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15] 袖珍經驗神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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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15] 袖珍經驗神方
  • 승인 2004.08.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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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은 바둑판과 같아

이 책은 일제강점기 초반인 1912년에 저술된 醫生의 처방집이다. 원작은 상하 2부로 나누어 기술했으나 이듬해 회동서관에서 발행할 때에는 신식연활자본 1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보통 책과는 편제가 다소 다른데, 무엇보다도 우선 상권에 四診門과 함께 婦人門, 小兒門이 실려 있다.

이와 같이 婦人小兒편을 먼저 실은 경우는 『備急千金要方』에서 찾아볼 수 있고 조선 후기 구급방이나 경험방류에서 간혹 보일 뿐 그리 흔하지 않다. 상하권에 별도의 목차가 붙어 있으며, 하권에는 男婦通治門으로 1장 諸症通治로부터 시작하여 65장 咬傷及雜方에 이르기까지 內傷, 雜病, 外傷질환의 병증을 모두 망라해 놓았다.

전체는 장절의 소분류 아래 대략 1,300여 항목에 이르는 병증이 나열되어 있고 목차만 해도 32장의 분량에 상하 2단으로 빼곡히 나누어져 있다. 대개 古今方書에서 가려 뽑은 유명 처방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런 것은 처방명과 적응증만 간단히 적었을 뿐이고 자신이 경험한 경험방과 다른 의서에서 보기 어려운 희한한 처방들이 많이 기재되어 있다. 또 주변에서 쉽게 찾아 쓸 수 있는 단방이나 민간방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어 저자의 경험에 충실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본문에 앞서 3편의 서문과 발문 1편이 실려 있는데, 먼저 雲養 金允植의 서문을 첫머리로 圓石 李喆柱의 서, 그리고 저자의 자서가 실려 있고 이어 紹雲 朴驥欽의 발문이 붙어 있다. 김윤식(1835~1922)은 구한말 손꼽히는 문장가이자 명사로 1864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일제 치하에서 대제학을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興士團, 大東學會, 畿湖學會를 조직하였고 대종교에 참여하는 등 민족운동에 동참하였으며, 3.1운동 이후 조선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여 일제로부터 관작을 삭탈 당하였다. 그는 일찍이 청나라를 통한 신문화 수입에 앞장선바 있으며, 서양식 왕립병원인 濟衆院의 總辦을 지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1915년 동의학 학술잡지 『東醫報鑑』에 창간사를 쓰기도 하였다.

저자인 李麟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官報에 1867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1913년 저자의 친구 이철주가 쓴 서문에는 의학공부를 한지 20여년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아 대략 이 책의 저술 시기는 그의 나이 사십 중반 무렵이었을 터이고 적어도 이십 초반부터는 의학에 정진해 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는 아호가 慕晦요, 京城 中部 校洞에서 濟蒼醫院을 열고서 진료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의학에 투신한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서의학을 모두 겸비하고 두 가지를 모두 절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문에는 ‘聚東西醫方精要, 參以身親經驗’이란 말이 있고 발문에는 동서의학 중에 실지 경험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을 보충하여 엮었다고 표현해 놓았다. 저자 자신도 “근래 東西醫學이 극성인데, 혹은 서의를 쫓고 혹은 동의를 익혀 서로에 등을 돌리는 것이 추세이나 동서의학은 수레의 바퀴나 새의 날개와 같아 어느 한쪽만을 두고 다른 한쪽을 버릴 수가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서문의 취지와는 달리 본문에서 당시 서양의학을 원용한 내용이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부인문에 등장하는 算胎中男女辨法, 轉女爲男法이나 소아문의 小兒面部診法, 三關脈法 등 西醫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그대로 들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 조선의 전통문화를 폄훼하고 서양의술을 보급하여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려던 일제의 강압적인 풍토 아래서 그나마 동의학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 보려는 안간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럴 만한 까닭은 “세상 사람들은 서의가 나온 후 동의에게선 볼만 한 것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서의가 정확하고 세밀하긴 하지만 人種과 風土가 현격하게 달라 적합지 않은 것을 억지로 사용하면 손해가 있을 것이니 동의학도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한 추천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저자의 서문으로 돌아가 보면 ‘醫方은 棋譜와 같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니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되씹어볼 만한 글귀라 하겠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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