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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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⑤
  • 승인 2004.10.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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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품질 선택은 한의사 몫
가격중심, 양질약 사용 기회 박탈
분류상 동일 약재도 품질에서는 차이

■ 싼 약재만 찾는 수요자들 ■

Y무역은 최근 중국 동북지방에서 황백을 수입해 왔다. 이번에는 옛날에 수입해 왔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가격문제로 국내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는 한약재다.

이 업체 사장은 한약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가격이 싼 품목으로 품질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여주면 쉽게 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100원에서 1,200원에 약업사에 공급되는 가격에 300~400원만 더 붙여 판매하면 충분하다는 계산이었다. 이 금액은 한의원이나 약업사 어느 곳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또 한의대 본초학 교수에게 보여줘 흡족할 만한 평가를 받아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아쉽게 이 한약재를 사겠다는 약업사는 나오지 않았다. 팔아봐야 크게 남지도 않고, 잘 안 팔릴 경우 자리만 차지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난감함에 처했던 Y무역은 몇 개월 후 다행히 한의사가 운영하는 모 업체에서 이 약재를 모두 수매해주겠다고 해서 한숨을 돌렸다.

□ 한약업계관심은 오직 ‘가격’

Y무역 사장은 “일반인의 상식만으로는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해도 너무한 것 같다”며 “물건이 아무리 좋고, 탐나도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차이가 있거나 먼저 주문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수입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한약업계에는 가격이 조금만 비싸도 팔리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 되다시피 했다. 또 이러한 사실은 부정할 수도 없다.

약재 가격에 대한 정보가 그때그때 제공되지 않던 시기에는 비슷한 품질이어도 남들보다 싸게 사거나 바가지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약재 가격에 대한 정보가 계속 한의계에 공급되면서 이러한 것은 거의 없어지게 됐다.
하지만 한약재 정보는 품질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의계를 비롯한 한약관련 업계의 주된 관심은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한약재의 청결도나 품질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규격화제도를 통한 정부의 관리가 강해진 점도 원인이지만 1차 소비자인 한의사들이 한약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말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내용적인 것이 아니라 겉보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약의 내용물 즉, 효능·효과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 한약은 한약기준으로 봐야

법 규정 상 한약재를 정의하는 기준은 한정적 일 수밖에 없다. 품질은 성상과 회분함량이나 정유함량 정도다. 지표물질이 확인된 한약재는 성분함량이 포함된다. 그리고 유해물질로 중금속이나 농약 그리고 표백제 검사가 시행된다.
이것은 이 한약재가 규정된 것과 동일한 약재임을 확인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수준이다. 효능·효과와는 전혀 별개다. 법률로써도 요구하지 않고 현대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의계 스스로 한약을 한약으로 보려하는 기준을 저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한약재를 마치 공산품으로 보려는 경향마저 존재하고 있다. 한약규격집에서 규정하고 있고 그 기준에만 맞으면 된다는 식이다. 나아가 모든 규격 한약재의 균등한 안정성과 품질 확보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약재는 동일할 수 없다.
정부는 오염된 환경에서 한약재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한의사는 환자의 병증을 보고 알맞은 수준의 약재를 선택한다. 즉, 분류학적으로는 동일한 약재라도 한의학적으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다 똑같거나, 같은 것만을 요구할 때 한의학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맛과 향 그리고 형태와 색이 기준이 되지 않을 때 300~400원 비싼 황백은 한약시장에서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 황백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고가가 아니면서 전체 수요가 1년에 100~200kg 밖에 되지 않는 한약재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물량이 많지 않아 기원 등을 따져 올바른 약재가 수입돼 들어오는 것은 기대하기조차도 힘들다. 그저 수입업자가 국내 시세와 비교해 비슷한 물건을 구해오면 그만인 것이다.
가격정보만이 관심의 대상이 됐고, 한약의 품질기준이 한의사의 오감이 아닌 규격집 기준이 되어버린 한약시장은 한의사에게 양질의 약재를 활용할 기회마저 박탈했다.

GAP, GSP, GMP 제도를 도입해 한약재를 인증한다고 해서 한약의 품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요리사였던 伊尹 선생은 음식물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이윤 선생에게서 탕제가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음식물에서 재료 하나 때문에 전체 맛이 바뀌는 것처럼 한약의 효능도 마찬가지 영향을 받는다면 한약문화는 한의사에게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되살아날 때 희망이 열릴 것이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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