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937> - 『錦囊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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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937> - 『錦囊集』
  • 승인 2020.10.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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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비단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전통

표지에 적힌 ‘비단주머니에 모아놓은 소중한 글귀’라는 의미에서 ‘錦囊集’이란 책제목에 먼저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가 편집본으로 보이는 이 필사본 의방서엔 구한말 민중들의 의료수요에 부응하여 민간에서 손쉽게 쓸 수 있을 만한 단방요법으로부터 건강보건 상식과 아울러 제조법, 생활지식, 택일법 등 당시 유행했던 각종 잡방과 잡학상식이 요모조모로 구비되어 있다.

◇ 『금낭집』
◇ 『금낭집』

겉표지에 표제를 제외하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본문에 수록된 여러 가지 항목의 소제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 한눈에 보아도 浸穀種吉日, 下秧吉日, 合醬吉日, 造麯吉日, 造酒吉日 등 주로 농사를 준비하는 일과 가정살림 대소사에 요긴하게 소용되는 갖가지 장류와 누룩, 술을 빚기 위한 준비사항, 당사주법을 비롯한 택일법 등을 위주로 편성되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본문을 펼쳐 여러 장을 넘겨보아도 예상과 달리 의약지식이나 관련 내용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어찌된 영문인지 7언으로 된 시구만 줄줄이 나열되어 있고 상단 여백에는 간략한 詩題가 본문보다 다소 큰 글씨로 적혀 있을 뿐이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시모음집이 아닌가 여겨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참을 넘겨보아도 이런 지경이어서, 무언가 내용이 잘못되었거나 표지가 바뀌었나 싶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시구와 시구 사이의 여백에 다소 다른 내용의 글이 가로로 뉘어져서 적혀있다. 책장을 90도 옆으로 돌려 읽어보니 과연 각종 단방법이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다. 간혹은 한글로 향약명을 기재한 곳도 더러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민간에서 손쉽게 쓸 수 있는 단방요법을 위주로 간이치법을 모아 편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간혹 사본류 의서 가운데 다른 내용과 섞어 기재하는 일이 전혀 없는 일은 아니나, 보통 글씨가 적히지 않은 면을 뒤집어 사용하거나 책의 뒷부분 남은 지면을 사용하는 경우는 보았지만, 이렇게 같은 면의 여백을 종횡으로 交織하듯이 적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필자가 추정하건대, 아마 이러한 방식은 양반 집안에서 서찰을 적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선비들이 편지글(簡札)을 쓰다가 자리가 모자라면 행간 사이의 좁은 여백에 좀 작은 글씨로 본래 줄과 다소 층위를 두어 적어 넣거나 위아래의 여백을 이용해 돌려 써넣곤 하는 것이다. 좀 더 심한 경우에는 4면의 귀퉁이를 빙글빙글 돌려쓰듯이 채워 넣고 그것도 정 모자라면 다시 뒷면으로 돌아가 적은 경우도 본 적이 있기에 필시 이런 관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하튼 이 책의 작성자는 어지간히 종이 구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으로 양쪽으로 접은 지면의 가운데를 터서 뒷면에도 다시 적었기 때문에 얇은 종이 장에 먹이 배어나와 읽어보기에 지장이 적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본문에 기재된 내용 가운데 더러는 현대인들이 기대하기 힘든, 깜짝 반가워할 비법도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대추잎을 사용해 減肥 효과를 노리는 희한한 처방이 들어 있는데, 원문에는 “肥濕人이 欲瘦方에 棗葉을 曬乾하야 濃浴云云이라”하였다. 곧이곧대로 효과를 보장하기는 어려우나 요즘 햇 대추가 나올 철이니 아직 남아있는 대추나무 잎을 거둬볼 일이다.

또 “感寒 1~2일에 땀을 내고자하는 경우에는 赤豆(팥) 1줌을 갈아서 白沸湯 1湯器로 猛洗服之하고 取汗하라.”고 하였다. 또 “手臂麻痹痛에 송엽, 소엽, 박하 등을 불에 볶아 통처에 두텁게 붙이거나 혹은 솔잎 1가지만 뜨겁게 달구어 찜질해도 효과가 좋다.”했으니, 고려의서에 보이는 외치법이 구한말까지 그대로 전승됨을 확인할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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