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인간은 왜 행복하고자 하는가?: 뇌에 유전적으로 코딩된 인간 행복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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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인간은 왜 행복하고자 하는가?: 뇌에 유전적으로 코딩된 인간 행복의 기원
  • 승인 2019.08.3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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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행복의 기원

행복?

행복해지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젊은 시절,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원에 들어가 연구를 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강의를 정성껏 하고,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좋은 논문을 쓰고, 연구한 결과가 확산되어 한의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뒤 어떤 성과를 얻게 되더라도, 왠지 그 성취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찾아오곤 하는 공허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행복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행복에 대해 알려준다는 많은 책들을 찾아 읽어 보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내가 생각을 바꾸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잠시 변화하는 듯하지만, 내가 바라던 행복한 상태는 지속되지 않았다. 마음의 수양이 너무 부족한 까닭일까? 대부분의 책들이 얘기하는 어떻게 행복해지는 가가 아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도대체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하는 걸까?

저자인 서인국 교수는 최근 심리학에 등장한 진화심리학적 견해와 연구 결과들을 인용해 인간의 행복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한다. 진화심리학이란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고,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을 동물의 특성으로 이해하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은 비만과 같은 현대의 질병을 이해하는데에도 유용한 지견을 제공해 주어 최근 한의사들에게도 관심이 늘어가는 분야인 듯 하다.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며,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은 생존에 필요한 걸까?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는 걸까?

인간의 뇌는 생존경쟁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수백만 년간의 생존기록서”다. 사람들과 힘을 합해 맹수를 피하고, 사냥을 해서 믿을만한 사람들과는 고기를 나눠먹는 등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뇌에서는 “보상(쾌감)”의 불빛을 반짝인다. 꿀벌이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인간의 뇌가 설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저자는 “사람”을 얘기한다. 왜 인간은 서로를 필요할까? 이는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팀은 연구를 통해 사고나 암보다 외로움이 더욱 큰 총체적인 사망원인이라고 제시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놀랄만큼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생존이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사람 생각을 하며, 기쁨과 슬픔의 원천 또한 대부분 사람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생존을 위해 사회적인 우리의 뇌는,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생활을 주도하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이러한 사회적 뇌를 잘 이용하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우리 뇌가 생존을 위한 탐지기라 한다면, 이 탐지기의 목적은 생존 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오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힘든 사냥에 나셔야 한다. 사냥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으며 생긴 보상(쾌감)은 곧 사라져야 한다. 쾌감을 원점으로 돌리는 초기화 과정이 있어야만 다시 생존 행동을 반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뇌의 “적응”으로 해석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승진을 하거나, 로또에 당첨된다 해도 그 쾌감(행복)은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곧 사라져 버린다. 행복감이 곧 소멸되고 지속되지 않는 것은 생존을 위한 뇌의 선택일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산다. “becoming”을 위해 밤낮으로 달려나가며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 즉 현재라고 진화심리학은 얘기해준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행복한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 보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했다. 형이상학적인 행복의 개념이 익숙한 우리에게,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하는 행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전자로 코딩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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