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도행역시(倒行逆施) 하는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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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도행역시(倒行逆施) 하는 협회
  • 승인 2021.01.05 13:19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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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제준태

mjmedi@mjmedi.com


제준태산돌한의원 원장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한약(탕약) 건강보험은 몇 년의 진통을 겪고 있고, 2020년 11월 20일에 시범사업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불만과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에 대한 회원투표가 2021.1.4부터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협회가 충분히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여론을 수렴하고, 투표를 거쳐 의결하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충분히 거쳤다면 불필요했을 투표입니다. 일부에서는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1개월만에 하는 회원투표가 성급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원투표를 발의한 대의원들의 기고문을 보면 회원투표는 협회가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협회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의원들이 발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급한 것은 시범사업이고, 회원투표는 너무 늦은 것입니다.

회원투표 발의자 중 이승룡 대의원은 시범사업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했던 상태의 투표와 이후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협회의 태도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 안건이 있으면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고 그 사이에서 토론이 이뤄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도 없고 이해는 서로 다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그 결과에 수긍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그 의결 과정이 공정하고 잘 지켜져야 합니다. 또, 김회권 대의원의 기고에 따르면 한방병원 제외 한의원에서만 탕약이 연간 631만제 정도(추정)가 처방 되고 있고 한방병원까지 합칠 경우 현재의 건강보험 시범사업의 수가로는 국민 절반 이상이 탕약을 처방 받아야 할 정도가 되어야 기존 통계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대개 비급여로 운용하던 의료기술이 건강보험 급여가 될 경우 비급여의 관행수가를 계산한 것에, 급여에 따라 낮아지는 본인부담금으로 접근성이 늘어날 것으로 가정해 관행수가 보다 더 낮은 수가를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급여가 될 경우 관행수가 보다 더 낮춘 수가에서 본인부담금은 그 수가에서도 30%가 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늘어난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약(탕제)의 경우 본인부담금이 30%가 아닌 50%로 10일분 제한이 있을 뿐더러 향후 수요 증가량에 대한 계산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회원들의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 번 한약을 건강보험으로 복용하면 다시 복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자동차보험 환자가 한약을 한 번 복용해 보기만 하면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한약을 복용할 가능성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누구 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일선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을 한의사들입니다. 일선 한의사 회원들이 느끼는 불안과 문제 제기에 대해 협회가 제시해 줘야 하는 것은 막연한 미래가 아닌 가격탄력성과 인구 및 기존 이용량을 고려한 예상 이용량과 수가를 비교하여 어느 정도 변화가 발생할 지에 대한 객관적 연구 자료입니다. 한의학정책연구원이 있습니다. 정책으로 바뀌는 변화와 미래를 위한 정책을 연구하라고 만든 기관입니다. 최종안이 나올 거라고 한 2019년 8월을 생각하면 2021년 1월 현재 이미 관련 연구가 발주되고 이미 결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근거로 협회가 회원들에게 말을 하는 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협회는 시범사업이 시작된 직후에는 약제비 실거래가 보상에 따른 약제비 상한선으로 가정한 월경통 상병의 최대 수가가 회원들에게 말한 기준을 넘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주장했고, 진찰료를 합산한 한약(탕약) 수가와 수가협상에 따른 2021년 수가를 기준으로 수가가 그리 낮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의원들에 의한 회원 투표가 발의되고 나서는 협회 주관의 설문조사가 갑자기 진행되었고, 수가가 낮은 것은 스스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재협상을 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협회장은 문자로 대의원이 발의한 회원투표에 투표를 하지 말고 정족수 미달로 부결시키라는 전체 문자를 발송했습니다. 협회가 회원투표를 방해하는 문자를 보낸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전 회원 투표에서는 선관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단체 문자를 계속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한의신문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현장 의견 '수렴''(2020.12.30)라는 기사에 '한의협에서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사업에 참여하지 못 하고 있는 회원들의 경우 아무래도 조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반면 시범사업 처방 경험이 많을 수록 사업에 대한 높은 기대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한의사협회 부회장의 발언이 실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설문 조사 내용과 결과를 들여다 보면 이 해석에 대해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설문 조사는 ​한의사협회에서 진행한 '현행 한약 건강보험에 대한 회원 설문조사'로 2020.12.21부터 2020.12.23까지 진행하였고, 25,518명의 회원 중 11.7%인 2,979명이 설문조사에 응했습니다. 그 결과는 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 공지 되어 있습니다.

이 설문조사와 그에 근거한 발언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설문조사의 문항은 타당도가 극히 낮은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설문조사는 문장의 순서나 표현 하나에도 심리학적으로 치우침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만들어야 그 효과를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문장 하나 하나에 따른 심리적 장벽이나 심리적으로 유인이 되는 효과가 있어 문항 전체를 문장으로 작성하는 것은 권장하기 힘든 방법입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면 설문 문항 중 '청구프로그램 처방 입력 절차에 대한 평가'의 항목은 '매우 어렵다', '어렵다', '잘 모르겠다',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다' 같은 비교적 일정한 척도로 작성되거나 불편한 정도를 0-10점까지의 점수로 표현하여 설문 문항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타당성을 높일 수 있는 문항 작성 방법입니다. 이 문항의 협회 설문조사 답항은 '숙달되어 괜찮음', '어렵고 복잡하여 곤란하지만 적응하면 괜찮아질 것으로 예상함', '어렵고 복잡하여 처방을 포기함'으로 되어 있습니다. 설문조사 문항만 봐도 협회가 의도한 '정답'이나 '기피 답항'이 무엇인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또 첩약시범사업 급여 수가에 대한 전반적 평가 항목은 '매년 상승하는 급여수가로서 이 정도면 적절하다', '관행수가 대비 낮지만 실손 적용, 대상질환 환자 수요 확대로 괜찮다', '관행수가 대비 너무 낮아서 공급자 수용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속 처방시 100/100 급여 적용에 대한 평가 항목 역시 '연중 제한 없이 실손보험 적용되므로 환자 접근성이 증가되어 환영한다'와 '재처방 시 진료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비급여로 두는 것이 더 낫다'라는 답을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쪽에 긍정적인 표현들이 들어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설문조사 문항을 잘 못 만든 것입니다. 이런 설문조사에서 결과로 인용할 수 있는 것은 현황 정도의 데이터 외에 정책에 대한 평가를 결과로 인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특히 부회장의 해당 발언의 배경이 된 처방건수별 시범기관 철회의사 항목은 전체 철회의사를 언급하지 않고 처방 건수별로 데이터를 쪼갠 것을 근거로 '처방 건수가 많으면 시범사업에 긍정적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더 많이 처방해 보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입니다. 시범사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찬성 비율이 높고 처방 건수도 많아지는 현상을 보고, 그 역에 해당하는 처방건수가 많아지게 되면 시범사업에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명제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집합과 명제'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이 결과는 전체 1,246명 중, '시범기관을 계속 유지하겠다'에 답한 사람은 849명, '철회하고 싶다'에 답한 사람은 1950명이었던 결과를 처방건수 별로 쪼개서 분석한 것입니다. 처방건수가 6건 이상인 경우 '철회하고 싶다'는 17명, '시범기관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113명, 1~5건의 경우 '철회하고 싶다'가 201명, '시범기관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37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처방건수 0건 중에서도 '시범기관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363명이었고, '철회하고 싶다'는 883명이었습니다. '시범기관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응답한 사람만 놓고 보면 처방건수 0건이 363명, 1~5건이 373명, 6~10건이 72명, 11건 이상 41명입니다. 이 데이터의 처방건수별 세부 데이터를 원 그래프로 % 비교를 놓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시범사업 첩약 처방건수 문항의 답변의 막대그래프 안에 이 비율대로 누적막대그래프 형태로 그릴 경우 더 정확하게 설문조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자서는 춘추전국시대 오의 재상으로 오가 초의 수도 영을 함락했을 때 자신의 원수인 초 평왕의 무덤을 파내고 초 평왕의 시신을 훼손한 굴묘편시라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에 친구인 신포서가 시신을 훼손한 것은 너무할 뿐더러 도리에도 어긋난다는 편지를 보내자 '해는 저물고 갈 길이 멀어 거꾸로 했을 뿐(때려 죽이나 죽은 것을 때리나)'이라는 답변을 합니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급하다는 이유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변명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일모도원 도행역시(日暮道遠 倒行逆施)라는 고사의 유래입니다. 공정한 절차는 협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힘을 갖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시대의 권력입니다. 반대로 원칙과 여론을 외면하면 정당성을 잃게 되고 권력 역시 잃게 됩니다.

회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면 상식적인 설문조사 문항을 개발하고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그 해석 역시 충분히 중립적으로 검토 되어야 합니다. 협회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상식적으로 설문조사 문항개발에서 주의해야 할 초보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설문조사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협회가 주관적인 해석을 해버린다면 이것을 설문조사로 부를 수가 없습니다. 회원들을 그저 협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일어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회원들에게 물어 보고자 하면 정말 물어 보기 위해 자세를낮춰서 임해야 할 일이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할 들러리로 억지 근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물어 보는 방식은 앞으로 단 한 번도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회원이 협회의 주인이며 협회의 모든 권한은 회원들로부터 위임 받은 것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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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규 2021-01-06 17:43:16
현 시국의 면면을 잘 비춰주시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유자적 2021-01-05 21:54:27
J형... 솔직히 형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거에요.. 형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왜 남들 희생양 될라구 하세요..

제원장 2021-01-05 19:22:36
제원장, 언제 이렇게까지 되었나?
순진한 얼굴을하고 웃던 소싯적 제원장이 그립네.

두루미 2021-01-05 17:52:16
민족의학신문이 언제 이렇게 한쪽 이야기만 싣는 기울어진 신문이 되었는지 서글픕니다

김회권 2021-01-05 16:45:5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범사업은 답이 안보입니다.
아래 악성댓글 단 사람들 여기와서 영양가 없는 댓글 달 동안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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