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19> - 『山經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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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19> - 『山經抄』①
  • 승인 2020.06.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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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經典보다 소중했던 山林處士의 지침서

아마도 ‘산경초’란 서명만 보아서는 이름모를 풍수지리서이거나 『山經表』처럼 산맥의 갈래와 인문지리적인 내용을 담아둔 책으로 오해할 법하다. 그도 아니면 중국에서 건너온 『山海經』을 등사한 초본쯤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첫머리에 ‘山經抄’라 적은 권수제 아래 첫 단원은 卜居라는 항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본문에 앞서 5~6줄 되는 짤막한 題辭가 실려 있다.

◇『산경초』

여기에는 벼슬살이에 나아가지 못한 선비에게 생업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평생을 定住할 수 있는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농사나 밭일, 화초재배와 수목을 기르는 일에 앞서, 반드시 그 지역의 風氣와 가옥의 向背를 살펴서 정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독자는 이 책이 그 유명한 조선 중기 가정상식 백과전서『산림경제』에서 비롯한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 책의 저본이 되는 『산림경제』는 숙종 때 실학자 洪萬選(1643~1715)이 엮은 것으로 보통 4권4책의 필사본 형태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초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조선조에서는 끝내 간행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널리 유포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기에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다종다양한 轉寫本이 전해지게 된 것 또한 특색이라 하겠다.

따라서 조선시대 민간에 전승되어온 필사본의 특성상, 시대 여건에 따라 필요 지식이 바뀌면서 내용면에서도 변화가 뒤따라 적지 않은 조문이 추록되거나 첨삭이 이뤄져, 시대별로 다양한 변천상을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가진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서, 농업경제서나 종합농서, 구급의약서 혹은 가정생활서, 지식백과전서, 식생활종합서 등 여러 가지로 분류되고 있지만, 현대적인 관점과 달리 매우 폭 넓은 분야에 걸친 다양한 실용지식이 골고루 갖춰져 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어느 한 분야에만 귀속시키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대략 가장 보편적인 목차를 기준으로 수록된 주제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卜居(거주지의 선정과 건축)를 시작으로 攝生(질병예방과 건강관리법), 治農(곡식, 목화, 특용작물 경작법), 治圃(채소와 화초, 담배, 약초재배법), 種樹(과수와 임목의 육성), 養花(관상용 화초, 정원수의 식재와 재배), 養蠶(누에치기와 베 짜기), 牧養(가축, 가금, 벌, 물고기 양식), 治膳(식품의 저장과 조리, 가공법), 救急(150여종 응급증상에 대한 처치법), 救荒(흉년이나 재해에 대비한 기근대처법), 辟瘟(전염병을 물리치는 법), 辟蟲法(해충, 쥐, 뱀 등을 물리치는 방재법), 治藥(약의 조제와 복약금기 등을 논함), 選擇(길흉일과 방향의 선택), 雜方(그림과 글씨, 도자기, 악기, 도검 손질법 등 생활상식) 등 총16부류로 망라되어 있다.

이상 주제별 분류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의방서에서 전통적으로 다루어 온 질병예방과 건강관리에 대한 개인의학적인 내용, 곧 섭생(양생)을 필두로 구급과 구황, 전염병에 대한 대처법을 다룬 벽온이나 두창, 마진치법, 여러 가지 약재와 처방의 조제나 복약금기를 다룬 치약편 등에 걸쳐 대다수가 의약적인 내용이 위주이다.

게다가 목양이나 辟蟲法 역시 전통의약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분야이고 여타 선택이나 잡방, 치농, 치선 중에도 상당수가 의약과 관련성이 많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어 의약관련서 혹은 가정의학 백과전서로 정의해야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호에서 일반적인 통행본『산림경제』와 비교해서 이 책 『산경초』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면모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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