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45> - 『石靈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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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45> - 『石靈訣』
  • 승인 2018.1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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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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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맞아 세상에 나온 石室祕書

조선 후기 작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필사본 의서 1종을 살펴보기로 한다. 변변하게 제대로 된 겉표지도 마련하지 못한 채, 그저 표제와 작성 시기만을 적어 종이끈을 꼬아 묶어 놓았다. 아마도 이로 보아 본문만 적어두고 미처 책으로 묶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석령결』

표지에는 朱書로『石靈訣』이라고 적은 제첨과 함께 乙酉인지 己酉인지 습기에 침습되어 구분하기 어렵게 번져버린 작성시기가 적혀 있다. 그 어느 것이던 대략 조선 말기 혹은 구한말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 속에는 기존의 의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특이한 용법들로 가득 차 있는데, 권수제면에는 ‘靈訣只用八卦’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그 아래 “得病三日內, 用三帖神效,”라고 적혀 있다.

대략 처방 산출법을 설명해 보자면 “남녀 모두 兌宮에서 시작하여 남자는 순행방향으로, 여자는 역행방향으로 추산하는데, 해 아래 월이 시작하고 월 아래 得病日이 시작하고 득병일 아래 다시 그 해가 이르는 손가락에서 괘상을 그려 生氣가 되는 곳의 소속 地支에 해당하는 약을 쓰는 방법이다…….”라 하여 運指法을 사용한 納甲法이 이용된다. 하지만 八卦와 干支를 바탕으로 수리오행으로 푸는 방법을 본초방제학으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개설에 해당하는 서문의 용약법에 이어 ‘出藥篇’이 등장하는데, 위의 방법으로 산출한 십간으로 표기한 분류에 따라 약방이 차례로 정리되어 있다. 예컨대 甲甲甲에 갑술작약탕, 병자감초탕, 무인백출탕, 임오익지탕, 경진사삼탕, 갑신치자탕, 을해사청탕, ……계미입묘산, 을유시호황련탕 등이다. 이런 방식으로 을을갑, 병병갑, 정정갑,……계계갑까지 각각 12개씩의 처방이 나열되어 있다.

이어 藥名에는 子에는 반하, 고삼, 황기, 丑에는 시호, 당귀, 박하, 조각,……戌에는 도인, 천궁, 숙하, 亥에는 연교, 부자에까지 이어진다. 또한 24절기로 구분하여 입춘에는 천궁, 우수에는 당귀, 한로에는 육종용, 상강에는 도인 등이 배속되어 있어 득병과 치료 시점의 절기에 따라 가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天干合化에 따라 약물 배속이 나뉘어져 있는데, 甲己甘草土, 乙庚黃芩金, 丙申黃栢水, 丁壬香附子山梔子木, 戊癸黃連火 등이다.

그 다음 장절에는 ‘隔簾診線’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는 이른바 불문진단법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전수되어왔는데, 그 이치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도 역사적 격변기에 등장한 술수해석법의 하나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앞의 방법이 득병일 기준이라면 뒤에 제시한 격렴진단법은 환자의 내원시각에 따라 좌우된다. 또 괘효를 만들어 투약할 처방의 분량, 즉 첩수도 결정하고 복약시간까지 지정하게 되니 이 정도면 가히 신앙에 가까운 믿음 없인 치료하기 어려울 지경이라 하겠다.

위와 같이 술수를 이용한 치료법은 인체의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12경락, 육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天干地支로 배속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取用藥에는 12경락별로 한열조습을 다스릴 약재가 설정되어 있고 나아가 引經藥까지 일일이 지정되어 있어 수리공식처럼 정밀하게 짜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오장육부별로 胞胎藥과 12경락별로 五腧穴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권후반에는 靑烏遺訣이라는 題下에 별도의 용약론과 六氣變化, 總論, 12經五行藥式, 五行盛衰圖, 五行記, 九宮三才變化靈機算法 등이 이어진다. 특별히 권미에는 작성을 마친 뒤에 적은 필사기가 한줄 적혀 있다. “以上神訣, 乃石室中雷破後, 始傳於世, 而驗之秘之, 勿泄也哉. 梅吾子 謹毫.” 바위굴에 숨겨져 있다가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했다는 비전의서, 난세를 구하려고 선운사 돌부처 배꼽에서 꺼냈다는 東學祕書와 묘한 일치감을 보여준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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