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어텀 드 와일드의 가장 파격적인 ‘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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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어텀 드 와일드의 가장 파격적인 ‘엠마’
  • 승인 2021.01.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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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엠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로맨스 소설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고전문학이라는 독특한 포지션에 있다. 그는 로맨스 소설의 원조로 유명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인간군상의 혐오스러운 일면을 비꼬는 냉소적인 풍자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감독: 어텀 드 와일드출연: 안야 테일러 조이, 자니 플린, 미아 고스 등
감독: 어텀 드 와일드
출연: 안야 테일러 조이, 자니 플린, 미아 고스 등

그 중에서도 ‘엠마’는 제인 오스틴 팬덤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유일하게 주인공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지만 그 주인공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가장 자만하고 철딱서니가 없는 민폐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남자주인공인 나이틀리가 엠마보다 18살 가량 나이가 많은데다가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지켜봐온 사돈이고, 작중 내내 엠마의 경솔함을 못마땅해 하며 이를 고치는 것을 지상과업으로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도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꽤나 여러 번 영상화됐다. 1996년에는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졌으며, 2009년에는 BBC에서 다시 한 번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그리고 지난해 영화로 다시 한 번 개봉했다. 오늘 소개할 ‘엠마’는 2020년에 만들어져 넷플릭스에서 제공하고 있는 영화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계속해서 영상화될 수 있던 요인은 ‘엠마’라는 주인공이 민폐를 끼치는 오만한 아가씨이지만 기본적으로 활달하고 사랑스러운 미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드라마는 엠마를 최대한 사랑스럽게 묘사하면서 작품의 불호를 줄이려는 측면이 많았다. 자신의 결혼은 뒷전인 아름답고 젊은 아가씨가 나름대로 주변 사람을 위한다는 이유로 철없이 중매를 진행하다가 벌어지는 실수라는 식으로 말이다.

반면 2020년 ‘엠마’는 사랑스럽기보다는 우아하고 도도하다. 그러면서도 엠마의 영리함이나 쾌활함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면서 기존의 엠마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실수를 많이 하는데 자만하기까지 하니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 단점을 이 영화는 아름다운 의상과 유려한 영상미로 대체한다. ‘엠마’ 뿐 아니라 기존의 여러 제인 오스틴 소설 영상물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연출이다. 규칙적이고 절제된 배치와 파스텔 톤 위주의 다채로운 색감이 눈에 띄는 아기자기한 배경,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이 관전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진지한 장면에서 한 번 씩 치고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다소 과장된 인물의 행동은 약간의 B급 감성마저 느껴지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생각난다.

그렇다보니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강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지만 제인 오스틴이라고 묘사하기는 어려운 작품이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어텀 드 와일드’라는 감독의 색채가 강렬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제인 오스틴의 오랜 팬이라면 이 영화의 인간 군상에 대한 고찰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제인 오스틴 작품 특유의 차가운 풍자 위주의 잔잔한 묘사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 어느 쪽이라도 제인 오스틴을 다루는 이 감독의 화법이 독특하고 파격적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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