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815> - 『紅疹神鑑』①
상태바
<고의서산책/815> - 『紅疹神鑑』①
  • 승인 2018.03.24 0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病亂에 휩싸인 나라를 구할 방책

며칠 전 역대 의학인물 연구에 열중해 온 박훈평 선생으로부터 신간서 1권이 우송되어 왔다. 책 표지에는 『조선, 홍역을 앓다』라고 적힌 제목이 붙여져 있어 다소 상업출판에 기운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서제 아래 ‘조선후기 홍역치료의 역사’라는 부제가 있어 학술 면에도 균형감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홍진신감』

차례를 훑어보니 조선후기 소아 전염병의 대종을 이루었던 마진의 계통을 파악하고 시대별로 발전과정을 분석하고자 한 짜임새 있는 노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의학인물에 대한 폭 넓은 지식과 자료를 토대로 일일이 대조하여 이뤄낸 내용은 전통 방역서에 대한 문헌 연구로는 근래 보기 드문 성과라고 여겨진다.

이 책에 거론된 다수의 홍역치료서 가운데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누구나 구해 보기 어렵지 않은 마진 전문치료서 1편을 골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서명은 『紅疹神鑑』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며, 앞뒤 표지를 제외한 본문만 39면이다. 권수제면에 도서관 장서인만 찍혀 있고 웹서비스로 제공하는 이미지에는 작성자나 작성 시기를 가늠할 만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추가 정보가 아쉬워 한국고전적종합목록의 상세정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니 발행사항에는 간사지, 간사자, 간사년 모두 미상으로 올라있고 형태사항으로는 ‘1책(21장), 12행, 字數不同, 26.8×20.0cm’로 되어 있다. 주기사항에는 ‘壬午(?)至月日謄出’이라고 적혀 있다. 본문 안에 서발이나 목차가 따로 찾아지지 않으니 필시 표지나 이면에 등사시기가 적혀 있지 않았나 싶다.

 『홍진신감』은 진즉 이 코너를 통해 처음 소개한 柳瑺의 『柳下神方』(고의서산책 229회, 柳下에 심은 고상한 뜻을 기려, 2005년1월10일자)을 조술하여 작성된 것으로 고증되었다. 서지정보에 저자나 등사자에 대해서 미상이라 하였으나 박의 책에는 ‘傳’이라는 단서를 달아 申晦(1706~1780추정)라는 인물을 거명하였다.

이것은 본문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麻疹通論의 논제 아래 ‘此方, 故領相申晦所命, 而合於近世運氣者’라고 적은 주기에 의거한 것인데, 신회는 1775년 을미년 유행 당시 약방도제조로서 경험방을 모아 편찬을 지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책의 뒷부분에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홍역이 유행할 때 사용한 경험방이 한데 모아져 있으므로 신회를 직접 저자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주도하여 이루어진 을미년 마진 경험방을 토대로 이후 50여년 동안 축적된 홍역 치험 가운데 임오년 홍역치료에 적합한 것을 중심으로 재편하여 방역에 대비하고자 한 마진치료서라 하겠다.

전체적인 내용을 한눈에 파악해 보기 위해 본문의 소제를 토대로 목차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麻疹通論, 論疹出宜快並顔色輕重, 麻疹治法大略, 麻疹潮熱, 麻疹雜症, 汗渴飮水, 出沒煩燥, 出沒譫語, 出沒咳嗽, 出沒泄瀉, 出沒痢疾, 구토복통, 출혈변혈, 음식창독, 잉부마진, 마진역증, 論痘癰疹毒不同, 疹後中惡症 등이다. 박의 분석에 따르면 여기까지는 柳瑺이 지은 『柳下神方』과 비교했을 때 首論인 ‘마진통론’이 ‘臨症指南’으로 이름이 다르고 일부 항목에서 순서가 뒤바뀐 것을 제외하곤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병발증상인 번조, 섬어, 해수, 설사, 이질 증상에 대해 出沒한다고 표현한 것도 매우 재미난 착상이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麻疹治法條例를 필두로 乙未紅疹洪鳳山龜所命新方, 丁未春紅疹論, 壬戌年冬紅疹論, 壬午紅疹澤雷以目擊立論 등 다수의 실지 경험에 바탕을 둔 경험방들이 제시된다. 박의 고찰에 따르면, 위에서 간지로만 표기한 여러 시기의 홍진경험방이 나타나는 해는 차례대로 1775년(을미), 1787년(정미), 1802년(임술), 1822년(임오)으로 추정하였다. 앞의 두 시기는 이미 다산 정약용의 『마과회통』에서 홍역이 크게 유행하였다고 기록하였고 1802년은 여러 가지 경험방이 쏟아져 나왔으니, 가히 病亂에 휩싸인 대재난의 시기였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