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 (316) - 야마다 교코(山田業廣, 1808∼1881) 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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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316) - 야마다 교코(山田業廣, 1808∼1881) 의 醫案(1)
  • 승인 2018.06.09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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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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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身不遂案


1876년 5월에 한 여자아이가 나이가 9세였다. 口眼喎斜, 言語蹇澁, 右半身不遂 등의 증상이 나타났는데 脈은 매우 緩하였다. 의사들이 모두 치료할 수 없다고 여기고는 혹 中風으로 치료하기도 하였고 혹 肝病으로 치료하였는데,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나 또한 肝病으로 치료하여 먼저 抑肝散에 羚羊角을 가해서 주니 첫째날에 嘔吐를 하면서 약과 음식을 모두 먹기를 거부하였다. 이에 작은 양의 半夏瀉心湯을 투여하니 사오일 지난 후에 토하는 것이 멈추었다. 내가 이 병을 脾虛發風의 증상에 속하는 것으로 여기고 곧바로 眞武湯, 資壽解語湯의 부류를 수십일 투여하였다. 그러나 嘔吐가 다시 이전처럼 재발하였고, 혀 윗부분에 누렇고 두터운 舌苔가 가득차서 혀가 수축되어 펴지지 못하여 말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이에 半夏瀉心湯, 小半夏加茯苓湯 등을 십여일 투여하니 嘔吐가 점차 그치고 조금씩 음식을 먹고자 하였다. 이 때 病者는 수척해져 뼈까지 드러나 움푹파인 몰골이어서 살아날 방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물러나서 생각했다. 옛사람들이 脈이 緩한 것은 熱 때문이라고 여겼다. 또한 舌은 心의 苗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고 말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心經의 實熱로 인하지 않음이 없다. 이에 『嚴氏濟生方』中의 導赤散을 주니, 크게 일어날 형색을 띠게 되었다. 한달정도 지나서 곧 말을 하게 되었고, 손발이 이전처럼 회복되었다. 치료하여 여름을 넘겨 이듬해 봄에 이르자 모든 증상이 다 나았다. 내가 비로소 心肝의 증상은 진실로 구별되는데, 우리들이 도리어 왕왕 변별하지 못하여 마침내 환자들이 오랫동안 병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땅히 깊이 이것 때문임을 느껴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明治九年丙子五月. 一女子, 歲九歲. 口眼喎斜, 言語蹇澁, 右半身不遂, 脈甚緩. 醫皆認爲不治, 或以中風治之, 或以肝病治之, 無寸效. 余亦以肝治之, 先與抑肝散加羚羊角. 一日, 嘔吐, 藥食皆拒納, 投與小劑半夏瀉心湯, 四五日之後吐止. 余以爲該病屬脾虛發風之證, 便與眞武湯, 資壽解語湯之類數十日, 然嘔吐再發如前, 舌上布滿黃厚苔, 舌體縮而不展, 不能發聲. 於是, 與半夏瀉心湯, 小半夏加茯苓湯等十餘日, 嘔吐漸止, 稍欲飮食. 此時, 病者瘦骨嶙峋, 似無生還之路. 余退而思之, 古人認爲脈緩爲熱, 又舌爲心之苗. 其不能發聲, 言語不利者, 莫非是心經實熱所致. 於是, 與其『嚴氏濟生方』中的導赤散, 大有起色. 一月許, 便言語, 手足恢復如故. 治療經夏至春, 諸證全愈. 余始悟到心肝之證固然有別, 而吾人却往往不能辨之, 終致病人久病不起, 應深感慚愧爲是.) (필자 번역) (潘桂娟, 『日本漢方醫學』, 中國中醫藥出版社, 1994)

按語) 야마다 교코(山田業廣, 1808∼1881)는 日本 에도 막부 말기에 활약한 고증학파의 석학이다. 메이지시대에 들어와서 한방존속운동의 선두에 서면서 溫知社를 결성한 명의이다. (조기호, 『일본 한방의학을 말하다』, 군자출판사, 2008) 위의 醫案은 潘桂娟, 『日本漢方醫學』에서 재인용하여 번역한 한 것이다. 정확한 출전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潘桂娟의 『日本漢方醫學』에서는 『溫知醫談』, 『醫學管錐』, 『井見集附錄』 등에서 발췌한 醫案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야마다가 쓰고 있는 처방들은 『傷寒論』 등이 위주이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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