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치매-보호자, 또는 당사자가 될 수 있지, 의료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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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치매-보호자, 또는 당사자가 될 수 있지, 의료인이 아니라
  • 승인 2020.03.2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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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아빠의 아빠가 됐다,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십년이 넘게, 이사를 가시고도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오시던 환자분이 어느 날부터 좀 이상해지셨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횡설수설하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어느 날, 둘째 딸이 그 환자를 모시고 한의원에 오셨다. 그 사이 치매 진단을 받았고,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큰딸이 자기를 가두었다고, 도둑년이라고 번번이 경찰에 신고하고 얼굴을 마주치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상태라고. 엄마도 안됐지만 언니도 매일 운다며 한의원에서 한참을 우셨다. 심란한 마음에 친분이 있는 신경정신과교수님께 치매 환자를 어떻게 봐야하느냐고,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여쭤봤다. 교수님께선 ‘젤 중요한건 치매 환자 보호자를 지지하는 일이야’라고 하셨다. ‘보호자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라고. 그 얘기를 듣는데 좀 무력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두 권의 책은 그래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작가들은 젊은(어린)나이에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된 공통점이 있다. <작별인사는 아직이에요>의 김달님 작가는, 오십에 이른 조부모가 되어 본인을 키워주셨던 두 분이, 본인이 서른이 될 즈음 치매를 겪는 과정을 담담히 적었다.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소변을 옷에 싸고도 모른다는 사실을, 할아버지의 기억이 뭉텅 뭉텅 사라지면서 할머니를 돌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나를 키워 주셨던 분들이 다시 돌봄이 필요할 때, 그 분들을 돌보기 위해 나의 다른 삶을 포기 할 수 없음을 고통스러워하는 과정들이 공감되었다. 이 글을 읽으며 한없이 울던 그 치매 환자의 따님이 생각났다. 지금쯤, 이 작가가 거쳐 갔던 과정들을 거쳐 그 따님도 조금쯤 담담해졌을까? 나의 부모님이라면 어떨까. 얄팍한 지식이 있으니 처음에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겠구나. 하지만 마음 한쪽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알고 있더라도 막상 내가 겪는다면.

이 책이 사랑한다면 이렇게, 라는 느낌으로 마음 한쪽이 애틋했다면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좀 고통스러운 책이었다. 어려서 이혼한 부모님 중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조기현 씨는 스무 살 즈음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49세. 이혼한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갔을 때, 스물네 살이 되기 전이라 그는 아버지의 보호자로 이름을 올릴 수가 없었다. 24시간 간병사를 쓰기에 돈이 너무 없었다. 가장이 되었는데 군대에 가야해서 산업기능요원이 되었다. 아버지의 병원에 가보기 위해서 일하다 올라오기도 힘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런 교육과정을 듣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치매가 왔다.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복지센터에 가서 등록하는 과정, 이것저것 사회적 제도를 알아보는 과정, 그의 <청년 보호자 9년>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60세가 되기 전에, 50대에 치매 환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생각 해 본적이 있던가? 내 아들이 스물의 나이에 본인의 생계를 책임지며, 치매 환자를 케어하며, 동시에 삶의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위해 도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조기현 씨는 그 와중에 자기 성찰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하며, 돌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1인분의 삶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2인분의 삶을 살아내는 책임에 대해서, 아들로써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에 대해서, 간병을 떠맡게 되는 중년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조기현씨는 성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와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으려 한다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일본에선 2004년부터 ‘어리석다’는 뜻을 지닌 ‘치매’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 ‘인지증 환자’대신 ‘인지증 당사자’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나온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연구해야하는 영역은, 치매라는 이름이 주는 두려움을 키우는 것보다 언제든 (그게 나이 50이 안 되는 젊은 나이이더라도) 인지증이 찾아올 수 있고, 그 보호와 책임을 위해 개인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을 쏟아 붓거나(김달님 씨와 그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개인이 자신의 미래와 삶을 저당 잡히는 느낌으로 고통 받지 않으며(조기현 씨의 이십대가 그렇게 지나갔던 것처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찾아보는 일인 것이다.

그 공적인 일들을 해 나가다보면 <치매 보호자를 지지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한의사로써의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흠칫 놀랜다. 의료인이라니? 나는 당장 내일 보호자가 될 수도 있고, 바로 당사자가 될 수도 있지. 제 3자로써 치매를 바라보게 하지 않고 내 일로 느끼게 하는데 이 두 권의 책은 매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없다면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어보시길. 좀 부드럽게 공감하면서 치매 환자의 가족이 되고 싶다면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한다.

 

20200316

강솔 / 소나무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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