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준태 시평] 시범사업 기준 처방 관리의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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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시평] 시범사업 기준 처방 관리의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
  • 승인 2021.02.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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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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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제준태
산돌한의원 원장

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이 2020년 11월 20일에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진통 끝에 시작되었지만 준비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아 상당수 회원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급기야 최근 있었던 경기도지부장 선거와 곧 있을 협회장 선거에서도 시범사업안의 재협상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을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시범사업을 철회하고 안을 폐기하는 것도 고려할 것이냐가 협회장 후보들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후보들의 다른 공약들보다 우선하는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강보험의 확대는 시기적으로 중요한 문제기는 합니다. 정부의 보험 항목 확대 정책에 많은 재정이 소요될 예정이었고 시행 전 20조원이 넘는 누적적립금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정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정도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기회에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지분을 늘려 놓지 않으면 더 이상 건강보험을 확대하는데 사용할 재정이 없어질 것이라서 손해가 따른다 해도 건강보험의 막차라도 타야 한다는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17년 건강보험기금 누적적립금이 20조원을 초과했던 반면, 2019년 재정수지는 2조 8,000억 원 적자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건강보험 재정의 소모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재정 여유가 줄어들 것은 기정사실로 봐야 할 것입니다.

재정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보장 확대는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4.2%로 약간 상승했지만, 상급종합병원, 고액진료비 상위 30위 질환 등에 집중 투자한 결과입니다. 투입된 재정의 대부분이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쏠리면서 일상적인 질환을 커버하고 이용률이 더 높은 동네 의원에서 체감할 수 있는 차이는 크지 않았고, 오히려 의원급에서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은 소폭 하락했습니다. 의원급에서 보장 확대는 거의 없었고, 비급여의 가격 통제 효과도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건강보험 보장 확대나 비급여의 급여화 등은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이지 의원급 의료기관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의과 분야에서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의 분야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는 시범사업을 시작한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건강보험이 의원급에서의 진료 행태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보험의 적용 여부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지에 대해선 아직 충분한 분석이 이뤄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시범사업 공고가 나온 것이 2020년 11월 18일이었고, 2020년 11월 20일에 시범사업이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 2월까지 기간은 예상되는 효과를 분석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한 후에 시작할 수 있는 일 보다는 일단 어느 정도 준비한 후 시행 중에 피드백을 받아 수정 작업을 거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아직 효과를 실감하거나 분석하기에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미비했던 부분들이 아쉬움을 낳고 있습니다. 시범사업이 시작된 후에 2개월이 지난 2021년 1월 중순에야 심평원의 준비가 이뤄져 청구가 지연되었던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기준처방 역시 완벽하게 모든 처방이 검토되어 있었다면 좋았을테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실수나 오류는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류가 아니라 그 오류가 생긴 원인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준 처방에 대한 논란으로 기준 처방이 무엇을 근거로 선정되었는지 문의한 한 회원의 게시글에 2020년 11월 30일 김용수 보험이사는 '기준처방은 CPG를 참고하였고, CPG에 수록된 처방을 임의로 용량을 조절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기준 용량을 그대로 제출하였다'는 내용의 답변을 했습니다. CPG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처방들이 있는지 문의한 한 회원의 글에는 2020년 12월 11일 박종훈 보험부회장이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고 공개 범위 외 사항에 대해서는 한의약진흥원 CPG 사업단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기준 처방의 선정 기준, 배제 기준 및 결정을 한 위원회의 존재 확인을 위하여 보건복지부에 문의하여 2021년 1월 4일에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지침의 기준 처방은 관련 학회 등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제출한 약 200여개 처방을 포함시켰음을 알려드리며, 필요하신 정보는 대한한의사협회에 문의 부탁드립니다'라는 민원 답변을 받았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답변으로는 보건복지부가 포함된 위원회나 회의 없이 한의사협회에서 제출한 기준 처방을 그대로 고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원 답변에서처럼 대한한의사협회가 관련 학회 등의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쳤는지 확인을 해야 할 부분이지만, 현재까지 보험부회장이나 보험이사의 답변 내용을 보면 한의사 협회에서도 따로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CPG를 그대로 인용해서 용량을 변경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용량도 그대로 제출했다고 한 답변도 석연치는 않습니다. 현재 한약(탕약)의 건강보험 적용 상병은 뇌졸중의 후유증, 안면마비, 월경통으로 3개 상병입니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국가한의임상정보포털에서 현재 개발 중인 내용을 확인 가능합니다. 공개된 내용에는 각 상병별 진료지침에서 CQ에 따른 근거수준과 권고등급을 제안하고 있으며 각 CQ에는 실제 처방명이 나와 있습니다. 현재 기준처방과 공개된 CPG의 처방 목록은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현재 공개된 내용 보다 훨씬 더 많은 처방들이 전문가 의견으로 추가적으로 제시될 수 있고, 각 논문에 따라 인용된 처방들의 가감 등 변형 등에 대한 목록 정보가 나중에 추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개발 중인 CPG의 공개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서 기준 처방을 결정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은 답변입니다. 그리고 3개 상병의 CPG에서 200여개 처방이 나왔다는 부분도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한약 처방을 다룬 CPG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재 개발 중인 임상진료지침 외 기존에 공개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각 상병당 한약 처방의 수재 건수를 고려한다면 CPG의 처방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말을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표준임상진료지침의 처방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후 임상진료지침이 업데이트 되면 기준 처방이 그에 따라서 그대로 고시가 바뀔 예정인지 확인을 받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CPG와 무관하게 기준 처방이 결정되었다면, 이 처방들의 목록에 대해 한의사협회는 전문가 의견 수렴 과정에 대해 명확하게 회의가 언제 열렸고 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해서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학회에는 공문을 발송했을 테니 공문 발송 시점이나 회의록 등의 증빙자료들이 협회의 발언에 신빙성을 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보험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건강보험은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한약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과거의 가장 훌륭하던 것들이 현재의 시대적 요구에 맞춰 변화하고 발전한 것들이 미래에도 여전히 전달 될 때, 우린 그것을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전통은 그 시대의 시대상황에 맞춰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살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한의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운 처방이 나오고, 과학적 발견에 따른 변형과 새로운 한약재의 추가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 한약입니다. 그러면 건강보험에서 한의사협회가 주도권을 갖고 주기적으로 한약 처방의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관리 기능을 갖춘 체계가 필요합니다. 만약 기준처방을 정하고 따로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 현재는 별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각주구검의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56종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건강보험한약제제의 종류와 현재 처방할수록 손해가 되어 처방이 거의 되지 않고 있는 일본의 탕약(煎じ薬) 보험 수가가 그 예시입니다.

한의사협회가 보내오는 문자를 보면 현재 시범사업에서 한약이 몇 건 처방되었는지를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범사업에 대한 기본 데이터를 협회가 심평원으로부터 직접 제공 받고 있다면 기준 처방의 사용 빈도 외에도 기준 처방의 가감에 따른 구성 생약의 변화 등 데이터 분석 역시 가능합니다. 이미 대만의 건강보험데이터에 기반한 연구 논문들에는 상병별로 어떤 처방을 많이 사용했고 구성 생약들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 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처방 데이터 분석에 더불어 현재 각 질환의 유병률과 변이 등 역학적 데이터 등에 근거하여 기준 처방의 추가, 변경, 삭제 등을 연간 1~2회의 주기로 운영 가능한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의 결과를 기준 처방 목록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고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기준 처방의 추가, 변경, 삭제를 할 때마다 협회가 직접 협상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관리 권한 역시 불분명해 장기적인 유지 관리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위원회는 임상진료지침의 개발 및 참여한 사람, 해당 상병과 관련된 유관 학회 등 임상 분야와 본초학회, 방제학회 등 처방과 관련된 기초 분야 학회 등 전문가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임상에서 진료하고 있는 한의사들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하여 회의를 하기 몇 주 전에 회원들로부터 자유롭게 처방 구성에 대한 제안과 추가를 원하는 처방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검토할 처방 리스트를 수집하여 일선 임상의의 처방 행태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 역시 명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 처방의 변화에 따른 약재상한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를 사전에 갖춰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에 새롭게 추가 되는 신의료기술의 급여화와 반대로 이미 건강보험에 들어가 있는 항목들에 대해서는 시대의 변화나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일 뿐더러, 물가상승률이나 인건비상승률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매번 협상을 하는 진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기준 처방이라는 근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질병의 변화와 약재비의 변화 등에 대비해야 합니다. 협회장 선거에선 재협상이 떠오르고 있는 이슈지만, 정작 보험의 진입과 운영에 필요한 체계나 장기적 또는 단계별 준비 보다 정부와의 협상으로만 이해하는 듯한 발언들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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