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62> - 『兒學編』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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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62> - 『兒學編』①
  • 승인 2019.03.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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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다산이 시도한 문자교육 개혁안

양나라 周興嗣가 단 하루 만에 1천자의 글자를 중복되지 않게 앞뒤로 배열하여 글을 지어 올리라는 임금의 명령을 받고서 노심초사한 끝에 만들었다는『천자문』, 그래서 하룻밤 사이 머리가 온통 하얗게 새어버렸기에 일명 ‘白首文’이라고 일컬어지는 전통 字學 교과서이다.

◇『아학편』

하지만 기나긴 세월 부동의 아동학습교재로 사용되었던 천자문도 하룻밤 만에 급조된 탓에 변화된 세상에 어울리지 않게 되었으며, 더욱이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은 탓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강진유배 중이던 丁若鏞(1762~1836)이 새로 펴낸 한자교습서가 바로 이것이니, 이를테면 새 천자문인 셈이다.

원서는 상하 2권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총 2천자의 한자가 수록되어 있으니 단순히 이 책에 수록된 글자 수만으로도 기존 천자문보다 2배 분량으로 필수 지식의 절대량이 증대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이 책은 기존의 천자문이 우주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삼강오륜 같은 윤리도덕에 이르기까지 너무 관념적이고 모호한 개념용어들로 가득하여 실생활에 그다지 절실하지 않고 초학자들을 교육하는데 실용적이지 않다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술되었다고 한다.

다산은 주로 경험과 구체적인 사물 인식을 바탕으로 어린아이들이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기에 수록된 한자어들을 사물이 가진 대립적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학동들의 인지 능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상권에는 형태가 있는 물건을 지칭하는 글자를 배속하고 하권에는 物情과 事情에 관계되는 글자를 수록하여 편집하였고 4글자씩 2구절이 대귀를 이루며, 8자마다 운을 바꿔 배치하였다.

예컨대 ‘天地玄黃, 宇宙鴻荒’으로 시작하는 기존 천자문의 첫 구절 을 ‘天地父母, 君臣夫婦’라는 문구로 대치함으로써 한결 구체적이면서 가족과 사회인식에 중점을 두어 고려하였다. 이어 “兄弟男女, 姉妹娣嫂, 祖宗子孫, 姪姑甥舅, ……”로 이어져 조선 후기에 강조된 가족관계와 사회질서를 위주로 자구가 배열되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존 판본(지석영 주석, 광학서포 발행)의 첫 머리에 자리 잡은 閔丙奭(1858~1940)의 서문에도 이러한 문제점이 잘 지적되어 있다. “내가 일찍이 저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은 원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닌데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蒙學이 처음 읽는 책이 되었으니, 이는 누가 주장한 것인가!”라며 크게 개탄하였다.

나아가 “조선 땅에도 徐居正이 지은 『類合』과 崔世珍의 『訓蒙字會』같은 책은 참으로 周氏(주흥사를 일컬음.)의 천자문보다 나은데도 이를 버리고 저것을 취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반문하였으며, “茶山丁氏의 『아학편』2천자에 이르러서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요점이 저것에 비하여 몇 가지가 되니, …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이 보배롭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탄식하였다.

서문에서는 또한 천자문의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로 하늘의 공간적 개념을 지닌 宙자를 ‘집(屋)’이라 새겨 읽고 별자리 혹은 머무른다는 의미를 지닌 宿자를 단지 ‘잘(睡)’이라고 읽게 하고 가르쳐, 글자의 의미를 몽롱하게 얼버무려 그 뜻을 터득하지 못하게 되니 글 읽는 학동들로 하여금 저절로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게 하고 마침내 책을 덮고 밖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고 지적하였다.

앞의 글은 대한제국 시절인 光武10년(1906)에 지석영이 주석을 달고 한국, 중국, 일본, 영어까지 글자를 비교하여 펴낸 판본에 민병석이 쓴 서문에 밝혀져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한일합병 체결의 주역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 인물이지만 앞서 천자문에 대한 지적만큼은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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