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회원 투표에 앞서, 설득이 아닌 대화가 필요한 순간
상태바
[제준태 시평] 회원 투표에 앞서, 설득이 아닌 대화가 필요한 순간
  • 승인 2020.12.07 12:4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준태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듣기만 해도 꿈 같은 이야기가 바로 태평성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천하를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황금기를 부르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강구연월, 고복격양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툴 필요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며, 누구나 배불리 먹고 편안함을 누리는 시기라는 의미죠. 하지만 현재 한의계는 결코 조용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습니다. 흔히 첩약건보라고 부르는 한약(탕제)의 건강보험 시범사업 때문입니다. 첩약을 쓰지 않는데도 탕제를 첩약이라고 부르는 용어 문제는 넘어간다 하더라도,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첩약건보에 대해 회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건정심 소위원회 제출 예정인 안건으로 첩약건보 시범사업의 진행 여부를 묻는 회원투표는 2020년 6월 22일에서 24일까지 3일간 회원투표를 거쳐 투표율 73.11%, 찬성 63.2%로 가결되었습니다. 그 이후 건정심을 거쳐, 건정심을 통과한 최종 확정안이 나왔습니다.

시범사업 공모 과정에서 2020년 11월 2일 시범사업 공고, 2020년 11월 2일에서 8일까지 7일간 시범사업 접수 신청을 받았습니다. 시범 사업 참여 조건은 협회에서 주관한 교육을 이수하고 이수증을 첨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범 사업기관 선정 발표가 2020년 11월 13일 심사 결과 통보 예정이었지만, 시범사업 기관 선정 결과 발표 전 11월 12일에 일부 한의원에서 11월 20일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비대면 진료도 가능하다는 광고를 올려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선정 결과 발표도 안 나온 시점에서 내부 정보로 자신들의 선정결과를 먼저 알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 광고를 올렸던 프랜차이즈 한의원의 현직 대표이사와 전 대표이사가 각각 한의사협회의 부회장직과 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해상충(COI) 논란이 나오면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이 광고 건은 해당 프랜차이즈 현 대표이사의 사과와 해명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이후 시범사업 선정기관 발표 예정이던 11월 13일에서 선정기관 발표가 11월 18일로 연기되었습니다. 문제는 공모당시 11월 중순 시행 예정이라던 시범사업 실시일이 11월 18일 선정기관 발표와 동시에 11월 20일로 발표 되었습니다. 세부지침이 100페이지가 넘는 데다가 필요한 서식 등도 그 날 발표되면서 회원들이 각종 세부지침과 수가 등 제반 사항을 그제서야 인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1월 18일 오후 늦게 나온 발표에 11월 20일 오전 9시경까지 대략 40시간 이내에 모든 준비가 되어야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인 11월 19일 진료까지 해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대체 누가 이런 결정을 했는 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당혹감 속에 11월 20일에 시범사업이 시행되어 환자 진료가 가능해졌지만, 정작 심평원에 청구하는 것도 미비한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심평원 청구도 12월 중순 경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진 상태에서 2020년 12월 6일 현재 협회 첩약시범사업 게시판에 협회 보험이사가 단 댓글로 '청구일 관련해서는 아직 심평원으로부터 고지된 내용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이 나온 상태입니다. 준비된 것은 한의사도, 차트 프로그램도, 심평원도, 제약회사도, 원외탕전원도 그 어디도 없는 상태로 하루 반만에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공지만 했고 아직도 각자의 상황이나 준비가 다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직도 세부지침에 대해서 질문들이 오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모로 회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선정기관 발표와 시행일자. 여기에 맞물려 수가, 원산지 공개, 기준 처방의 약재 구성에 대한 의문과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기준 처방의 출전을 미기재 한 것 등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지부에선 회원 투표도 아닌 회원들의 여론 조사마저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쟁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논쟁입니다. 현재는 협회가 건정심 이후 확정된 최종안에 대한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대의원 총회에 회원 투표를 실시할 지를 묻는 서면결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협회는 이미 작년부터 최종안이 나오면 회원투표를 하겠다고 한 최종안이 시범사업에 들어가기 전 최종안이 아닌 건정심에 상정한 안이 최종안이었고 이미 투표했다고 하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시범사업이 끝나고 본사업에 올라가는 안이 최종안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서로가 각자 최종안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최종안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회원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모두가 불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회원들이 정책에 대해 불만과 항의가 잇따르게 되면 당연히 회원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또 살펴 보아야 합니다. 주역에서 지도자의 덕목을 태(泰)​와 비(否)​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태(泰)괘는 하늘이 밑에 있고 땅이 위에 있습니다. 군자가 위가 아닌 아래에 처하면서 위와 아래가 서로 교류하는 모양으로 민심과 통하는 것을 태평성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대가 되는 비(否)괘는 윗사람은 위에서 군림하고 모든 결정을 혼자 하며 아랫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양극화, 세대의 단절, 불통, 독재 등을 상징하는 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믿고 마음대로 좌지우지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민생을 살피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자 주역이 사서삼경의 하나가 된 이유입니다. 43대 협회는 매번의 회원투표마다 중립적 정보제공자가 아닌 찬성을 독려하는 쪽이었고,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첩약건보에 대한 회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투표 전에 충분히 알려줬던 내용이고 크게 다른 것도 없으므로 다시 투표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회원의 뜻을 확인해야겠다는 민주주의적인 태도 보다는 협회 자체의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는 의지가 더 뚜렷한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비(否)입니다.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군자가 아무리 바르게 행동해도 이로울 것이 없다(否之匪人 不利君子貞)"고 합니다. 아무리 옳은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독선에 빠져서는 안 되며 서로 이해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옳다 하는 길이라도 해서는 안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급하면 멀리 가고 제대로 가기 보다 당장의 한 순간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협회는 회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하기 보다는 필요하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설득만 하는 상태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 협회가 보여주었던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는 여러 모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민주주의는 협회에도 적용되는 1원칙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규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협회의 모든 권한 역시 회원들로부터 위임 받은 것이며 회원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사하여서는 안 됩니다. 일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회원들의 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회원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성민규 2020-12-11 13:26:41
참 좋은 글입니다.
올바른 흐름으로 가야함을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