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화기 너머로 건네지는 따듯한 마음 : 코로나19 전화진료센터 봉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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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화기 너머로 건네지는 따듯한 마음 : 코로나19 전화진료센터 봉사 후기
  • 승인 2020.09.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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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지

선민지

mjmedi@mjmedi.com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선민지
선민지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3학년

‘[시청] 첫 번째 확진자 발생. 상세 내용은 시청 홈페이지 및 블로그, SNS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월 말, 강의를 들으러 잠시 다른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울린 재난문자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전까지 외국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코로나19는 설날이 지나자 국내로 유입되었고, 곧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확장되고 있었다.

시청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확진자 분이 다녀간 곳은 내가 오늘 방문한 곳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놓고 있었다. 나름 안전지대라고 생각한 도시였는데, 확진자 한 명에 코로나19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판데믹 초기에는 대처 방안이나 기본적인 정보도 몰랐기 때문에, 문자를 받자마자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도 진료소에 가야하는 대상자는 아닐까? 아니야 대상자라면 연락이 오겠지. 확진자 분이 마트도 다녀오셨는데 크게 퍼지면 어떡하지. 무증상 감염자도 많다던데, 내일 강의를 듣지 말고 집에 올라가야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숙소 TV에서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대한 속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내일 상황 보고 집에 갈지 결정하자.’

문자를 확인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숙소에 들어왔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마스크에 안경, 모자까지 쓰고 편의점에서 식량을 사오기로 했다. 숙소를 민첩하게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길. 대로변에 엄청 큰 간판이 반짝였다. 커다랗게 쓰인 글씨를 보니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그 교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었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불안감에 황급히 전주를 떠나고 며칠 뒤, 2번째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게 3월이 되었고, 개강은 결국 미뤄졌다. 개강을 하지 않는 학교.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전국이 모두 자가격리에 들어간 듯 하여 때로는 우울감 마저 들었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비대면진료를 허용할테니 병원에 가는 것도 주의하라는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그 때, 우연하게 대한한의사협회에서 대구·경북지역 코로나19 감염자들을 돕기 위해 설치한 전화진료센터가 서울로 확장되어 설치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친구와 함께 자원봉사를 신청하였다. 지금 상황에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안내를 받고 도착한 전화 진료 센터는 엄숙하고 침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활기차고 훨씬 더 바쁘게 돌아갔다. 전문가들과 교수진에 의해 작성된 한의진료 매뉴얼에 따라 한의대생이 예진을 전화로 진행하면, 한의사분들이 본진을 통해 필요한 처방을 택배로 부쳐주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한의대생으로서 코로나19 환자가 한의사 선생님의 상담을 받기 전의 예진 업무를 담당했다. 열심히 매뉴얼을 숙지한 뒤, 다소 긴장된 상태에서 첫 예진 환자의 전화를 받았다.

“네, 대한한의사협회 한의진료 상담센터 자원봉사자 선민지입니다.”

우선 진료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물어보고, 감염 경로를 체크하였다.

“꼭 말해야하나요..?”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증상이 나타난 날 기준으로 집단 발병지를 다녀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사실은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신천지 교인이라서요.”

순간 당황스러움에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였다. 환자분이 아이들 밥을 해줘야하는데 집에 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마음 아파하고 있었는데, 신천지 교인이었다니. 안타까움과 동시에 혼란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음 상담 들이 계속 이어졌다. 오전동안 전화 예진 업무를 하면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고열과 심한 기침으로 엄청 고생하게 된다는 것과 확진자 중 신천지 교인이 정말 많다는 것. 정신없이 지나간 오전 시간이 종료되고, 점심시간에 한의사 선배와 도시락을 먹었다.

“언니, 전화로 교인 분들 예진을 보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왜, 여론의 뭇매를 받는 분들의 진료를 돕게 되어서?”

“......”

“감염 경로를 물어보는 것은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하고, 진료 시 유의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한 절차야. 의료인으로서 그분이 신천지 교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코로나19 확진자라는 것이 중요해. 어떤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고, 어떻게 그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지. 그 사람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든 환자라는 점에서는 똑같아.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확진자 분들의 건강 회복을 돕기 위해서이고.”

코로나19로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이 줄어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선배는 진료시간을 빼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요즘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처방한 한약으로 확진자분들의 후유증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감사 전화를 받을 때라고. 남은 점심 시간동안 선배는 확진자분들의 증상과 이에 맞는 처방들에 대해 한참 설명해주셨고, 곧 우리는 다시 오후 봉사로 투입되었다.

오후 봉사에서는 선배의 말씀을 떠올리며 환자분들의 고충에 집중하여 예비 진료를 진행하자고 생각했다. 초진 진료 전화만 걸려왔던 오전과는 달리, 오후에는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며 약을 더 처방받고 싶다는 재진 환자분들의 전화가 많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업무에도 익숙해져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즈음, 다소 어두운 목소리를 가진 환자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지 여부를 질문하였을 때, 그 환자분이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하였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힘들다는 말씀만 반복하시는데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어디서부터 질문을 드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한의대생 자원봉사자들을 지도하러 오신 한의사분께서 전화를 바꿔보라고 하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의사 000입니다. 환자분께서 그동안 많이 힘드셨나봐요.”

그 말이 방아쇠가 되었는지 한동안 말없이 수화기 너머로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괜찮으니 진정되시면 천천히 어떤 점이 힘드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몇 분 정도 흐른 뒤, 환자분께서 입을 열기 시작하셨다.

“코로나19에 걸려서 제 주변에 너무 많은 피해를 입힌 것 같고, 앞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얼른 나으라고 하지만 뒤에서는 손가락질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러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환자분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에요. 다른 코로나19에 확진된 분들도 불안해하시고, 두려움, 불면을 겪으시기도 합니다.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요, 전혀 그렇지 않다면 0, 매우 그렇다면 10으로 해서 0부터 10사이의 숫자로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침착하게 환자분의 말씀을 꼼꼼히 들어주면서 차트를 작성해나가는 한의사분을 보며, 이런 분이라면 환자가 믿음을 갖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의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차를 타기 전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손소독을 하며, 체온을 확인한다.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절차들이 코로나19 확진자분들과 직접 통화를 해보고, 의료진분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나니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이번 코로나19는 감염력이 높은 특성상, 주로 특정 모임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확진자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묶여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혐오 또한 화두가 되었다. 물론 권고 사항을 어긴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은 그들이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확진자분들의 치료와 재활, 그리고 더 이상 코로나19가 퍼지지 않도록 일에 집중할 뿐이다. 정작 그들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안녕과 국민 모두의 건강인데 말이다.

벌써 시간은 흘러 8월이 되었고,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의 방역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그 사이에는 드러나지 않는 의료진들이 땀방울과 희생이 있었다. 작게나마 나도 동참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울리고 있을 진료센터의 전화벨을 생각하며 마스크를 끼고 밖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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