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나의 ‘블랙독’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하며 살아갈 것인가
상태바
[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나의 ‘블랙독’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하며 살아갈 것인가
  • 승인 2020.10.30 0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예전에, <콰이어트>를 읽은 적이 있었다. 외향적이며 자기 표현을 잘 하고 활발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을 때였다. 이 책을 읽고 내향적이며 예민한 나의 기질도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스스로 또는 자녀가 그런 성격이라서 고민되시면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나온다는 광고를 봤을 때 <콰이어트>가 떠올랐다. 실제 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고, 내 친구들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많고, 매우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라서 궁금했다. <콰이어트>와 비슷한 책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막상, 가치와 관점에 대한 내용보다는 실전에서 사용하는 실용서의 느낌이었다.

 전홍진 지음, 글항아리 출간

저자인 전홍진 박사는 본인의 진료와 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예민한 특성”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체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이런 예민한 특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나타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뇌 과학적인 관련성을 설명하며 책을 시작한다. 실제로 예민성을 잘 이겨내거나, 그 예민성으로 자신의 작품 활동을 했던 유명인들의 예를 들어주고 진료에서 만나는 예민한 사람들의 예와 그에 따른 조언을 뒤 이어 해준다. 환자로써 진료실에 만날 정도는 아니지만 삶속에서 자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은 그 뒷장에 있다.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예민함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 나의 몸과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 할 것인가? 대인 관계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쓰는가? 감각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나의 과거와 미래, 나의 가치에 대해서 나는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그리고 ‘걱정을 다루는’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유용한 팁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트라우마를 다룰 때, 그것을 자꾸 감추려고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 자존감의 중요한 부분은 어려서 형성된 안전기지(secure base)의 형성과 적당한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는 것. 그 안전기지는 어려서 엄마를 통해 형성 되는 게 좋지만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지금 안전기지가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그 안전기지가 되어 주는 사람에게 잘 하라는 구절에서는 엄청 웃었다. 나의 안전기지는 누구인가 생각했고 당장 커피 한잔을 쏘아주었다. 걱정에 대해서 당장 할 것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나누고 내가 할 것과 누군가와 의논할 것을 구분하는 표도 유용했다. 걱정한다고 해봤자 구체적이지 않은 어쩔수 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늘상 걱정 속에 파묻혀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을 실제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스스로 예민하다는 것을 알아서 조심하느라 더 불편하다.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더 예민해지기도 하고. 내 아이가 매우 예민하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이 아이에게 좀 덜 예민한 아이들과 비슷한 반응을 가르치거나 예민하지 말기를 윽박질러 본 경험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가 할 일은 안전기지가 되어 주는 일이라는 것, 예민함을 인정하고,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우울함을 <블랙독>이라고 불렀다는 처칠, 그럴 때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블랙독>을 잘 다루려고 했다던 처칠의 삶처럼, 나의 예민함을 어떻게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였다.

만약 한의사인 누군가가 이런 책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뇌과학에서 말하는 호르몬의 반응들 말고 오장에 따른 칠정의 변화를 알고 있는 한의사라면, 심기가 허한 사람, 간화가 치성한 사람... 등으로 진찰하고 분류할 수 있는 한의사라면? 이 책의 저자가 임상에서 나눈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과 그에 따른 조언과는 조금은 다른 조언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의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은 매우 예민함을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실제 한의원에서 몸과 마음을 같이 치료 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과 몸의 연결성을 늘 상 임상에서 접하고 사는 입장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한의사 버전이 있다면 흥미로울 듯 싶다.

 

20201025

강솔 / 소나무한의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