 심신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으로는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가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위약 효과라고 번역하고, 실제로 치료 효과가 없는 가짜약이 치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진통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약물도, 약물이 주입되는 시점을 알려주지 않을 때(hidden drug)보다 알려주었을 때 (open drug) 진통 효과가 증가한다. 최근까지는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플라시보 대조군을 이용해 위약 효과를 배제한 효과를 측정했지만, 심신의학자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배제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 상황에 이용하여 기존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침 치료를 받을 때의 상황을 한 번 상상해보자. 진료, 진단, 처방, 치료의 과정에서 환자는 의사의 첫인상, 진료실의 풍경과 냄새, 위생 상태, 진료 내용과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 치료 방법에 대한 (불)만족감, 그리고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 영향을 받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 효과를 잘 설명하고, 신뢰감을 줄 수록 더 큰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사의 복장 및 태도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시보 효과는 이와 반대로  효과에 대한 불신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의 영향으로 실제 치료 효과가 줄어들거나 부작용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예를 들어 부작용에 대한 기대감은 실제 부작용 발생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플라시보 효과와 함께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 (심신의학적 관점)과 외부의 자극 (치료)를 받아들이는 몸의 반응 (인지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2. 심신의학 및 인지과학.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으며 외부 세계는 개인의 성향과 상황,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효과를 강화하고 노시보 효과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침의 위약 효과를 높이자고 말하면 마치 치료 효과가 없는 침 (혹은 치료 효과를 배제한 가짜 침)의 효과를 내기 위해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방향보다는, 침 치료 과정에서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침 치료 효과의 기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침 자극 요소 (경혈 선정, 침 자극의 방법, 횟수, 깊이, 강도 등) 이외의 기타 요소의 역할에 대해 고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심신의학의 특성상, 사회학, 심리학, 정신의학, 신경학, 내과학, 정신신경면역학 등이 통합된 다학제적 연구와 진료 환경이 요구된다. 또 뇌인지과학의 발전으로 침의 치료 효과를 뇌의 반응과 몸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의학자들이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다른 학문과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면, 한의사 주도적으로 다른 학문과 융합하여 한의학의 경계가 넓어지고 임상과 연구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한의사 이인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