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의사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를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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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의사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를 되새겨보자
  • 승인 2020.09.10 08: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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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southkim@khu.ac.kr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81년 필자가 한의대 예과 1학년 여름방학이 1주일 정도 남은 8월 하순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과대표가 급우들에게 한사람씩 전화를 돌려 학교로 모이라고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는 것이었다. 1981년 당시 천명기 보건사회부(훗날 보건복지부)장관이 한방과 양방을 하나로 통합하여 의료일원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배님들의 투쟁 대오에 들어가 분임토의를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예1 학생으로서 한의사가 양의학도 할 수 있게 되고 면허도 의사가 되니 한의학, 양의학 모두를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니냐는 의견을 주었다가 선배님들의 핀잔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기존의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어주는데 일련의 교육과 시험 과정이 필요할 것인데 이것을 일괄로 구제해줄 가능성은 전혀 없고 한의대 폐지로 인하여 기존의 한의사는 침구사나 한약업사와 같이 후배없는 선배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는 말씀을 소리높게 외치셨다. 게다가 제도로서 한의사제도는 한의학이라는 학문을 전문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연구와 교육, 임상을 통해 국민 건강의 증진과 학문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배타적 제도이므로 지켜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협회와 학생들의 반대로 이 사태가 해결된 이후로도 의료일원화는 정권마다 매번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마다 한의사와 한의대생이 일치단결해서 막아왔던 것 같다. 특히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한약분쟁에서도 의료일원화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의료일원화 이슈는 사실 1951년 한의사제도가 포함된 국민의료법이 통과된 이후 한의사제도의 폐지 혹은 와해를 통해 이익이 생기는 집단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핫이슈였다.

지난 몇 년간을 회고해보면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의료일원화 방안이 한의학에 적대적인 집단에 의해 제기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표하는 협회에 의해서 주장되어졌다는 것이다. 협회장이 바뀐 이후 지난 2년 반의 기간은 한의사 사회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격동의 시기였다. 의료일원화가 직업적, 학문적 안정성을 획득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기에 이것을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각종 방안이 제시되었다. 당초 선거운동기간부터 협회 직무기간 초기에 제시되었던 ‘중국식 이원적 일원화’ 방안은 2019년초 세계의학대학명부 등록이 좌절되면서 ‘미국식 D.O.제도’가 새로운 모델로 제시되는 과정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의사출신도 한약과 침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도 발견된다. 한의과대학의 교육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기준 작성에도 의료일원화 방안과 관련된 안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각종 설명회를 통해 각 대학에 전달되었다. 불행하게도 공청회 및 각 대학에서 제시한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교육과정평가지침은 양방과목 분량을 늘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통합교육의 기본적 목표와 철학이 부재하고 단지 협회의 일원화의 목표를 실현할 방안만을 작성해서 전달하고자 하는데에만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근 몇 달 사이에는 한의사, 의사의 면허통합을 전제로 통합의대를 도입해야 한다는 파격적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기존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을 보수교육을 통해 지역, 공공의료 의사인력을 만들겠다는 방안도 제시하였다. 이러한 한의사의 보수교육을 통한 교차면허 발급에 관한 건은 지난달인 8월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당국자에 의해서 그와 같은 안을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할 예정도 없다는 답변을 통해 협회가 추진하는 통합의대정책 추진의 가능성이 전무함이 증명되기도 하였다.

수년간 한의사협회는 이상하리만치 통합의대, 통합의사, 일원화 등 제도적 변화에 대한 일방적 주장만 이어왔다. 반대 의견을 포함한 다른 대안을 가진 토론자의 방안이 수용 가능한 열린 토론회가 열린 적도 없는 것 같고, 반대 의견을 수용하여 검토와 수정의 과정이 진행된 적이 거의 없이 의료일원화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각론에 해당하는 사항들만 수정해가면서 거의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이루어지는 일원화논의는 독재적 성격이 강하다.

몇 주 전 시도지부장과 대의원들의 반발로 협회장에 의해 제안된 전회원투표를 협회장 스스로 철회한 일이 있었다. 아울러 대의원총회에서 “경과조치가 선결되지 않는 집행부의 학제통합 및 변경 추진을 중단할 것”에 대한 회원투표가 실시될 것이라고 공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소통부재에 의해서 발생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충실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향식 통보만이 횡행하는 현재의 분위기는 정파적 이득만을 발생시키는 일방적 정책 추진의 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전한 정책 결정을 일으키기 어렵다고 본다. 견재를 통한 균형적 정책 결정을 이루어낼 수 있는 논의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 나서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김남일
경희한의대 교수로 의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한국의사학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최근 기고: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명의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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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규 2020-09-10 11:05:31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의사가 한의학을 통해 국민의료에 이바지할 때,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 증진과 행복의 길도 훨씬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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