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 시절 배운 구조적 분석법으로 환자 내면의 생각 고민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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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시절 배운 구조적 분석법으로 환자 내면의 생각 고민하게 돼”
  • 승인 2020.08.2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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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책, 사람을 잇다(6) 고성희 경기도한의사회 홍보이사

러시아문학 전공 후 한의대 편입…‘고문진보’ 등 고전 반복 독서 및 암기 습관

인생의 책, ‘통찰의 시대’-‘뮤지코필리아’-‘더 커넥션’-‘매력적인 장 여행’ 등

[민족의학신문=부천, 박숙현 기자] 고성희 한의사는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소개해온 한의계의 다독가 중 가장 ‘문학’적이다. 현재는 고성희한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이자 경기도한의사회 홍보이사, 여한의사회 의무이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지난 2005년 원광한의대에 편입해 늦깎이 한의사가 되기 전에는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던 문학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본인을 “기형도 시인의 ‘빈집’, 무라카미 하루끼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마야꼬프스끼의 ‘빠슬루샤이찌’을 외치면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라며 “늦깎이 한의사가 되어 부천에서 개원하게 되었고, 피아노 치기와 운동을 좋아하고, 아직도 세상을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고성희 원장이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문학도에서 한의사로 전향하게 된 이유도, 모두 병약했던 과거와 연관이 있었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방에 누워서 책을 읽는 것 밖에 없었고, 20대 후반에도 자주 몸이 아파 건강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의대 편입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은 책을 다 읽어야 새 책을 사주셨다. 그래서 읽은 책을 반복해서 또 읽고 또 읽다보니 상상력이 풍부해졌다”며 “창비아동문고, 계몽사, 금성출판사 칼라과학만화학습,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 계림문고 세계명작시리즈, 위인전, 역사책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가끔 부모님이 전집을 사주시면 책꽂이만 봐도 가슴이 설렜다. 그 기억이 남아있어서인지 지금도 도서관 책장을 보면 마치 작가와 교감한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고 전했다.

고 원장은 자신이 “뼛속까지 인문학도”라며 “한의학은 의학이지만 인문학적인 개념이 포함된 학문이다. 인간을 유기체로 보는 시야가 그렇다. 그래서 인문학과 과학의 개념을 모두 가진 한의학을 하게 된 것이 내게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뼛속까지 인문학도’ 답게 그는 고전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했다. 고전을 비롯해 일종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책을 여러 번 읽어 사상의 뼈대를 잡고, 이와 관련된 여러 책을 한 번씩 읽어보는 식이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 관심이 생겼을 때, 신간 코너에서 신간도서를 훑어보다가도 정작 선택은 고전을 고를 때가 종종 있다고 한다.

고 원장의 ‘인문학도’적 성향은 책을 읽는 방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할 때 배운 방식대로 문학을 구조분석하면서 읽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일종의 소설적 장치가 있다”며 “예를 들어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은 바흐찐의 ‘대화이론’을 알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목소리들(긍정과 부정, 희망과 좌절, 선과 악 등)이 자유롭게 표출되면서, ‘나’ 와 ‘또 다른 나’의 대화로 갈등이 전개되고 위기감이 조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학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습관은 지금 영화나 미술작품, 음악을 들을 때도 도움이 되고, 환자들과 대화할 때도 도움이 된다”며 “환자들이 하는 말 내면에는 어떤 생각이 있을까, 눈은 슬픈데 목소리는 밝은 이유가 있을까 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똘스또이의 ‘안나 카레리나’ 프롤로그에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 늦은 나이에 한의학 공부를 하면서 망문문절을 통한 진단법을 익힐 때 이 구절이 생각난 적이 있다”며 “건강한 사람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아픈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구나, 아픈 원인을 찾고 보듬어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인문학이나 의학이나 결국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고 원장은 자신의 인생의 큰 전환점 중 하나로 한의대 편입을 언급하며 송나라 말기의 학자 황견이 편저한 ‘고문진보(古文眞寶)’를 말했다. 한의대 편입시험을 치르려면 논어, 맹자, 대학 등의 사서삼경과 여러 한문학을 암기하다시피 공부했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부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 ‘고문진보’를 자주 읽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문 공부를 많이 한 것이 큰 행운이었다. 한의학책을 원전으로 읽을 때 저자가 한 자 한 자를 왜 선택했는지 행간 의도를 유추해가면서 원전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기고, 텍스트 내용 이상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고문진보’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한 시대를 아우른 지식인들의 목소리와 시대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 도원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이백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등은 아예 암기했다. 가끔씩 이 작품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암송하다 보면 머릿속이 리셋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고성희 원장은 인생의 책으로 인지과학과 뇌과학, 장미생물학 관련 서적을 소개했다.

그가 제일 먼저 언급한 책은 에릭 켄델의 ‘통찰의 시대’였다. 저자인 에릭 켄델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뇌신경과학자로, 뇌, 신경세포, 기억과 무의식 연구를 했고, 지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과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통찰의 시대’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파헤치고 있다.

고 원장은 이 책에 대해 “예술, 인문학, 과학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뇌과학이 다른 지식 분야들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가 될 수 있도록 설명한 책”이라며 “특히 오스트리아 세기말 빈에서 유명했던 세 작가의 작품을 뇌과학의 메카니즘으로 설명했다. ‘기억을 찾아서’와 함께 인지과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도 추천했다. 이는 신경과 의사이자 음악애호가인 저자가 일하면서 만난 환자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음악은 어떤 작용을 하며 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고성희 원장은 “음악을 좋아해서 우연히 읽었던 책이다. 이전에는 막연히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뇌과학과 인지과학에 관심이 생겼다”며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후 화음 감각 장애를 갖게 된 환자, PTSD로 아무런 감정을 못 느끼는 환자가 음악을 듣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마음의 둑이 무너진 사례 등을 보면서 음악이 주는 파동 주파수가 우리 뇌의 인지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뇌와 장의 상호연관성을 다룬 에머런 메이어의 ‘더 커넥션’, 기울리아 엔더스의 ‘매력적인 장 여행’을 소개했다. 이에 대해 “예전부터 장이 좋지 않아 음식에 예민해서인지 체질식, 기능영양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런 책을 알게 되면서 만성면역질환, 대사장애 등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이해하기 쉽게 나온 책이라 환자들에게도 종종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인 모를 각종 면역대사질환, 신경정신과질병, 만성통증질환이 많아지는 요즘, 매일 먹는 먹거리와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 환경호르몬의 무분별 확산과 침투, MSG나 글루텐 같은 첨가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며 “이를 통해 만성질환 진단과 치료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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