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03> - 『婦人經驗方』①
상태바
<고의서산책/ 903> - 『婦人經驗方』①
  • 승인 2020.02.15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胎孕과 出産, 부인병의 특이점

옛말에 부인병은 사내의 질병에 비해 10배나 고치기 힘들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물론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여인네는 타고난 기질이 연약하고 성품이 예민해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애증으로 감정에 이끌려 집착하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억누르기 어려운 까닭에 병의 뿌리가 깊다.”고 설명한다. 또한 잉태와 출산, 붕중루혈로 손상을 입는다는 점에서 남자에 비해 기혈이 허손되기 쉽다.

◇ 『부인경험방』
◇ 『부인경험방』

따라서 이런 이유로 부인방을 별도로 둔 것이니, 대개 부인병을 다스리는 방법이 남자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집필이유를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부인의 잡병 치료에 있어서는 ‘調氣養血’을 위주로 하고 임신 이전(胎前)에는 ‘健脾燥濕’시켜야 하며, 출산 후에는 어혈을 없애기 위해 ‘逐瘀補血’하는 치법을 쓴다.

나아가 부인잡병의 병증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그 이치를 미루어 보면 혈증이 아닌 것이 없으니 부인병에는 당연히 理血을 위주로 해야 하므로 기가 혈보다 극성하면 변하여 여러 가지 증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受胎하여 임신하지 못하면 마땅히 滋陰抑陽, 順氣調經하여 마치 시냇물이 바다로 모여들 듯 혈맥이 胞宮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월경수가 마치 바닷물이 조석으로 몰려왔다 물러가듯 매달 정해진 기일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포궁을) 血海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의 내용이 이 책 서문의 도입부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부인병 개설인 셈이다. 대개 조선시대 관찬의서 이외의 의학저작이나 개인의 저술에서는 신분제약에 따른 억압된 분위기 탓인지 저술배경이나 지은이의 신상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런 식으로 서두부터 곧장 의론이나 치병각론이 펼쳐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특징으로 미루어 이 책 역시 조선 말기 부인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던 의원이 자작으로 편집한 경험의서로 여겨진다.

이어지는 서문에서는 태아로 인해 母病이 생긴 경우, 安胎로 다스리면 모병이 저절로 안정되며, 반대로 모병으로 인해 태아가 불안정한 경우에는 모병을 다스리면 태아가 저절로 편안해 질 수 있다는 치료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또 잉태한 산모의 胃氣를 침범하면 안 되는 것은 포궁의 絡脈이 胃口에 얽혀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인병에 함부로 발한시키거나 설사, 利小便 같은 攻伐하는 치법을 써서는 안 되니, 이것을 3가지 금기사항(‘三禁’)이라고 부르며,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된다. 태루와 태동은 서로 다른데, 태루는 복통이 없이 漏血이 새어나오는 것이고 태동은 배가 아프면서 태가 움직이고 하혈도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태루는 淸熱하고 태동에는 行氣시켜야 한다. 하지만 간혹 태루에도 복통이 있는 경우가 있으니, 때에 따라 깊이 생각하여 치료에 임해야 한다.

치법에 있어서 요통이 있으면, 안태하는 약에 두충과 속단 같은 종류를 더해 쓰고 복통에는 사인이나 지각 같은 부류를 넣어 쓰며, 하혈이 있는 경우에는 황금이나 아교, 애엽 같은 약류를 가미한다. 만일 이와 같이 對症投劑한다면 마치 북채를 두드려서 북소리가 울려나오듯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서문의 마지막 구절에서 저자는 세상의 어리석은 庸醫들이 方文을 익히지 않고 또한 경험도 쌓지 못한 상태에서 즐겨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여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오히려 병세를 덧나게 하고 마니 안타까운 일이라며 한탄한다. 또 사람을 죽이기는 쉽고 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니 어찌 삼가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이에 三世에 걸쳐 의업을 닦은 훌륭한 치료방법을 모아놓게 된 것이라고 저술이유를 밝히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