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월터 미티’가 ‘톰 소령’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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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월터 미티’가 ‘톰 소령’이 되는 순간
  • 승인 2020.12.2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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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누구나 자신이 작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열심히 살지 않아서는 아니다.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왔고, 그런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어둡고 쌀쌀한 겨울철이면 괜히 한 해를 돌아보고,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눈에 띌 것 없는 삶의 흔적에 씁쓸함을 곱씹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 벤 스틸러출연: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아담 스콧
감독: 벤 스틸러
출연: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아담 스콧

그런 자신의 흔해빠짐을 느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 월터 미티에게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라이프’ 지의 사진필름을 인화하는 일을 하는 소심한 남자다. 그의 직업은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언제 해고돼도 이상하지 않으며, 월급은 가족들을 챙기다보면 순식간에 사라져있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수많은 인파에 묻혀 살아가는 이 평범한 남자와 대비되는 사람이 바로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다. 그는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세상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이자 탐험가다. 그는 작중에서 초반부터 이름은 언급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월터와는 서로의 이름과 얼굴만 알 뿐,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만날 일조차 없는 낯선 관계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채색의 작은 남자 월터는 ‘라이프’ 지의 마지막 표지에 들어갈 사진이자 숀이 ‘삶(Life)의 정수’라고 극찬한 25번 필름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찾기 위해 머나먼 그린란드로 떠나면서 숀의 드라마틱한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숀의 세상은 수직의 건물과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도시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안전한 여정은 보장하기 힘들다. 동시에 얼음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의 화산을 향해 가는 드넓은 도로를 스케이트보드로 가로지를 수 있는 자유로운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안온한 일상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월터가 이러한 예측불허의 위험한 여행을 시작할 때 깔리는 음악이 바로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Space Oddity'다. 이 노래는 가상의 인물 '톰 소령'이 우주선을 타고 떠나면서 지상관제소와 나누는 대화를 그리고 있다. 우주에서 톰 소령은 “지구는 푸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수신이 끊기는 비극을 겪지만, 월터가 짝사랑하는 메릴 쉘호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용감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소심하고 별 것 없는 사람이었던 월터 미티가 새로운 세상에 한 발 내딛으며 용감한 톰 소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여정이 끝나고 나면 월터는 또 다시 뉴욕에서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어쩌면 그런 환상적인 경험을 뒤로 하고 다시 별 것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월터는 더 이상 이전의 그가 아니기에 평범한 일상도 환상적인 모험이 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월터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판타지가 없는 삶은 때로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 평범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고 판타지를 향해 내딛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그리고 그 때가 된다면, 세상의 모든 ‘월터 미티’는 ‘톰 소령’이 되어 우주 저 편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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