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83> - 『新訂方藥合編』①
상태바
<고의서산책/ 883> - 『新訂方藥合編』①
  • 승인 2019.09.07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國債報償運動의 결기를 이어받아

이 책은 이미 오래 전, 이 코너를 처음 시작하던 무렵인 1999년에 “베스트셀러 조선 의서 - 『新訂方藥合編』란 제하(1999년9.20일자, 제11회)에 간략하게 연재한 바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너무 소략해서 당시 소개했던 내용에 중판을 거듭한 사실을 더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 『신정방약합편』

신정판의 서문에는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말이 서술되어 있다. “(전략) 혜암의 方書(의방활투)를 원본으로 삼고 동서양의 奇方要書를 분류취합(類聚)하였고 이에 다시 가축을 치료한 경험방을 책 뒤에 덧붙여 ‘신정방약합편’이라고 이름 하였다.…… (이하 생략)”

이 서문은 최승학이란 사람이 大同報社에서 지었다고 밝혀져 있는데, 그에 대한 사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07년 安翊善이 서울에 설립한 대동보사란 잡지사가 알려져 있으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으며, 출판계에 몸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한 발표문에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한 자료를 근거로 최승학과 김광제가 1907년 3월 대동보사를 설립하여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것으로 기술하였다. 월간종합지로 분류된 『大同報』는 일명 ‘大同月報’라고 불렸는데, 이 책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김광제가 편집인, 최승학이 발행인으로 되어 있다. 또 1918년판에 편집인겸발행인으로 되어있는 李鍾楨 역시 대동보를 간행했던 광문사의 사원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대동보사에서 국채보상운동에 관여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이 방약합편 신판에는 총설부에 師傳脈經이란 맥학이론이 개술되어 있는데, 그 첫머리에 권수제 아래에는 ‘大寧 崔承學 譯述, 石藍 金光濟 校正’이라고 밝혀져 있다. 여기 교정자로 이름이 올라있는 김광제는 1907년 2월에 설립한 대동광문사의 사장이었고 서상돈이 부사장으로 이 두 사람이 대구에서 시작하여 전조선 8도로 파급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서울의 대동보사와 대구의 대동광문사 간에 어떤 연계 고리가 놓여 있는 것인지, 또 거의 동시기에 진행된 이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서로 어떤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최승학의 서문에 융희원년(1907) 12월 상순 대동보사 편집실에서 쓴다고 적은 것으로 보아 그가 국채보상운동의 현황을 알리는 소식지로 펴낸 ‘大同報’ 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전맥경’이란 지극히 전문의학적인 내용, 그것도 진단맥법에 관한 전승비법을 풀이하고 교정할 정도의 관련지식을 숙지한 인물이라면 분명코 한의계 인물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존 의학인물지에 어디에도 이름이 거명되어 있지 않으며, 이 또한 향후 풀어야만 할 과제라 생각된다.

융희 2년(1908)에 간행한 이 신식 鉛活字版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기존의 재래식 목판이나 고활자판이 아닌 근대식 연활자를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대한제국에서는 1883년 博文局을 처음 신설하고 서구에서 수입한 연활자로 관보나 공문서를 인쇄하는데 쓰다가 광무원년(1897) 이후에는 일반서적에 두루 적용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여러 『방약합편』판본 가운데 신식 연활자를 사용하여 인쇄한 것으로는 이 책이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 판종은 또 1913년에 이종정에 의해 개편되어 광동서국에서 발행하였으며, 이어 1918년에 다시 출판하여 재판이 거듭되었기에 독자들로부터 널리 호평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