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37> - 『百方吉凶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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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37> - 『百方吉凶紀要』
  • 승인 2018.09.15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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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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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運이 기울어가던 시대의 아픔

   조선의 명운이 다해가던 무렵, 향촌 집집마다 구비해 두고 家事에 참조하던 가정필비서이자 통속의약서 한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표지 서명은 ‘百方吉凶法’이라고 되어 있으나 본문에서는 『百方吉凶紀要』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이와 함께 ‘歲己丑暮春下幹(澣)晦時也. 主人冊 玄成烈’이라 쓴 등사기가 적혀 있으며, 권미에는 ‘武陵精舍諸集冊’이라는 명문이 있다. 위의 여러 사항과 책의 외형, 지질을 고려해 보면 대략 1889년경 무릉정사라는 서당에서 가족과 인근 주민들을 보살피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백방길흉기요』

비록 線裝으로 묶여 있긴 하지만 크기도 작고 목차나 서발을 따로 두지 않은 것으로 보아, 농촌 가정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내용만을 가려 뽑아 선별하여 묶은 것이라 여겨진다. 본문의 내용은 得病日論, 得病凶日, 別枯焦日, 滅亡日로부터 時病防法, 痘疫豫防까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질병대처법이 다뤄져 있다.

  물론 그 내용은 의학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체제를 갖춘 것은 아니다. 때론 日辰에 따라 避忌, 祈呪하는 방법이 뒤섞여 있어 전반적으로 학문적인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상습질환과 환난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강구되어 있다.

  예컨대, 곡식을 축내는 쥐를 쫒기 위해 ‘鼠自滅法’이 있는가 하면, 囚人出獄法에는 생밤 1개에 죄인의 이름을 적어 쥐구멍에 두었다가 먹게 하면 저절로 풀려난다는 것이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아마도 순탄하지 않던 세상을 살아가던 민초들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자 했던 간절함이 담긴 풍속도라 하겠다.


  의약과 관련해서는 得病吉凶에 관한 논의나 유행병(時病)을 막는 방법으로부터, 順産法, 難産法, 不産法, 逆産還順法 등 출산속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또 男子絶陽不動하는 증상에 쓰이는 침구법, 흉복통에 구기자 뿌리(地骨皮)를 이용하여 치료하는 방법, 迎風冷淚에 약 쓰는 방법, 그리고 瘧母痰水 및 瘀血成塊로 인한 腹脇脹痛을 다스리는 章門穴 침법과 구법, 뿐만 아니라 狗肉滯나 뱀에게 물린데 쓰는 약(蛇咬藥) 등이 골고루 들어 있다.

  또 권 후반에는 남녀를 오행으로 구분하여 배필을 정할 때 서로 어울리는지 여부를 가늠했던 宮合法이 적혀 있고 또한 획수에 맞추어 운명에 이로운 이름을 짓는 作名法 등이 써 있어, 당시 민초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좀 더 의미 있는 내용은 ‘農家要覽’이란 내용으로 종자를 거두고 씨 뿌리는 시기나 날씨를 예측하여 농사일을 미리미리 예비하는 요령이 달에 따라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특히 한 해 동안의 날씨와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는 일은 농부가 생업에 관한 한 가장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또 권미에는 구급방에서 보듯이 溺水死와 縊死의 경우에, 이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외에도 得病生死法이나 三災知法, 生門方知法, 五合吉日, 黃黑道吉凶定局, 생기복덕 방위도 등이 들어 있으나 이 역시 이해납득하기보다는 국운이 기울어가던 시기, 측량하기 어려운 세상의 末俗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책들은 일제강점기로 이어져 비슷한 내용의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家庭百方吉凶秘訣』, 『家庭百方吉凶寶鑑』, 『百方吉凶新鑑』 등의 이름으로 신구서림이나 덕흥서림에서 대량 보급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나아가 시세 변화에 따라 다소의 내용을 가감 증보하여 1950~60년대까지 ‘가정보감’ 혹은 ‘가정비결’ 등의 이름을 붙여 꾸준히 이어졌으며, 대중서로서 하나의 흐름을 이어갔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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