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二原者에 대하여(26): 장기운행(臟氣運行) 끝맺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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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原者에 대하여(26): 장기운행(臟氣運行) 끝맺음 ①
  • 승인 2021.01.0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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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모

김선모

mjmedi@mjmedi.com



1. 제가(諸家)들이 후려치는 귀싸대기

한의사라면 누구나 폐경(肺經)의 유주노선을 알고 있고 폐경(肺經)의 오수혈(五腧穴)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본수.영02》의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는 요구에 확신있게 응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확신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폐기(肺氣)의 출(出)이 뜻하는 공간적 의미는 한의과대학에서도 배워본 바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본수.영02》 12경락(經絡)의 종시(終始)에 대한 장지총(張志聰) 선생의 의견이다.

“黃帝問於岐伯曰 凡刺之道 必通十二經絡之所終始”

張: 按經絡之終始컨데 手之三陽은 從手走頭하고 足之三陽은 從頭走足하며 足之三陰은 從足走腹하고 手之三陰은 從腹走手하니 始於肺而終於肝하야 常滎無已하야 終而復始하니 此血氣循行之終始也라.

張: 本篇에 論五臟六腑之脈이 皆出於指井하고 溜於滎하고 注於輸하고 行於經하고 入於合하야 從四肢而通於臟腑하니 此經脈之終始也라.《본수.영02.영추연구집성.》

장지총 선생은 수족음양경(手足陰陽經)의 유주(流走) 방향이 향심성(向心性) 향외성(向外性)의 구분이 있음을 언급하면서도 모든 경(經)에서 향심성(向心性)인 오수혈(五腧穴) 유주방향에 대해서는 ‘종사지이통어장부(從四肢而通於臟腑)’라는 말로 뻔뻔하게 뭉게고 있다. 정면으로 배치되는 유주방향을 언급하면서도 일말의 고민이나 거리낌조차 없이 당당하다. 오히려 사지(四肢)와 오장(五臟)이 통해있다는데 손가락에서 시작되건 복부에서 시작되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반문(反問)하는 듯하다. 다른 주제, 다른 편에서의 해석이라해도 그의 무성의함을 탓했을텐데 이것은 같은 편(篇), 그것도 같은 장(章)에서의 해석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억지도 당당하게 주장하니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워진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상대가 느닷없이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상황에서나 느낄 이런 당황스러움은 《황제내경》의 곳곳에 만연해 있다. 

계속되는 이 뻔뻔한 폭력에 시뻘게진 뺨을 감싸안고 자책하던 우리는 오랜 한의학교육에도 ‘경맥조차 그릴 수 없는’ 한의학의 전문가가 되었다.

장지총 선생에게 경맥(經脈)이란 ‘常滎無已하야 終而復始’ 즉, 어디든 어느 방향이든 굳이 그 특성을 구분할 필요도 없는 ‘무소불행(無所不行)의 존재’이다.

 

2. 후학(後學)들의 오만(傲慢)

【考察】

‘上十焉息 下八焉伏’이 『太素』卷九脈行同異에는 ‘上焉息 下焉伏’으로, 『甲乙』卷二第一에는 ‘上出焉息 下出焉伏’으로 되어 있는데, ‘十’과 ‘八’이라는 용어는 內經의 다른 문장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또한 寸口脈의 氣의 盛衰를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도 어색하므로 『太素』와 『甲乙』의 기재가 정확한 것으로 사료된다. 《동수.영62.영추연구집성.》

우리는 앞서 《태소》의 “상언식(上焉息) 하언복(下焉伏)”의 기록과 다른 판본들의 “상십언식(上十焉息) 하팔언복(下八焉伏)”의 기록을 두고 제가들의 갑론을박(甲論乙駁)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할 바에야 십(十)과 팔(八)은 차라리 지워버리는게 낫다는 《영추연구집성 동수편》 논문저자의 의견을 확인한 바 있다. 상하(上下)에 대해 ‘맥박의 세기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 이의 눈에는 십(十)과 팔(八)에 대한 많은 판본기록과 여러 제가들의 노력들이 그저 한심한 집착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을까. 그에게 경맥(經脈)은 내맘대로 해석해도 누구의 반박에도 두려울 것 없는 ‘너도 나도 모르는 허상(虛像)’일 뿐이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엿보인 《황제내경》에 대한 제가들의 교만(驕慢)은 후학(後學)들의 오만방자(傲慢放恣)함으로 더욱 심각하게 유전(遺傳)되었다.

 

3. 애매(曖昧)한 경맥(經脈)의 존재

《황제내경》의 진의(眞意) 탐구에 일생을 바쳤던 역대제가들의 노고(勞苦)가 현대과학의 은혜를 혼자만 받은 듯 오만방자한 일부 후학(後學)들에 의해서 조롱당하고 있는 현실이 더할 수 없이 개탄스럽지만 제가들도 이러한 현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미 다루었듯 제가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본수.영02》편의 장기(臟氣)는 《경맥.영10》편 영기(營氣)의 운행과는 전혀 다른 운행체계를 가지고 있다. ‘폐출어소상(肺出於少商)’으로 시작되는 장기(臟氣)의 운행을 숙고하지 않았기에 365절 기미를 오장(五臟)으로 공급하는 12원혈(原穴)의 주요기능은 물론 폐기(肺氣)의 경로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존재 자체가 애매(曖昧)한 경맥(經脈)이 상십언식과 하팔언복에서 무슨 명쾌한 답변을 제가들에게 들려 줄 수 있었을까.

결국 제가들의 중구난방(衆口難防)한 해석들은 논리적 설득에 실패했고 후학(後學)들은 “상십언식(上十焉息) 하팔언복(下八焉伏)”에 일고(一考)의 가치도 두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오장(五臟) 에너지-공급처로서의 촌구(寸口)를 이해했다면 “상십언식(上十焉息) 하팔언복(下八焉伏)”을 이토록 무시할 수 있었을까?

 

4. 《동의16형인》의 “상십언식(上十焉息) 하팔언복(下八焉伏)”

“상십언식(上十焉息)”은 어떤 뜻인가? 상(上)은 “오를 상”이다. “오르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여 움직이다”는 뜻이다. 폐(肺)에서 「소상(少商)」을 향해 올라간다는 뜻이다. 폐기(肺氣)가 수태음지맥(手太陰之脈)을 따라 폐장(肺臟)에서 엄지손가락 끝의 「소상(少商)」을 향해 올라간다는 의미다. 십(十)은 십식(十息)이다. (중략) 상(上)은 이식왕래(以息往來)의 왕(往)이다. (중략)

언식(焉息)은 무슨 뜻인가? 언(焉)은 “어찌 언”이다. 여기서는 “어디에, 어디에서”라는 뜻이다. 식(息)은 “숨 쉴 식”이다. 《한한대사전》은 “멈추다, 정지하다. 쉬다, 휴식하다. 없어지다, 소멸하다”는 뜻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식(焉息)은 어디에서 멈추게 되는가, 어디에서 소멸(消滅)하는가 하는 뜻이다. 폐(肺)에서 출발해 「태연(太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던 폐기(肺氣)는 수태음지맥(手太陰之脈)의 어느 지점에서 쇠미(衰微)해지는가 하는 것이다. (중략)

“하팔언복(下八焉伏)”은 어떤 뜻인가? 하(下)는 “내릴 하”다. “내리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가다”는 뜻이다. 하(下)는 이식왕래(以息往來)의 래(來)다. 여기서는 「소상(少商)」에서 폐로 내려간다는 말이요, 「태연(太淵)」에서 폐(肺)를 향해 내려간다는 뜻이다. 폐기(肺氣)가 수태음지맥(手太陰之脈)을 따라 엄지손가락 끝의 「소상(少商)」, 독동불휴(獨動不休), 동이부지(動而不止)의 「태연(太淵)」에서 폐(肺)를 향해 내려간다는 의미다. 팔(八)은 팔식(八息)이다. 폐기(肺氣)가 「태연(太淵)」에서 폐(肺)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식(息)이란 의미다. 폐기(肺氣)가 폐(肺)에서 「태연(太淵)」에 도달하는 시간은 10식(息, 64초), 「태연(太淵)」에서 폐(肺)에 도달하는 시간은 8식(息, 51.2초)이다.

언복(焉伏)은 무슨 뜻인가? 언(焉)은 “어찌 언”이다. 여기서는 “어디에, 어디에서”라는 뜻이다. 복(伏)은 “엎드릴 복”이다. 《한한대사전》은 “엎드리다, 눕다, 기대다, 의지하다. 숨다, 가라앉다, 낮아지다. 은거하다, 은퇴하다”는 뜻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복(焉伏)은 폐기가 어디에서 엎드리는가, 어디쯤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가, 활동이 가장 현저하게 낮아지는 지점은 어디인가라는 뜻이다. 「태연(太淵)」에서 폐(肺)를 향해 걸어 내려가는 폐기(肺氣)가 힘들고 지쳐서 쓰러지는 지점(地點)은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동의16형인. 권건혁 著.》

 

5. 촌구(寸口)와 폐장(肺臟)을 잇는 폐기(肺氣)의 구체적인 운행경로

“상십언식(上十焉息) 하팔언복(下八焉伏)”의 기준점은 촌구(寸口)이며 환처(還處)는 폐장(肺臟)이다. 따라서 촌구(寸口)에서 공급된 365절(節)의 기미(氣味)를 폐장(肺臟)으로 실어나른 폐기(肺氣)는 폐장(肺臟)을 떠나 촌구(寸口)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제가들은 장기(臟氣)의 존재와 운행목적, 경로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환도(還道)를 매우 추상적이고도 애매하게 표현하였다. 제가들이 주장했던 몸 전체의 영혈(營血)이나 장내(臟內)등의 환도(還道)는 자신들의 주장대로 경맥의 운행을 그려보기는 했을지 의문스러울만큼 애매하다. 반면 《황제내경》이 서술하고 있는 상도(上道) 하도(下道)는 손가락 끝에서 폐장(肺臟)을 잇는 매우 구체적인 운행경로이다.

 

6. 상십(上十)/하팔(下八)의 해석을 위한 조건

이처럼 폐기(肺氣)의 운행경로는 폐(肺)를 출발하여 손가락 끝을 돌아 전신(全身)의 어딘가를 돌 것이라는 제가들의 생각처럼 애매하지 않다. 그렇다면 제가들이 제각각 상상했던 십(十)과 팔(八)은 어떠할까? 이 역시 폐기(肺氣)의 경로와 운행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동의16형인》에서 설명하듯이 촌구(寸口)를 출발하여 폐(肺)로 가는 길은 하도(下道)이며 8식(息)이 걸린다, 폐(肺)에서 돌아와 촌구(寸口)에 이르는 길은 상도(上道)이며 10식(息)이 걸린다. 즉 ‘세기의 차이’가 아닌 ‘실질적인 거리의 차이’란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폐(肺)로부터 태연(太淵)으로의 길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상도(上道)와 하도(下道)의 태연(太淵)이 모두 폐(肺)로부터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거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질적(實質的)인 상도 하도의 길이 중 하나는 태연(太淵)에서 출발하여 폐(肺)에 이르는 짧은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폐(肺)로부터 출발하여 소상(少商)을 돌아 태연(太淵)에 이르는 긴 거리이기 때문에 10과 8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도(下道)가 8이고 상도(上道)가 10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고려해야될 조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오수혈(五腧穴)의 진행방향은 향심성(向心性)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폐장(肺臟)에 365절 기미(氣味)를 쏟아붓고 맥중(脈中)을 따라 돌아온 폐기(肺氣)는 외부(外部)의 365절 기미(氣味)를 공급받기 위해 정혈(井穴)인 소상(少商)에서 맥외(脈外)로 외출(外出)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도(上道)와 하도(下道)는 태연(太淵)을 기준으로 하는 원(圓)의 형태여야 하며 오수혈의 주혈(注穴)인 태연(太淵)으로부터 시작되는 향심성(向心性)의 하도(下道)가 짧은 길이어야 하는 것이다. 즉, 태연(太淵)에서 365절(節)의 기미(氣味)를 공급받아 폐장(肺臟)으로 이동하는 하행(下行)거리는 8이 되고 폐장(肺臟)으로부터 맥중(脈中)을 따라 소상(少商)에 이르러 맥외(脈外)로 외출(外出)한 뒤 태연(太淵)까지 맥외(脈外)를 따라 이동한 상행(上行)거리는 10이 되는 것이다. (《十二原者에 대하여(16) 빛에너지 수송시스템: 장기(臟氣) ①》 참조)

다음에 이어 마무리하겠다.

 

김선모 / 반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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