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작은 불(少火)의 위로(慰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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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작은 불(少火)의 위로(慰勞)
  • 승인 2017.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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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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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신의학에 대한 교양서적을 읽었다. 재밌게 읽다가 갑자기 새롭게 보이는 구절이 있었다. 한의사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그 두 물질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김 영 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아실만한 내용이지만 잠깐 정리해보자면, 우리 몸에는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담당하는 두 가지 물질이 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다. 도파민은 짜릿한 쾌감이나 흥분과 같이 자극적 즐거움을 담당하고 세로토닌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즐거움을 담당한다. 

도파민은 고통도 잊고 일과 업무에 몰입하게 해준다. 신바람을 일으켜 일에 몰입하게 해주는 물질이지만 자극적이다. 그래서 도파민이 과도한 상태가 되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한다. 우리의 70~80년대 고속 성장기가 뭐든지 ‘하면 된다.’ 가 통하던 전 국민의 도파민 과잉시대시기였다. 업무에서도 도파민 과잉, 음주가무로 대표되던 휴식에서도 도파민 과잉, 그 시절을 살던 분들은 이 물질의 힘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이 도파민이라는 놈은 중독성이 높다. 몰입하고 경쟁해서 성취하는 그 기분에 도취되기 시작하면 일도 휴식도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게 된다. 도파민이 가득한 그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술, 담배, 마약처럼 급격히 도파민 분비를 높이는 물질에 의존하기도 한다. 

반면 세로토닌은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할 수 있지만, 일상 속에서 편안한 기분, 안정된 기분을 느낄 때 많이 나오는 물질이다. 산책과 가족이 떠오르는 북유럽의 고즈넉한 일상을 닮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물질이 충만할 때의 기분에 익숙하지 않다. 때로는 심심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식당의 MSG에 길들여진 입맛이 집 밥을 심심하게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 2가지 물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다시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의학을 배운 나도 ‘행복의 기준을 너무 도파민 쪽에 맞추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큰 이벤트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싶었다. 오히려 심심한 일상의 안정된 느낌이 훨씬 정신 건강에 유익한데도 말이다.

예술가나 연예인들이 도파민에 의한 강렬한 자극에 자주 노출되는 대표적 직업군이다. 자극적 쾌락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까 일상의 잔잔한 행복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자꾸 자극적인 것을 쫓게 된다. <자기만의 행복 그릇>은 내실(內實)없이 외형만 커져 간다. 어떤 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큰 그릇이 자리 잡은 마음은 늘 공허하다. 그래서 예술가, 연예인들이 느끼는 공허함이 우울증으로 종종 이어지곤 한다.

이 두 물질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황제내경 소문의 ‘壯火食氣 少火生氣’ 가 떠오른다. 맞다, 참 맞는 말이다. 큰 자극(壯火)은 오히려 기를 손상시키고, 적당하게 작은 자극(少火)이 기를 살린다는 말이다. 우리의 행복과 즐거움을 담당하는 이 두 가지 물질만 봐도 딱 맞는 말이다. 

누구나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자기만의 행복 그릇>의 크기와 재질도 다르다. 다들 즐거워할 만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데도 세상 행복을 다 가진듯한 사람이 있다. 이제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간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위한 위로나 조언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도록 혼자 감내하며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사람에게 옆에서 자꾸 ‘화이팅’ ‘힘내’ ‘밖에 나가서 기분 전환 좀 하자’ 하는 위로는 전형적인 ‘壯火食氣’ 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저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소극적인 위로가 오히려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壯火에 익숙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파이팅을 외쳐야 힘이 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도 서로의 다름에 주목할 시기가 되었다. 

내가 편하고 좋은 것이 남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나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 남의 기운을 갉아 먹을 수 있다. 도파민 형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과 세로토닌 형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다르니까 말이다. 가족이니까, 선배니까, 친구니까 도와주려던 그 조언과 행동들이 壯火食氣 인지, 少火生氣인지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해볼 시점이다. 위로와 조언이 넘치는 요즘, 조용히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더 사랑스럽다. 상대를 깊이 헤아려서 나오는 정제된 위로, 이보다 따뜻한 것이 있을까?   

김영호 /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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