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06> - 『痘疹藥性論』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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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06> - 『痘疹藥性論』②
  • 승인 2020.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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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전염병과 사투 끝에 얻어진 用藥論

기실 조선시대 내내 왕실과 온 백성들을 예외 없이 괴롭혔던 최대의 난적은 여진족이나 왜적에 앞서 두창과 마진이라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인 유행을 찾아보기에 앞서 조선시대에 편찬된 몇 가지 대형방서를 통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향약의방서인 『향약집성방』에 痘科가 부록으로 붙어 있으며, 의학지식 백과전서인 『의방유취』에도 소아문에 疹痘門을 두어 변증과 전문적인 처치법을 논하였다.

◇ 『두진약성론』
◇ 『두진약성론』

또 세종조에 두창과 창진을 치료하는 전문방역서라 할 수 있는 『창진방』을 펴낸데 이어 세조조에는 임원준이 『의방유취』소아 진두문을 기반으로『瘡疹集』을 새로 엮어 펴냄으로써 전문적인 치료대책을 논구하였다. 또한 중종조에 이르러 김안국은 『창진방언해』, 선조대 허준은 『언해두창집요』라는 한글로 풀어쓴 방역서를 펴냄으로써 지방의 아전이나 부녀자들도 예방과 대처법을 숙지하여 불시에 닥칠 환난독역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역대책은 오늘날 시각에서 보자면 전염력이 높은 감염질환의 유행에 대응하기에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당시로선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고자 노력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이후로 박진희의 『두창경험방』이라든지 이헌길의 『마진기방』과 정약용의 『마과회통』으로 이어지면서 기존의 왕실 내의원 중심의 중앙 방역대책에서 벗어나 보다 더 경험에 바탕을 둔 지역중심의 실천적이고 개별적인 전염병 연구가 지속되었다.

특히 사대부의 기본지식 편람과도 같은 『고사촬요』잡용속방편에는 벽온, 상한, 상서, 잡병경험방 및 日用俗方 등과 함께 박진희가 펴낸 『두창경험방』이 첨부되어 있어 목민관이 부임에 앞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기본상식 가운데 하나로 전염성 질환에 대한 대처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산림경제』의약편에도 이 두창경험방의 골자와 후대의 여러 경험방이 의약편에 대폭 수용됨으로써, 두창과 마진을 비롯한 유행성 감염병에 대한 지식이 지방관이나 관아의 관속들 뿐 만 아니라 향촌의 士族들까지도 평소 숙지하고 있어야 할 필수지식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다산은 자신의 실제 치료경험을 담아 펴낸『마과회통』과 『종두심법요지』를 『목민심서』나 『흠흠신서』와 함께 자신의 주요 저작으로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조선 후기에 太醫 柳瑺이 지은 『古今經驗活幼方』을 비롯하여, 李蕃의 『龍山療痘篇』, 조정준의 『及幼方』, 任瑞鳳의 『壬申疹疫方』, 박상돈의 『疹疫方』, 洪奭周의 『麻方統彙』, 李元豊의 『麻疹彙成』, 李鍾仁의 『時種通編』, 최규헌의 『마진비방』, 유이태의 『마진편』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방역서에 전염성 질환과 벌인 사투의 기록이 기재되었다.

요사이 코로나 유행에 예방과 억제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생강에 대한 기록을 본문에서 찾아보니 이런 언급이 적혀 있었다. “(전략) 두창의 열꽃이 피어나지 않는데, 색깔이 흰 것을 써야 한다. 양기를 도와 發表시키는데 빠트릴 수 없으니, 그 효능이 인삼과 대추의 약력을 도와주는 공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책은 비록 두진치료에 참고할 수 있는 약물의 용법과 약성을 다룬 길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끊임없이 변이되어 어린 생명을 앗아가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던 전염원에 대해 세대를 달리하며 목숨을 걸고 응전하였던 조선 의인들의 처절한 투쟁 끝에 얻어진 경험지식이 집적되어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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