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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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 승인 2019.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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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나랏말싸미

필자는 학생들과 영화만들기 수업을 할 때마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을 하는 편이다. 사실 영화를 촬영하다보면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달리 악역을 맡아야 되는 경우에 몇몇 학생들의 경우 역할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화배우들의 예시를 들어주면서 설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영화는 아무리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해도 어차피 픽션이 가미되기 때문에 역할이나 내용 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특히 사극의 경우 '팩션'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대체로 역사적 근거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다 팩션으로 즐기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개봉했던 <나랏말싸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출연 :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에 세종(송강호)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세종은 가장 천한 신분인 스님 신미(박해일)를 만나게 되고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에 소헌왕후(전미선)는 반대하는 대신들 모르게 이들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올 여름 성수기에 1차 주자로 개봉했던 <나랏말싸미>는 <살인의 추억> 이래 16년만에 다시 만난 연기파 배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의 만남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라는 소재만으로 관객들의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랏말싸미>는 영화 개봉 전부터 표절시비로 인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이루어지고, 개봉을 몇일 안 남긴 상태에서 소헌왕후 역을 맡은 전미선 배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등 악재가 거듭되었다. 거기다가 역사왜곡 논란까지 일어나며 흥행 성적 또한 곤두박질쳤고 올 여름 한국영화의 전체적인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한글창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설 중에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세종시대의 기록에 등장하는 신미 스님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미 소설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뿌리 깊은 나무>와 달리 소위 얘기하는 음모론 같은 분위기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지며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또한 한글이라는 우리나라의 찬란한 유산이 세종대왕이 아닌 한 스님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는 영화적 내용은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단순히 영화로 받아들여서 봤다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워낙 범접할 수 없는 인물과 소재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재미를 찾을 겨를도 없이 혹평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접하기 힘든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에서도 오래된 건물로 꼽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봉정사를 비롯한 경복궁, 창덕궁, 곡성 태안사, 순천 송광사 국사전 등 유명 사찰들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볼거리는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전반적으로 결말 부분에 한글보다는 억압 받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부각되면서 내용적 균형감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며 한글 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감독의 호기심은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팩션이 가져야 하는 경계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배우 전미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그녀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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