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협회 내부의 갈등, 이해 당사자들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적 정의가 무엇 보다 중요
상태바
[제준태 시평] 협회 내부의 갈등, 이해 당사자들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적 정의가 무엇 보다 중요
  • 승인 2020.09.08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준태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의사파업이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파업은 일단 종료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불안한 잔불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의사 파업 참여율은 전공의 69%, 전임의 28%, 개원의 9%였습니다. 참여율을 떠나 참여한 인원으로 따져도 6070명, 전임의 549명이 파업에 참여했지만 휴진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전국에서 2926곳이었습니다. 심지어 전공의는 계속 지속되는 파업을 했고 개원의들은 며칠만 문을 닫고 다시 진료 중입니다. 지역에서는 의원의 휴진에 그다지 큰 동요는 없는 반면, 당장 대형병원들은 응급실과 수술, 진료 등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환자들도 불편을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파업이 마무리 되어도 그 동안 밀린 환자들의 진료로 인한 혼잡과 불편, 코로나에 이은 파업까지 겹친 지방 병원들의 경영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9월 4일 아침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의문에 서명하고 파업 종료를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공의들은 의협의 독단적 결정이라는 항의와 함께 9월 7일에야 투쟁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따라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전공의들이 남아 있고, 9월 4일의 정부와 의사협회의 합의에 따라 9월 6일 자정까지 의사 국가고시 접수를 추가로 받아 주기로 한 구제 기간에도 불구하고 접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이로 인한 혼란도 예고되어 있습니다.

의료법에서 정한 정부와 전체 의사에 대한 협상을 하는 대표성을 가진 단체인 의협이 산하의 각 의사들의 단체, 의대생 단체 등의 의견을 대표하지 못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9월 7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의협은 체결권을 완전 위임했다 말하는데, 전공의들은 배제됐다하고, 또 파업 철회과정에서 또 의대생이 배제됐다 해서 내부적인 갈등이 또 있는 것 같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사실상 파업을 주도한 것은 의협이 아닌 전공의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의협은 정부와의 합의 전에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절차를 거친 후에 정부와 합의를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혼란입니다. 그리고 의사 파업이 시작된 가장 큰 원인은 이해당사자인 의사협회와의 사전 협의 없이 7월 23일 당정협의를 거쳐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했던 것에 있습니다.

한의사협회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다양한 입장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고, 현대에는 어느 분야든 보다 첨예한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더 강한 동력을 갖고 있는 집단의 이견이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체행동에 따른 위험부담이 더 큰 집단일수록 더 크게 반발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모인 협회의 주류 의견 또는 대표자를 비롯한 임원들과 이견이 있는 집단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표성은 결국 회원들에 의한 것입니다. 국가 역시 그 정책결정을 하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려면 당연히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 회원에게, 국민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전분육등, 연분구등의 조세제도를 도입하려고 할 때, 기존 세법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고 개선된 제도임을 알았지만 실제 적용을 받는 당사자인 농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적용했습니다. 옛날에는 일일이 사람을 찾아 물어 봐야 했고 그것을 전국에서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57%가 찬성했고, 아직 2/3가 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찬성이 많았던 지역에서 시범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성종 때에서야 전국에 실시되었습니다. 여기까지 60년이 걸렸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정책에는 이해 당사자의 의견 역시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군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현안이 넘쳐 날 정도로 의사결정이 필요한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투표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통신기술 등으로 빠르게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면한 많은 과제들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위임된 대표자가 처리하더라도 다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해야 한다면 뜻을 물어 보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정해진 방식에 따라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동의를 얻어 결정하는 것을 절차적 정의라고 합니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라면 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됩니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질서를 갑자기 바꾸는 것이나 의사결정에 소외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불과 20년 정도 전만 해도 대표를 잘 뽑으면 알아서 잘 할 것이고, 고생을 하니 도와줘야지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독단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책 추진의 강력한 반대, 의사결정의 번복, 대표만 동의하고 구성원은 반대하는 혼란 등을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와 함께 절차적 정의의 보완,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그 규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정부에도, 협회에도 필요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