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나는 혼자가 아니야: 미생물과 함께 꿈꾸는 건강한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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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나는 혼자가 아니야: 미생물과 함께 꿈꾸는 건강한 공생
  • 승인 2019.10.2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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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10퍼센트 인간

일반적으로 소우주인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것은 뼈, 근육, 뇌 등의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 세포외기질이며,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명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몸 구성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이고 큰 그림을 그릴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몸속의 미생물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현대과학은 이제 전혀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간의 삶은 또 다른 생명체인 미생물들과 서로 얽혀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은 인간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숫적으로 우리 세포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들은, 없애야 할 우리의 적들이 아니라, 우리와 오랫동안 공진화를 통해 서로 삶을 지지해주는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즉, 우리 몸은 우리 세포들만으로 홀로 소우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과 함께 이루는 “통생명체(Holobiont)”2)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화기에 들어섰다.

시공사 출간

흔히 외부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것이 피부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장육부를 이해하고 공부한 한의사들은, 음식물이 통과해서 나가는 소화관 안쪽 역시 바깥이나 다름없이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정한 내부는 소화관이 아니며, 소화관은 제2의 피부로 피부처럼 내부를 지키기 위해 이중보호막을 형성한다. 피부와 위장관에는 외부와 접촉되다 보니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 인간의 삶은 또 다른 생명체인 이러한 미생물들과 서로 공간적으로만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기능유지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이제는 신체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담아 저자인 앨러나 콜린은 “10퍼센트 인간”1)에서 최근 발표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우리 몸속에서 숫적으로 90%나 차지하지만 그 동안 소홀히 취급받았던 미생물이라는 존재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장내미생물 연구가 고속열차에 탑승하게 된 계기는 불과 십여년 전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대 초, 이만천여개의 모든 인간유전자를 해독해 낸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체의 신비와 질병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보다 실제 의학발전에 기여한 수준은 예상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대신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DNA 염기서열 분석기술은 제2의 게놈프로젝트인 인간미생물군유전체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고, 무균쥐 등을 이용한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건강과 행복에 관여하는 미생물 역할에 대해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한의사로서 우리는 최근 병(病)이 변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위생의 발달과 항생제개발은 천연두, 결핵 등 감염병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무서운 적을 통제하게 되었고 인간의 평균수명은 두 배 이상으로 길어졌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에게는 알레르기, 자가면역, 비만 등 새로이 21세기형 질병들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각기 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체질적 소인이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특정한 환경에 처하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병에 걸리게 된다. 그렇다. 시간적으로 사람이 유전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음에도 병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환경이나 생활 변화가 원인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질병의 변화는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21세기형 질병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이 질환들은 대부분 장 내벽의 투과성이나 면역시스템 조절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즉, 이 질환들은 장내벽을 보호해주고 있는 몸 안의 미생물 환경 파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항생제의 남용, 섬유소가 부족한 식단, 제왕절개의 증가 등은 인간의 건강에 유익한 미생물총을 파괴시키게 되었으며, 인간의 미생물총, 특히 장에 살고 있는 장내미생물이 균형에서 벗어나게 되면 장벽이 약해져 장이 새게 되고(leaky gut), 이는 곧 전신적인 염증으로 이어져 만성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유익한 미생물 환경의 변화는 비만, 당뇨, 자가면역 등의 질환뿐 아니라 불안, 자폐증, ADHD,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 수많은 질병들이 유전자 결함이나 신체의 문제라기보다 인류기원부터 한팀으로서 동거해온 미생물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생긴 것들이라면 질병의 진단과 치료의 관점도 건강한 장내미생물을 고려해서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로바이오틱스나 프리바이오틱스 등 장내미생물을 타깃한 다양한 치료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시도 중이다. 그러나, 혐기성인 장내미생물을 이용한 약물 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최근 가장 주목받는 치료법 중 하나는 대변장내세균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이다. 이를 위해 오픈바이옴(Openbiome)이라는 대변은행이 생기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대변 안에 있는 생명 치유 능력에 대한 기록은 미생물총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1세기연구자가 아닌, 4세기 포박자(抱朴子),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등을 저술한 갈홍(葛洪)선생의 책에서 발견된다. 갈홍선생은 식중독이나 심한 설사를 앓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으로 만들어진 음료를 마시게 하면 큰 효과가 나타남을 기록해 두었다.

한의학에서 비위(脾胃)는 늘 치료의 중심에 있었다. 한약처방이나 침치료 과정에서 질환뿐 아니라 환자의 소화기능과 위장 상태, 대변은 진단과 치료에서 늘 우선 고려하게 되는 진단지표들로, 장내미생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의학의 치료방향은 건강한 장내미생물 환경을 만드는 방향과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한의학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장내미생물 관련 연구경향과 발맞추어, 이러한 연구들이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미생물, 특히 장내미생물은 단순 공생관계를 넘어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관여하는 신체기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21세기형 만성질환들’에 대해서도 장내미생물의 관점에서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수백만년 동안 인간과 함께 동거동락해온 미생물을 보듬어 껴안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첫걸음이며 최종적으로는 100퍼센트 인간이 되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제안에 대해 한의사로서 잘 숙고해볼 일이다.

각주

1) 저자는 인간의 세포수가 공생하는 미생물의 수에 비하면 10%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책 제목을 10퍼센트인간이라 하였다. 그러나, 인체미생물 수에 대해서는 최근 연구에서는 이견이 있는 듯하다. 연구가 더 진행된다면 이 책의 제목인 “10퍼센트 인간”은 언젠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2) 통생명체(Holobiont)는 1992년 린 마굴리스가 제안한 개념인데, 최근 인체에서 미생물의 중요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히준 /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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