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죽은 친구와의 기막힌 귀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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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죽은 친구와의 기막힌 귀성길
  • 승인 2020.09.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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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낙엽귀근
감독 : 장양출연 : 자오번산
감독 : 장양
출연 : 자오번산

 

코로나19는 우리의 명절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연일 방송에서 추석 연휴 때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뉴스가 나오고,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현수막까지 걸리는 등 비대면 추석이 장려되면서 매년 명절 때마다 이어지던 귀성 전쟁을 올해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사람들은 갈 것이고, 이 틈을 타서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년에는 서로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번에는 고향에 안 가기에 동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함께 일하던 절친한 친구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자 사내(자오번산)은 고향의 가족 곁에 묻히게 해주겠다는 살아생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체를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난다. 이렇게 죽은 친구를 업고 가는 길에서 그는 버스 강도를 비롯하여 사랑하는 여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내, 5000m 산을 등반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가는 남자, 보일러 사고로 한쪽 얼굴을 잃어 버린 여자, 살아 있으면서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을 갖고 있는 영화 <낙엽귀근>은 제목과 같이 사람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죽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체를 업고 그의 고향을 찾아간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로드 무비로 영상화 시키며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화 하면서 최근 영화들과는 다른 아날로그 감성을 진하게 전하고 있다. 물론 2007년도에 제작된 작품이 이제서야 개봉되는 관계로 영상 기술적인 면에서 약간 뒤처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떤 영화와 비교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소소한 감동을 전하며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게 될 것이다.

또한 끝없이 계속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중국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으며,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기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며 더 가슴에 와 닿게 하고 있다. 사실 시체를 업고 다닌다는 설정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영화에서는 시체를 어떻게 운반하면서 갈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방법 제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주인공이 점차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친구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의리를 보여주면서 오랜만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배우 자오번산의 코믹한 생활 연기가 작품의 재미를 더하고 있는 <낙엽귀근>은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작이며,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수작이다. 비대면 추석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낙엽귀근>을 통해 고향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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