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죽음이 눈 앞을 가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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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죽음이 눈 앞을 가리지 않도록
  • 승인 2020.12.04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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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린애

김린애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남편이 자살했다,

베체트병이 있고 알코올 중독이 있는 남자가 자살했다. 그는 이혼을 앞두고 아내의 생일에 유서 없이 자살했다. 아내는 먼저 경찰서에서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장례식장에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예상하며 억울해하면서도 슬퍼하는 자녀들을 보며 자책한다. 남편 죽은 여자가 웃기도 하더라는 얘기를 듣는다. 세상 모두와 스스로로부터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으로 비난을 받는다. 마지막 전화인 줄 알았더라면 받았을까, 좀 더 참았으면 자살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자녀로부터도 엄마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거 아니냐는 비난을 받는다. 이렇게 죽은 이의 유가족이 이야기에서 가해자로 등장한다.

곽경희 지음, 센시오 출간
곽경희 지음, 센시오 출간

이 에세이 <남편이 자살했다>의 저자인 아내는 자신의 결혼이 억압적인 가정에서 자라 집을 빨리 나가고 싶던 여성과 폭력적인 아버지와 과잉보호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남성의 결합이라고 회상한다. “상처가 배우자를 고른다”는 말에 깊게 공감했을 정도이다. 자신을 싫어하는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끼리 서로를 비난하고 고통을 주었다. 아이가 생기면, 딸이 생기면 가정을 돌아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넷이나 두었지만,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간호사이자 심리학도이기까지 한데도 뭔가 준비된 박복함의 길로 들어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옛날이야기의 등장인물처럼 전형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뭉쳐있던 감정이 치료자의 도움으로 풀려나가면서 비로소 이야기도 저자도 전형성을 벗어나게 된다. 치료자의 도움은 위로나 사랑이 아니라 분노였다. 저자의 처지에서 ‘이야! 한 방 먹이고 갔네!’라며 대신 분노해주는 그 한마디가 뭉쳐있던 죄책감을 풀어내었다. 남편이 술을 끊고 저녁에 일찍 들어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과일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하고 장도 보고 산책도 함께 하길 바랐으나 “남편 없는 여자처럼 동동거리며 살던” 아내는 맹렬하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우울과 죽음, 유족의 연쇄 자살로 가라앉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흐르는 길을 비켜낸다.

비로소 구르기 시작한 감정은 분노에서 애도로 바뀌고 사랑으로 바뀌어 나간다. 가족이 맛있게 먹은 음식을 기억했다가 사 오기도 하고 아내 사진을 수첩 표지에 자랑스레 붙이고 다니고, 밤이면 꼭 포옹한 채 잠들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그친 것이 마치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왜 못 뛰느냐고 다그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깨닫고 미안해한다. 비록 서로의 고통 때문에 당사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지켜봐 온 아이들은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노라 할 만큼 서로 사랑한 부부였다. 집단 치료와 좋은 치료자들과의 상담을 통해 이뤄진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지상승(五志相勝)과도 닮았다. 특정한 감정이 과도해져서 사람을 상하게 할 때 그 감정을 견제하는 다른 감정을 일깨워주는 오지상승 치료법처럼 다채로운 감정으로 시야가 넓어져 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심리상담에 대한 책이나 사례에 익숙해서 그런지 이 책이 그 중에서 특별히 소개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살 징후에 관한 책이나, 자살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에 대한 책은 더 소개하고 싶던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아내를 가해자로 속단한 사람들처럼 내가 그 부부를 불행에 갇힌 사람들로 속단한 게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큰 사건이지만 그 자체로 인생이나 관계를 전부 규정할 수는 없는데도 그런 속단을 저질렀다. 자살을 앞둔 사람들의 주요 증상은 터널시야이다.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지면서 자살 이외의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에 또 다른 터널시야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자살이라는 사건에 “명확한” “보이는” 원인을 붙이고 싶은 마음, 관련된 사람들을 자신과는 상관없노라, 자신에게는 그런 사건이 없을 거라고 믿고 구분 짓고 싶은 마음이 자살자와 그 가족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힌다. 사건이나 사례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다는 시야를 돌려준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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