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구멍난 역사를 관록 있는 연기로 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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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구멍난 역사를 관록 있는 연기로 메우다
  • 승인 2020.01.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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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천문: 하늘에 묻는다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영화감독과 배우, 장르 등을 먼저 살펴본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개봉한 <천문: 하늘에 묻는다>의 경우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연출했던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약간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전작 <덕혜옹주>를 연출했기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지만 주로 멜로 영화를 연출했던 감독이기에 세종대왕과 장영실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극, 더군다나 주로 남성들만 등장하는 영화를 어떻게 표현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지만 몇 년 전 TV 드라마를 통해서도 봤던 내용이기에 큰 기대감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감독 : 허진호,  출연 : 최민식, 한석규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최민식)은 세종대왕(한석규)과 함께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의기들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20년 후 명나라 사신은 조선이 천문 의기를 제작하는 것은 명 황제를 위배하는 것이라며 장영실을 잡아들이고, 모든 천문의기들을 파괴하라고 한다. 이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세종은 장영실을 문책하게 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실제 역사에서 출발하여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생사는 물론, 발명품의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을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완성한 팩션 사극이다. 그런데 큰 기대감이 없으면 만족도가 더 높다는 말이 있듯이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최민식과 한석규라는 두 연기 장인들이 <넘버 3>와 <쉬리> 이후 거의 20년 만에 재회하여 두 말 할 것 없는 폭풍 연기를 쏟아내고,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어울리면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자칫 너무 진지해서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의외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깨알 같은 재미들이 즐비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거기에 신구,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오광록, 김원해, 임원희, 윤제문 등 누구 하나 연기 구멍 없이 역할을 소화해 내며 작품의 격을 높이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장영실의 업적을 나열하기보다는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갖기 원했던 세종대왕과 끈끈한 우정을 나누며 다양한 천문의기를 제작해 나가는 둘 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사대주의에 빠진 신하들과의 정쟁을 벌이는 세종대왕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등을 그리는 등 이전 사극 영화들과는 다른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그로인해 정통 사극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올 여름 개봉했던 <나랏말싸미> 등 여러 번 다뤄진 세종대왕의 이야기에서 올 수 있는 피로감을 멜로 장인인 허진호 감독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장영실과의 브로맨스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의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비오는 날 장영실이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세종대왕을 위해 문을 이용하여 하늘을 표현한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머릿속에 계속 남는 영화 속 백미로 화려한 CG 없이도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아름답게 그리는 등 영화는 정적이지만 보면 볼수록 서서히 빠져드는 미장센으로 관객들의 감정 이입을 돕고 있다. 전생에 세종대왕이 아니었을까라는 착각이 드는 전문 세종대왕역의 한석규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능청스러움으로 의외로 우직한 장영실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최민식의 연기와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으로 만들어낸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새롭게 밝은 2020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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