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시평] 한의학이 배제된 한의학 교육 혁신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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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시평] 한의학이 배제된 한의학 교육 혁신 논의
  • 승인 2020.08.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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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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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경희이태형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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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이태형한의원

지난 20191030, 서울 세종호텔에서는 제3차 한의약 미래 기획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주관한 것으로 미래 보건의료 환경변화의 효과적 적응과 혁신을 위한 한의학 교육 발전 방안 모색을 주제로 개최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당시 포럼에서 이루어진 발표들을 들으며 많은 부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한의학 교육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의학 자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총 네 편의 발표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첫 번째로 송미덕 대한한의사협회 학술부회장이 세계 의과 교육 편승을 위한 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였다. 발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송 부회장은 주로 한의대가 어떻게 하면 세계의과대학 목록에 들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한의사가 일차의료를 담당할 수 있을 지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였다.

송 부회장은 2019년의 한의대의 세계의과대학 목록(WDMS)에의 등재 실패를 언급하면서, 이 결정이 가지는 의미는 곧 세계의학교육협의회(WFME)에서 한국의 한의대가 의과대학의 하나가 아니며, 한의학이 ‘conventional medicine’(주류의학)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린 것임을 말하였다. 때문에 한의계에서는 다시금 한의대의 교과과정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세계적 의과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송 부회장은 현재 협회에서는 미국 정골의대의 경우를 롤모델로 좇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로 미국에서는 정골의대가 의과대학와 유사한 교과과정을 갖춤으로써 정골의사(DO)가 일차의료의 상당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송 부회장은 교차교육을 통해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정도의 역할을 갖추는 것이 현재로서는 우리 한의사 집단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왜 한의과대학이 교과과정을 양방의과대학 교과과정을 기준으로 재편하면서까지 세계의과대학 목록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한의사들에게 있어 양방의학에 기초한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한의계에서는 한의학이 가지는 의료적 가치를 일차의료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송 부회장의 발표에서는 한의학을 어떻게 해야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한의치료기술을 어떻게 해야 일차의료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서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한의학이 주류의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한국의 특수한 의료적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과 같이 의료제도가 법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한의학도 주류의학 혹은 체제의학(conventional medicine)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1)2)

다음으로는 인창식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인증기준개발 위원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교육학교실 교수가 한의 인력 수급의 적정성 및 전문성 확보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한의사도 임상의사에 포함시켜 OECD에 보고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반의 숫자는 OECD 기준의 2/3에 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의 일반의 수는 충분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한의사의 경우 2030년 기준 696~1776명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고 말하였다.3) 또 그는 2017년 기준 한의사의 요양급여비용 심사 실적이 여전히 전체 가운데 3~4%에 불과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는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한의사를 활용하여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의사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으로 한의사의 일차의료 참여를 제안하였다.

그는 이어 한의과대학의 교육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지난 2017년 발표된 역량중심 한의학 교육 학습목표 개발을 살펴보면 한의사의 처방과 관련한 내용 중 소위 변증에 의거한 것이 90%에 달하는데, 이를 통해 지금까지 한의대 교육이 전통적인 측면에만 매여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한의사는 과거와는 다르게 KCD에 의거하여 진단 및 치료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생의학적 상병명을 토대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인창식 교수의 주장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한의사의 요양급여 심사 실적이 여전히 3~4%에 불과하다는 것을 근거로 현재 한의학이 국민들에게 의료적으로 충분히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식의 발언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요양급여 심사 실적에 한의 의료의 비중이 낮은 것은 그만큼 한의 영역에는 아직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부분이 건강보험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및 보험 적용, 보다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보험 한약제제의 구비 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하겠다.

또한 교육과 관련하여서도 극단적으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의거한 진단과 치료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도 동의할 수 없었다. 현재 한의사들은 전통적인 진단 방식과 현대적 진단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하면 협조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이 생의학적 진단 및 치료로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 같이 혼재된 한의학 현대화 담론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그대로 좇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양방 외과 전문의이기도 한 노혜린 인제대학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의 발표에서 한의학에 대한 고려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노 교수는 한의약 진료 표준화를 위한 교육 개선 방향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임상진료지침(CPG)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근거중심의학(EBM)이 전제되어야 함을 말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근거중심의학과 관련하여서 의학계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음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극단적인 근거중심의학 지지자들의 경우 임상 결과에 초점이 있기 때문에, 병리기전 연구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교수는 이는 과격한 발언으로 생각하여야 하며, 현대 의학에서는 병태 생리에 의거해 진료하면서도 근거중심의학을 통해 치료 효과 유무를 판단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이 같은 개념을 한의학에 대입할 경우, 한의계의 경우 한의 개념에 기초하면서도 이를 과학적 임상연구로 근거를 확보해나가야 함을 강조하였다. 한의 개념에 의거한 치료가 얼마나 효과를 보일 수 있는지 임상적 근거를 확보해나가야 하며, 이를 통해 과학적 연구를 해나가면서도 동시에 한의학의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인 지난 2020813, 전국 한의과대학장한의학전문대학원장 협의회에서는 현재의 한의과대학을 통합의대로 전환하는 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명분은 한의대를 통합의대로 전환함으로써 코로나19로 인하여 부각된 의료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의사가 국가적 공공의료 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통합의대 전환을 통해 한의학교육 혁신과 의학교육 강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학장협의회의 성명서 내용은 앞에서 살펴본 송미덕 부회장, 그리고 인창식 교수의 주장과 매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라진 점은 코로나 19로 인해 국가적으로 의료인력 부족이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성명서를 접하고 한 명의 한의사로서 매우 안타깝고, 동시에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의사가 공공의료 혹은 일차의료에 진출함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 한의학 혹은 한의치료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양방의학교육 강화만을 토대로 한의학 교육 혁신을 외친다면, 이는 결국은 한의학이 배제된 양방의학 중심의 의료일원화 형태로 결론을 맺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양방의학교육의 강화를 통해 한의학 교육 혁신을 이루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한의학 교육이 탄탄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의과대학의 교육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교과목간 연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의과대학 교과과정은 한의학과 양방의학을 모두 배우게끔 구성되어 있지만, 왜 각각의 교과목을 학습해야하며, 각 한의학 그리고 양방의학 교과목들을 어떻게 연계해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양방의학교육이 강화될 경우 한의학교육이 혁신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학장협의회에서 한의학 교육 혁신을 이루고자 한다면 막연히 양방의학 교육 강화를 그 방법으로써 취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지금의 한의과대학 교육을 우선적으로 되돌아봐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한의학의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한의학의 과학화, 혹은 현대화 작업을 일구어 갈 수 있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것이 한의학과 한의사들이 현대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료법 상 한국에서 한의학은 이미 conventional medicine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의사의 지위를 스스로 낮추기보다는 스스로의 역량을 분명히 하고, 이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의학이 가진 훌륭한 의료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높여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전세일, 대체의학, 과학사상, 1999;28:163-187.
2) 이태형, 보완대체의학 및 통합의학의 정의에 대한 고찰, 경희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1, p.1.
3) 오연호,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 2015-20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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