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이정래 선생의 동양의학특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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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이정래 선생의 동양의학특강(5)
  • 승인 2004.03.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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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章 洛書와 象數

五行均等으로 天地災變 豫防·克服

中國의 夏禹氏때에 黃河流域에 큰 水亂이 있어 天下가 어려울 때 洛水에서 등에 點文이 있는 神龜가 出現하였던 바, 그 點文이 圖와 같이 一에서 九까지에 이르렀고, 位置의 配列은 一이 正北이고 二가 西南이고 三이 正東이고 四가 東南이고 五가 中央이고 六이 西北이고 七이 正西이고 八이 東北이고 九가 正南이며 全體의 總數가 四十五點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河圖의 五十五數보다는 十이 不足한 數이므로 이는 河圖 中央의 五와 十이 同處함에서 十이 없는 것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北一과 南九과 合하여 十이 되고 東三과 西七이 合하여 十이 되고 東北의 八과 西南의 二가 合하여 十이 되고 西北의 六과 東南의 四가 合하여 十이 되므로 이는 없는 것 中에 있음인 것으므로 (無中有) 이 縱橫으로 十으로 되는 數가 또한 中五와 合하면 모두가 十五로 되는 것이니, 이 역시 中에 十과 五가 同處함과 다름이 없는 變化와 含蓄의 象인 것이다.

그러나 河圖 中의 十과 五도 太極의 形象으로써 東三八春木이 南二七夏火를 化生하고, 西四九秋金이 北一六冬水를 化生하는 生生不息의 升降內에서 中和機能으로써 升降의 主軸이 되어 四季에 各其 十八日을 旺하는 土用이자 太極이며 無極인 것으로 散在함에서는 있는 것 中에 없어짐인 것이다(有中無).

그리고 河圖內의 全數인 成數는 모두가 中의 五와 合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北方의 成數인 六은 中五와 北方의 生數一과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東方의 成數인 八은 中五와 東方의 生數三과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南方의 成數인 七은 中五와 南方의 生數二와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西方의 成數인 九는 中五와 西方의 生數四와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中央의 成數인 十은 中五가 中五와 合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역시 일찌기는 十이 있지를 않았던 것과 같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八卦(先天)를 配列함에 있어서도 乾이 七에 該當하고 兌가 二에 該當하고 離가 三에 該當하고 震이 八에 該當하고 巽이 四에 該當하고 坎이 九에 該當하고 艮이 一에 該當하고 坤이 六에 該當함과 같이 十은 用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中五가 生數 一二三四와 合하여 六七八九가 이루어진 것이므로 用함이 된 것과 같이 洛書에 있어서도 역시 中五가 用이 되어 一二三四와 合하므로 六七八九가 이루어짐은 同一한 것이다. 그러나 用이 六七八九로 化하였기 때문에 中이 虛하여지는 것이므로 古賢은 이를 이르러 「河圖와 洛書에 五가 虛하여지고 十이 分散하여짐이라(虛五分十)」한 것이며, 이것이 河圖數의 五十五에 十五를 除한 數와 洛書數의 四十五에 五를 除한 數가 同一하게 四十이 되는 것이고, 이 中에서 一三七九의 陽數를 合한 二十이 陽儀이고, 二四六八의 陰數를 合한 二十이 陰儀인 兩儀의 數인 것이다.

그러므로 洛書를 四象의 配合數로 말한다면 九四는 太陽이고 三八은 少陰이며 二七은 少陽이고 六一은 太陰인 것이며, 八卦의 配合數로 말한다면 九가 太陽中의 乾이고 四가 太陽中의 兌이며, 三이 少陰中의 離이고 八이 少陰中의 震이며, 二가 少陽中의 巽이고 七이 少陽中의 坎이며, 六이 太陰中의 艮이고 一이 太陰中의 坤인 것이다.

그리고 그 五를 虛한 縱橫의 數로써 說한다면 南方 太陽數의 九가 北方 太陽位數의 一을 含한 것은 河圖數의 十에서 太陽數의 九를 除한 太陽의 位次에 數象이고, 東北 少陰數의 八이 西南 少陰位數의 二를 含한 것은 河圖數의 十에서 少陰數의 八을 除한 少陰의 位次에 數象이고, 西方 少陽數의 七이 東方 少陽位數의 三을 含한 것은 河圖數의 十에서 少陽數의 七을 除한 少陽의 位次에 數象이고, 西北 太陰數의 六이 西南 太陰位數의 四를 含한 것은 河圖數의 十에서 太陰數의 六을 除한 太陰의 位次에 數象인 것이다.

그러나 河圖 역시도 西方 太陽數의 九가 太陽位數인 北方의 一을 含하였고, 北方 太陰數의 六이 太陰位數인 西方의 四를 含하였고, 東方 少陰數의 八이 少陰位數인 南方의 二를 含하였고, 南方 少陽數의 七이 少陽位數인 東方의 三을 含하였으니, 이 역시 中五는 成數로 化하여 四方의 太極으로 十과 함께 散在한 것이므로 이 四方 全體에 散在함은 太極의 象이고, 中의 虛하여짐은 곧 無極의 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새끼줄을 꼰 것처럼 外(陽)에서 內(陰)를, 內에서 外를 含하고, 洛書에서도 上(陽)下(陰)와 右(陰)左(陽), 東北(陽)과 西南(陰), 西北(陰)과 東南(陽)이 縱橫으로 含하여 交互한 것은 冬寒이 春夏의 溫熱한 陽으로 化하듯 陰爻는 上升하고, 夏熱이 秋冬의 凉寒한 陰으로 化하듯 陽爻는 下降하여 相交함으로 이루어지는 自然法則의 造化인 太極 陰陽 四象 八卦의 象이 여기에 含蓄되어 있는 天眞으로 通하는 象인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가 繫辭에서 「河水에서 圖가 出하고 洛水에서 書가 出하거늘 聖人이 法則한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러면 이 河圖와 洛書의 數象에 다른 點은 무엇인가? 河圖는 四角에 數가 없으므로 體가 圓한 것이므로 邵子도 「圓한 것은 星을 의미하니 曆紀의 數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하였으니, 天時의 不窮과 運行의 不息을 象하였으므로 陰陽五行과 五運六氣와 曆紀의 無限을 意味함이자 十의 偶數가 實在하므로 偶陰의 整立을 象함이므로 聖人이 卦畵을 用하여 整立하였다.

그러나 그 基本이 天時不窮의 自體이므로 東南 三八木의 春이 南方 二七火를 生하고 南方 二七火의 夏가 中央 五十土를 生하고 中央 五十土의 換節期가 西方 四九金을 生하고 西方 四九金의 秋가 北方 一六水를 生하고 北方 一六水의 冬이 東方 三八木을 生하고 東方 三八木의 春이 다시 南方 二七火를 生하여 그 生하고 生함이 영원토록 쉬지 않고 변함이 없는 그대로를 象함인 것이다.

그러나 洛書는 四角에 數가 있으므로 體가 方한 것이므로 邵子도 「方이란 것은 土를 意味하니 州를 畵하고 地를 井하는 法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禹王이 國土를 九疇로 分하여 治한 것이며, 孟子도 「周代의 井田法은 田地를 九로 等分하고 그 中央의 田地를 公田으로 삼아 八家口에서 合力하여 이 一公田을 養하였다」 함의 治法인 것이다.

그러나 九인 奇數를 終으로 함은 陽의 變動을 象함이므로 南方에 二七火의 代身 四九金이 位置하고 西方에 四九金의 代身 二七火가 位置하므로 金火가 交易한 象을 하였으니, 이는 金이 冬의 水를 生함은 가을 보다도 여름의 火熱의 薰蒸을 收斂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해에 겨울에 눈이 不足하지 않아 水가 生旺하는 것이고, 冬水가 春의 木을 生함은 겨울보다도 가을의 凉氣가 여름의 火熱을 받아 收斂 溫養의 結實을 함으로써 그 이듬해의 春生의 氣가 木을 生旺하게 하는 것임을 象함과 같이 그 陰陽五行의 造化속에는 변화에 의한 永遠히 새로운 整立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相生을 抑制하는 相克이 오히려 永遠한 生生不息을 維持할 수 있는 天地造化의 그 裏面을 象함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北方의 一六水가 西方의 二七火를 克하고 西方의 二七火가 南方의 四九金을 克하고 南方의 四九金이 東方의 三八木을 克하고 東方의 三八木이 中央 五土를 克하고 中央의 五土가 北方의 一六水를 克하는 抑制의 形象을 한 것이니, 金이 火位에 居하므로 製煉이 되고 火가 金位에 居하므로 長明하며 진실을 이루는 象인 것이다.

이와 같이 五行을 균등히 함으로써 水亂을 이루는 원인을 治할 수가 있고, 그 治함에 있어서도 자연 그대로에 應함을 더욱 질서있게 하여 井田法의 分擔合力을 이룩함으로써 人極을 이루어 天地의 化育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天地災變까지도 없이 하는 영원한 樂園을 이룩함이자 극복과 예방을 함께 이룩하는 방법을 象함인 것이다.

그러나 이 洛書에도 相生의 狀이 없는 것은 아니니, 北方 一六水가 東方 三八木을 生하고, 春에 농사를 作함이 가을에 結實을 거두듯이 東方木이 西方 二七火를 生하고, 가을의 秋收가 土産의 倉庫를 實하게 하듯이 西方火가 中央土를 生하고, 中央의 土가 中和의 기능으로 熱極의 南方에서 上升이 收降을 시작하게 하듯이 中央土가 南方金을 生하는 것이고, 南方의 여름의 熱氣가 가을에 식어짐을 거쳐 冬水로 化하듯이 南方金이 北方水를 生하는 變化不測한 五行 自體의 變化的인 內容을 象함인 것이다.

그러나 河圖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抑制의 象이 있는 것이니, 北方의 寒水는 南方 火熱의 過한 上炎을 抑制하여 克하고, 南方火는 西方金의 過한 斂凉을 抑制하여 克하고, 西方金은 東方木의 過散을 抑制하여 克하고, 東方 風木은 中央土의 太濕을 疏散하여 克하고, 中央土는 中和의 機能으로 北方水의 汎濫을 抑制하여 克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五行生克의 基本象인 것이다.

이와 같이 河圖와 洛書가 모두 天이 垂한 象으로 眞理로써 共通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經(正)緯(變)와 表裏가 된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河圖를 主로 하여 말할 때는 河圖가 正이 되고 洛書가 變이 되며, 洛書를 主로 하여 말할 때는 洛書가 正이 되고 河圖가 變이 되는 不二의 法則과 같은 象인 것이다.
그러나 重要한 것은 天地의 사이에는 一陰과 一陽이 그 五行을 兩으로 한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甲의 陽木 乙의 陰木이 兩의 木으로 되는 例) 太極은 항상 그 陰陽 가운데 居하는 것이므로 이 두가지 圖가 비록 縱橫으로 변동하는 의미를 지녔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가 그 天地의 秘義를 조화하여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말하여 經緯와 表裏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河圖는 다만 卦를 畵함으로써만이 아니고 또한 可히 九疇의 理致를 밝힐 수도 있는 것이요, 洛書도 特히 九疇를 밝힘으로써만이 아니고 또한 可히 卦를 畵하는 理致이기도 한 것이니, 다만 그 當時의 聖人이 그 때의 일을 因하여 設함을 後世에 傳함으로써 하였기 때문에 伏羲는 다만 河圖를 보고서 卦를 畵하였고, 大禹는 다만 洛書를 보고서 九疇를 밝힘으로써 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伏羲의 畵卦함이 그 표현은 八卦인 것이지만 그 裏面의 이치에는 진실로 可히 九疇의 이치도 들어 있는 것이요, 大禹가 疇를 베푼 것이 그 표현은 九疇인 것이지만 그 裏面의 내용에는 卦象의 이치도 함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여 表裏가 된다고 하는 것이므로 이 전체적인 面을 合流하여 파악한다면 더한층 聖人의 玄妙한 경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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