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의학연구원 개원 10주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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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의학연구원 개원 10주년 특집
  • 승인 2004.10.0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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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한계 안고 한의학 과학화 선도
인력·예산 3배 확장, 수익과제 확보 관건

전통의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의료시장개방이 가시화되면서 국내 한의계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의계의 유일한 정부출자 연구기관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리고 있다.
10월 10일 개원 10주년을 맞은 연구원은 초대 故홍원식 소장, 신민규(2대)·고병희(3대) 원장에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금년 2월에 대전에 독립청사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한의학연구원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고, 이형주(4대) 원장으로부터 연구원의 한계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설 립 ■

한의학연구원의 창립은 한약분쟁이 한창이던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년 한시적 기구로 설치되었던 국민의료정책심의위의 결의사항중 국공립 병원내 한방진료부 설치와 국립한의학연구소 설치 건이 포함된 것이다.
당시 보사부는 전통의학 육성이 세계적 추세이고 전국 9개 한의대가 배출해내고 있는 전문인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고, 대통령공약사업으로 국립한의학연구소 설치지원 약속에 따라 본격 검토했다. 정부의 인식이 전환한 데는 한의계의 줄기찬 설립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립보건원을 미국 NIH와 같은 센터 형식으로 조직과 직제를 개편하는 구성안을 제출하면서 개편안에 한방의학연구부 신설이 포함됐다. 이 구성안은 기존 약품부의 생약분석과와 생약규격과를 폐지하고 천연의학연구소 아래 천연약물연구부와 한방의학연구부를 신설하는 것인데 한방의학연구부는 한방 1, 2, 3과로 나누었다. 이 안은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정부가 한의학연구소를 설립할 정책의지를 비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다가 한의학연구소 설치가 다시 거론된 것은 한약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93년 5월 이었다. 정부와 민자당이 합의하여 확정한 ‘한의학 발전방안 5개항’에 국립한의학연구소 설립 건이 포함됐다.
그후 10월 94년 상반기에 ‘한의학연구소법’을 제정하고, 하반기에 공식 출범시키기로 확정 발표했다. 보사부가 마련한 설립 계획안에 따르면 총 소요경비 229억원을 94년부터 97년까지 국고에서 전액 출자키로 하고 연구직 78명, 사무직 42명, 간호직 36명, 약무직 10명 등 모두 194명의 직원을 두고, 97년에는 연구소 부속 한방병원을 개설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정기국회를 통과한 한의학연구소 설립 예산은 15억 7천5백만원으로 3개 연구부서(기초한의학연구부, 한의학발전연구부, 한약개발연구부)에 23명의 인원으로 출범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94년 3월 임시국회를 통과한 한국한의학연구소법은 법률 4758호로 공포됐다. 그해 8월 홍원식 경희대 교수가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설립준비를 한 끝에 10월 10일에 출범했다.

■ 청사 이전 ■

연구원은 출범 당시 입주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5, 6층 청사가 비좁을 뿐만 아니라 실험동물로 인한 위생상의 문제와 기계작동으로 인한 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의학연구원은 출범 당시에도 97년까지 독립 청사 마련과 1백병상 규모의 부설 한방병원(이후 한의학 임상연구센터)을 설립할 계획을 세운 바 있어 어떤 식으로든 이전은 예고되었다.

이런 사정에 따라 연구원 이전 계획은 한의학 임상연구센터 설립을 고려하여 추진되었다. 임상병원의 재정자립을 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환자의 내원이 필수적이고, 또한 환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가 필수적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역이 수원지역이었다. 마침 경희대로부터 영통캠퍼스 일부를 장기 임대해주겠다는 제의가 있었으나 없었던 일이 되고 부지 물색작업이 새로 시작됐다.

2000년에 대덕연구단지내 한일합섬 부지 1만 5천평이 매물로 나오자 한의학연구원측이 즉각 매입했다. 연구원 이전지로 대전이 확정된 것은 대덕연구단지라는 첨단연구기관이 밀집돼 부족한 한의학연구의 연구인프라를 보충해줄 것으로 기대됐을 뿐만 아니라 추후 연구원 부설 한의학 임상연구센터가 들어설 경우 환자를 공급해주는 원천으로서 대전광역시의 장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의학연구원은 청담동 청사 매각대금과 국회를 통과한 청사이전 건립비 23억원을 합쳐 총 48억원의 건립비용으로 공사를 착공, 2003년 12월에 준공돼 올 2월말 이전을 완료했다.

■ 현 황 ■

1997년 연구원으로 승격 개원한 한국한의학연구원은 1999년 산업기술분야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국무총리 산하 산업기술연구회에 소속됐다.
초기 연구직 14명을 포함해 전직원이 23명이었던 한의학연구원은 현재 연구직 29명 등 총 45명으로 늘어났다.

조직은 학술정보부, 의료연구부, 검사사업부, 한약제제연구부 등 4개의 연구부서와 지원부서로 구성돼 있다. 각 연구부서는 한의학, 약학, 생물학, 유전공학, 화학, 보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로 구성됐다.

정부출연금 16억원으로 시작한 연구원의 2003년 자산규모는 137억원.
산업기술연구회에 소속된 9개 연구원(소)의 평균 정규직 인원(376명)과 총자산(1천3백억원)의 10% 규모이다.
9개 기관 중 역사가 가장 짧은 관계로 인력과 예산 등의 규모가 뒤쳐져 있다.

■ 도약하는 연구원 ■

연구원이 장기적으로 한의학 연구의 거점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조직 확대가 필요하다는 산업기술연구회의 평가에서 연구원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내부적으로 규모의 한계성을 안고 연구를 감행해야 했던 연구원이 본격적으로 수탁연구사업으로 수익물꼬를 튼 것은 정부의 한방치료기술개발사업 과제를 받기 시작한 2000년이다. <표 참조>

연구원은 2002년 까지를 기반조성기간, 그 이후를 특화분야의 연구를 선도하는 거점 연구기관으로 도약하는 시기로 기본목표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에 의해 역량을 극대화하겠다고 표방했다.
중점 연구는 ▲임상의료기술 영역(한방진단과 치료의 객관화 및 산업화) ▲한약개발기술(한약제제개발, 품질관리사업, 본초자원 중점 연구센터 구축) ▲한의학 정보기술 등의 3영역에서 추진되고 있다.

특히 2003년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산원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한의지식정보자원 디지털화 사업’으로 13억원의 예산을 확보, 한의계에서 최대의 사업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획기적인 성과를 내게 됐다.
또한 작년 인원 31명(연구직 19명)에서 45명(연구직 29명)으로 연구원사상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되고, 금년 예산액 75억원이 내년에는 90억원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김승진·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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