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08> - 『靈素鍼灸經』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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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08> - 『靈素鍼灸經』①
  • 승인 2020.03.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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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해방전후 침구경혈학 교육현장

근현대 한의학교육의 한 축을 감당했던 교과서 한 종을 소개하고자 한다. 혹여 독자는 『영소침구경』이란 서명만 보고서는 의경이나 원전을 해석한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서명 앞에 ‘精解圖入’이란 부제가 달려 있고 또 표지의 제첨부 우측면에 ‘經絡經穴, 補瀉手法, 臨床, 各篇’이란 문구가 곁들여져 있어 침구경락경혈의 기초학으로 부터 임증에서의 보사수기와 임상치법을 모두 아울러 설명하고 있는 침구경혈학 교재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영소침구학』
◇ 『영소침구학』

또 우측 상단에 저자가 표기되어 있지만 ‘東隱先生 著’라고만 적혀 있고 실명을 밝혀놓지 않았기에 누구인지 곧장 알아보기 어렵다. 노랗게 변색된 겉표지를 젖히는 순간 이미 오랜 시간 산화가 진행된 종이 부스러기가 낙엽처럼 떨어져 나온다. 이제는 처음 모습으로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헐어버린 모습이다. 갱지로 된 본문은 더욱 취약하여 가장자리가 너덜거릴 정도로 마모되었기에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한다.

등사하여 인쇄된 책은 급하게 교재로 꾸며져서인지 이제면도 없이 곧장 목차가 등장하며, 이어 몇 편의 서문이 붙어 있다. 본문은 전문이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지만 거의가 한문에 한글로 된 토만 붙인 형식에다 세로쓰기로 이뤄져 있어 왠만큼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신진 독자들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목차 다음에는 제법 넓은 백상지에 별지로 인쇄한 전신 경혈도를 책 크기에 맞춰 서너 번 접은 다음 삽입해 놓았다. 이 역시 손으로 일일이 鋼筆을 사용하여 그린 것이기에 그다지 명료한 편은 아니지만 전후 면으로 나누어 12경락경혈을 모두 그려놓았다.

목차에서는 全体圖라는 이름으로 표시했는데, 신체골격을 감안하여 앞뒤 경락과 경혈의 대칭점을 표시하려고 애쓴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를 들어 측두부의 角孫穴이라든지, 또 하악부의 天容穴이나 견부의 肩井穴, 고관절 상부의 환도혈 등의 혈위에 전면도와 후면도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을 그려 두 그림 사이의 등위점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고안한 점이다.

아마도 측면도를 별도로 제시하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운 경혈의 위치를 전후면에 교차하여 표시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입체감을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정혈하는 위치가 달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보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적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흉격과 견배부에 골격이 선화로 표시되어 있고 복부와 배부, 하지부에 등위선이 실선으로 그어져 있어 경혈 상호간의 높낮이와 간격을 파악하기 쉽도록 해 놓았다.

또 수족삼음삼양경의 유주와 방향성을 화살표를 사용하여 표시하였으며, 특정 혈위에 대해서 ‘△ 絡穴, 禁鍼灸穴, □ 禁灸穴, ○ 禁鍼穴’ 등으로 나누어 표기부호를 달리해 표시함으로써 변별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다만 이 역시 등사판으로 그려진 것으로 넓지 않은 지면에 수작업으로 이뤄진 탓에, 이러한 특화요소가 실제 경락도 상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육안으로 보기에 서로 혼돈하지 않을 정도로 확연하게 눈에 띠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아울러 12경락별 각 경혈의 혈위 수 및 12경락의 起始와 終止하는 혈위를 따로 표시해 놓았다. 다만 그림 상에 모두 표기하기 어렵다고 여겼는지, 경혈도를 그린 지면 사이 여백을 이용하여 별도 문자로 적어 두었다. 예컨대, 소상혈 앞에 ‘自中府起太陰肺經止’라고 적혀 있으며, 또 소택혈 앞에는 ‘太陽小腸經起, 至於聽宮’이라고 적혀 있다. 아울러 경락과 경혈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 실선을 引線하여 각 경락선을 구분해 보여주고자 한 점이 친절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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