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102) 표류(漂流)도 항해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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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102) 표류(漂流)도 항해의 일부다
  • 승인 2020.12.1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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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doodis@hanmail.net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김영호
한의사

갑자기 요트를 몰고 바다에 나가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요트 원정대>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드넓은 바다위에서의 막막함과 두려움, 게다가 잔잔했던 바다에 태풍이 불어 닥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항해에 대한 글을 몇 꼭지 읽어봤다.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큰 파도가 다가올 때 측면에서 맞으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큰 파도가 오면 목적지와 상관없이 파도가 오는 반대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것이 급선무란다. 돛폭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파도를 뒤에서 맞으며 떠내려가야 한단다. 아무리 강한 바람도 언젠가는 약해지기에 파도와 맞서지 말고 잔뜩 웅크린 채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조언이다. 태풍을 넘어가는 항해요령의 한 문장이 계속 맴돈다.

‘떠내려가는 것도 항해의 일부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예기치 못한 큰 파도를 만나면 뱃머리를 돌리고 방향을 틀어야 한다. 큰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배가 다 부서질 수도 있다. 경험하지 못한 갑작스런 시련이나 불운이 덮쳐올 땐 일단 멈추는 것이 우선이다. 그 후에 빨리 돛폭을 줄여야 한다. 바람을 머금는 돛을 잠시 접어두듯 ‘미래를 위해 펼쳐둔 것들’을 빨리 거두어야 한다. 돛폭을 줄여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해야 태풍의 피해도 줄어든다.

대부분의 배는 바람보다 파도 때문에 큰 파손이 일어난다고 한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지만 막상 배를 망가뜨리는 것은 파도다. 우리에게 일어난 인생의 시련들도 시련 그 자체보다 시련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더 많다. 일어난 일은 10인데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 걱정하다가 100만큼의 피해를 자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무엇을 대비해야 하지?’ 같은 생각으로 고생을 자초한다. 바람이 아닌 파도가 배를 침몰시키듯 인생의 시련(바람)도 그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반응(파도)이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

 

삶의 돛폭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일이 안 풀리고 계속 꼬이는데 욕심을 부리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돈이 계속 빠져 나가는데, 그만큼 벌려고 주식이나 부동산 혹은 사업에 큰 투자를 하는 것은 태풍 앞에서 돛폭을 크게 펴는 일이다. 인생의 운이 나빠지기 시작할 때는 뭘 해도 일이 꼬이기 마련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평소와 같은 이성적 판단도 어렵고, 뜻밖에 벌어진 금전적 손실을 보충하고자 위험한 투자에 현혹되기도 한다. 이럴 때 소위 영혼까지 끌어 모으는 <영끌투자>는 정말 위험하다. 태풍이 지난 후 재기(再起)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손실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큰돈을 버는 시기에 소외되었다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웅크려야 한다. 기회는 다시 온다. 욕심을 버리고 돛폭을 줄여야 살아남는다. 행복과 부유함이라는 ‘큰 돛폭’을 줄이고 그저 ‘작은 돛폭’으로 <생존>해야 한다.

뱃머리도 돌리고 돛폭도 줄였다면 이제 먼 곳을 보지 말고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험한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떠내려가면서 지금의 상태를 잘 지켜내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분노, 걱정, 두려움은 고이 접어두고 위태로운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해야 한다. 항해가 가능한 수준으로 요트가 건재(健在)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주어진 순간, 주어진 하루만 잘 살아가다보면 어느 새 기회의 순풍(順風)이 뒤에 와 있을 것이다.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일부 듯, 떠내려가는 표류(漂流)도 항해의 일부라고 한다.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이 예정에 없었다면 기회와 행운도 그렇게 갑자기 오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각자의 경로와 속도가 있다. 비록 태풍을 피해 표류(漂流)하고 있는 지금은 어떻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성공도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을 믿는다.

태풍을 만난 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태풍을 견뎌내는 것은 나의 일이다. 태풍이 갑자기 왔듯이 순풍(順風)도 갑자기 온다. 그 순간까지 피해를 최소화하자.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웅크리자. 욕심내지 말자. 그것이 최선이다. 나만의 항해 요령이 이렇게 정리된다. 글을 다 쓰고 문득 영화 <화엄경>의 화두 한 구절이 생각난다.

“흐르는 것을 따르시오, 흐르지 않는 것을 따르지 마시오.

내 뜻을 허물수록 강물의 뜻이 드러나고, 내 마음을 멈출수록 강물의 마음으로 흐르는구나.”

나의 태풍, 당신의 태풍 그리고 우리의 태풍이 무사히 지나고 다시 순풍의 돛을 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라며.

김영호
12년간의 부산한의사회 홍보이사와 8년간의 개원의 생활을 마치고 2년간의 안식년을 가진 후 현재 요양병원에서 근무 겸 요양 중인 글 쓰는 한의사. 최근 기고: 김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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